아름다운동행

암은 우리 삶에 찾아왔지만, 사랑을 앗아갈 수는 없다.

양평l위본
2026.06.21 11:22 | 조회 978

사랑은 언어보다 깊고, 그리움은 시간보다 길다.

얼마 전 아내가 유방암 전절제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수술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도 함께 무거워졌다.

남편인 나도 떨렸는데,

차가운 수술대에 올랐던 아내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싶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릿해진다.

사실 우리 부부에게 암은 처음이 아니다.

2014년 아내는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고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2년 후 2016년에는 내 차례였다.

조기 위암 진단 후 ESD 시술을 받았고, 5년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암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올해 1월, 나는 다시 조기 위암 진단을 받고 ESD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조직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위 부분 절제 수술을 권유받았다.

그러나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컸기에,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정밀 검사를 받은 뒤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 유방암이 찾아왔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다시 암이라는 이름 앞에 서게 되었다.

병원 복도를 걷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일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절망만 바라보며 살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뉴저지에 살고 있는 손녀 재이가 있기 때문이다.

딸이 보내오는 사진 한 장, 짧은 영상 하나가 우리에게는 힘겨운 하루하루를 견디게 하는 가장 큰 힘이었다.

살다 보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 있다.

누군가는 한 권의 책에 마음을 빼앗기고, 누군가는 낯선 여행길에 이끌린다.

나에게는 재이가 그랬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마음은 어느새 태평양을 건너 그 아이 곁으로 가 있었다.

그 애틋한 그리움은 양평의 서재에서 그림과 글로 피어났다.

아내는 손녀의 사진을 바라보며 붓을 들었고, 나는 그 곁에서 글을 썼다.

처음에는 아이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할미와 할배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림과 글이 한 장 한 장 쌓여갈수록 그것은 단순한 성장 기록이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를 향해 이어지는 가족의 사랑이었고,

시간과 거리를 건너 마음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실이었다.

그렇게 한 권의 그림책이 태어났다.

《내 발가락에 실이 있어》

돌이켜보면 이 책은 손녀 이야기만이 아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 했던 우리 부부의 이야기이고,

사랑이 어떻게 무너져가는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지에 대한 기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곁에서 지켜본 아내의 모습이 참 대단하다.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손녀를 향한 사랑을 그림으로 남겼다.

곁에서 지켜본 남편으로서 존경스럽고 고마울 뿐이다.

아내는 어느 날 내게 말했다.

“암 환자끼리 행복하게 살아야지.”

아내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속에는 삶을 향한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말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조용한 약속이었다. 그 이후 나는 그 말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암이라는 거센 바람은 우리의 삶을 여러 번 흔들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의 감사함,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웃음의 따뜻함,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함께 살아 있다는 사실의 고마움.

그래서 우리는 남은 생을 덤으로 얻은 시간이 아니라, 매일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환우 여러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분도 있을 것이고, 고된 항암치료 중이거나 재발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는 분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그 시간을 지나왔다.

하지만 암이 우리 삶의 한 부분일 수는 있어도, 삶 전체가 될 수는 없다고 믿는다.

우리 부부는 손녀를 향한 보이지 않는 실을 붙잡고 힘든 고비를 건너왔다.

여러분도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 소중한 꿈, 소중한 희망의 실을 꼭 붙잡으셨으면 좋겠다.

아내는 또 하나의 큰 강을 무사히 건넜다.

수술실 문이 닫히던 순간, 나는 그 문밖에서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는 그 강을 건너 내 곁으로 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회복이라는 또 다른 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아울러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환우분께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결국 아침은 오고, 매서운 겨울 끝에 매화는 다시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우리 모두 다시 웃을 날을 맞이할 수 있다.

환우 여러분 모두의 쾌유를 온 마음으로 기원하며,

여러분의 삶에도 매화 같은 은은한 향기와 결코 꺾이지 않는 희망의 윤슬이 늘 함께 하기를 바란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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