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답답하고 막막하고 힘들고 ~

힘내82ㅣ후보
2025.12.20 04:41 | 조회 1.1k

아버지 현재 17회 방사선 중 6회차에 들어섰습니다

제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어쩔때는 이곳에 방송작가들 들어와 우리집 대소사를 드라마로 내보내도 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참 누워서 침뱉기 이지만 저희 집은 암담하며 콩가루이기도 하고 참...

저희 아버지는 8남매에 남자중에 3째 전체에서 5번째로 아들입니다

17살때부터 할아버지가 몸이 좋지 않아 집안 사림을 맡아 형제자매 장가보내고 아버지 어머니 봉양하고 살며 저희 4남매를 나았습니다

참 힘들게 살고 지금도 힘들게 사십니다 간병하는 저도 그렇고요

4남매 중 둘째 형만 장가를 가고 나머지는 다들 미혼입니다

거기네 누나는 지적장애에 들어가는 허들에 걸쳐 있는 정도 일거라 생각됩니다

아무튼 자궁경부암으로 12년 투병하신 엄마는 후유증으로 요루, 장루, 질과 항문 사이에 누공이 생기는 후유증 그리고 병원의 시한부 선고 후 3년을 더 사시다 마지막 3개월을 호스피스에 있으시다 돌아 가셨습니다

시한부 판정 이후 마지막 3년은 정말 지옥과 같았습니다 마약성 진통제와 장루, 요루를 가지고 사시며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때 당시 집에 빚이 많기도 했으며 작은형은 애 3명 키우며 장거리라고 특별한 날만 와서 어머니와 추억 쌓기만 했더라고요 지금은 현재 연봉이 1억이 넘어가는 뒷자리는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공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당시 저는 하던 공부접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도 기구는 사야하고 마약성 진통제도 사야하고 체력이 떨어질때는 수혈도 해야하더라고요

주로 제가 해야했지만 일정이 안될때는 큰형 작은어머니 등 대체 인력을 사용하기도 했죠

작은형 형수에게 이부분에 대해서 한번도 내색을 한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호스피스에 있던 3개월 호스피스로 찾아온 작은형을 보고 엄마는 쓸모없는 놈 왔구나라고 했다더군요

얼마나 매친게 많았을까요~~

그리고 어머니 돌아가시고 작은형은 저에게 고해성사 비슷한 걸하고 엄마 먹던 마약성 진통제를 집에서 먹어 보았답니다 자기에 엄마가 가졌었던 서운함이 무엇이였는지 알고싶었답니다......

본론으로 이번에 아버지 암이 발병하기 전에 여러가지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작년 10월 폐기종 발병 올해 4월 전립선 비대증으로 인한 소변 혈종 그 후 후두암 발병까지 너무 급박하게 돌아 갔지요

작년 소변 혈종을 발병되기 전 작은형과 재산분배라 하긴 어려운 제가 어머니에게 유산 받은 논이 있는데 그중 일부분의 면적이 선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정리되지 않은 지분으로 작은집이 파산 절차에 들어가 제논에 귀속된 일부분이 경매에 넘어 갔는데 유찰5회가 되었습니다 작은형 또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논 일부분 또한 경매 5회 유찰 되기 전 어떠한 제3자가 낙찰을 받았던 상황이고요 작은형은 제가 낙찰을 받을 수 있는 서류상 조건이 되지 않으면 자기가 입찰을 보겠다고 통보를 하더군요 저는 제가 그정도 돈은 있기에 작은형이 제돈을 가지고 입찰을 보고 낙찰 받으면 다음에 명의를 나에게 넘겨 주어라 했더니 자기 앞으로 할 땅을 굳이 그렇게 해야 하겠냐더군요

1필지의 논 중 일부를 욕심내하더군요

이 또한 전 참았습니다 그냥 내가 어떤방법을 써서 낙찰을 받으면 되니.. 그리고는 서운한 내색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몇 일뒤 아버지 소변에서 혈종이 보였습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을 뚫고 들어가 하루만에 요도 내시경 및 교수진찰, 그리고는 몇 일 후 그 소식을 듣고 작은형 식구들이 본가로 와서 밥을 먹으며 자기 땅 다른이에게 입찰 되어서 그땅 어떻게 찾아 올거라고 그이야기만 하였답니다

소변에 혈종이 왜 나왔는지 어떻게 치료 할건지 일언반구의 이야기도 없으면서요

그 후 아버지 전립선비대증 수술날짜 잡으러 간 외래날 간병보험 가입으로 각자 3만원씩 불어난 형제 곗돈을 가지고 한번도 묻지 않던 곗돈의 쓰임처를 형사처럼 붙기에 저도 이제껏 엄마 간병부터 쌓였던 여러가지 회한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대판 싸웠습니다 전화기 사이로 서운함이 여러가지 안 좋은 표현으러 배출 되더군요

그게 올 4월 그 후 이번 10월 아버지 후두암이 발병 되었습니다 원래 이런 일이 있으면 형제간에 상의 및 각자의 의견을 하고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자기 입으로 제일 사정이 나으며 사람처럼 산다고 하는 작은형이 의견 제시 없이 자기가 할 일만 알려주고 일정만 알려 달라 했다 더군요 어찌보면 어디병원 어디에 가서 어떤치료를 해야 최고인지는 누구도 아는 자명한 사실인데 의무 아니 자식의 도리를 여건 내지는 감당 하기 싫음 이밖에 여러가지로 표출 직접적으로 말하면 패륜아 아니면 자기자식들이 배울까하는 두려움 빙빙 돌려서 이야기 하고 전북대병원에서 초빈 확진 받은 날도 패암으로 치료 없이 자택에서 7년간 혼자 계시다 돌아가신 장인 이야기를 교수에게 하고....

너무 주저리 없이 이야기 하였지만 지금 현재는 아무튼 큰형과 작은형의 마찰 / 저는 일단은 어찌보면 작은형에게도 있는 자식의 도리를 회피하지 못하게 하고 싶어 전화오면 드라이한 대화만 하고 일단 17회 방사선 치료만 마치자는 생각으로 아버지와 강남의 암 요양병원에서 혜화 서울대 병원까지 왔다 갔다를 전담하며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자진 퇴사 후 실직상태....

아무튼 이렇게 주저리부저리 방대한 내용의 콩가루 집안 이야기를 이곳에 남기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매스컴에 훌러가 방송매체에 실려가 콩가루된 집안을 외부적요인으로 라도 다시 붙이고 싶은 막내의 심정으로 올립니다

이밖에 집안 내부적 사정은 말하지 못한 부분이 많으나 누군가 이글을 일고 매스컴에 냏기을 원하면 그때는 풀스토리를 말하고 싶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아버지와 같이 있는 암요양 병원에서 올립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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