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학
이어령
친구여,
창문을 열라.
3월이 아닌가.
햇볕이 들지 않아도 바람은
이미 녹색의 향내를 품고 있다.
응달진 어느 산골짜기에 차가운
얼음이 남아 있다 해서
누가 그것을 한탄할 것인가?
혹은 친구여!
당신의 작은 뜨락에 심어 놓은 목련이
지금껏 잠들어 있다고 너무 근심하지 말라.
손바닥을 펴 보면 햇병아리의
잔솜털 같은 3월의 감촉이
당신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을 느낄 것이다.
성급하지 말아라.
남해를 건너온 따뜻한 바람들은
때묻은 당신의 솜옷을 벗길 것이고,
사흘 동안이나 내리는 가랑비들은
닫혔던 들판을 다시 열 것이다.
친구여,
3월이 아닌가?
동면하던 언어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는 저 간지러운 유혹을
당신은 뿌리칠 수는 없을 것이다.
운명선처럼 손바닥에 뚜렷이 그어지는
저 봄의 촉감을 웅켜잡아라.
위의 글은 출근길 FM에서 소개된 글인데 제목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찾아 옮겨봅니다. 봄의 시학이라 제목이 참 근사합니다. 사실 출근길 여기저기를 기웃거렸지만 딱히 사진을 찍을 봄 풍경을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심 때 카메라를 둘러메고 근처 아파트를 한바퀴 둘러보니 아 글씨 많지는 않지만 매화꽃 몇송이가 펴서 인사를 건네고 볕좋은 곳에는 목련은 꽃단장을 끝내고 손님 맞을 준비를 끝냈더군요 그리고 먼저 핀 산수유와 동백은 벌써 절정을 치닫고 있습니다.
오늘 만난 여러 꽃 중에 으뜸은 매화인데 혹한의 추위에 얼어 죽을지라도 결코 향기는 팔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매화꽃향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향기를 맡을 수 없었는데 매화 나무아래서 꽤 오랜시간을 머무니 그때서야 조심스럽게 은은한 매화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매화꽃 향기는 자신이 고요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향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매화는 쉽게 곁을 내 주지않는다고 하더니만 역시 소문대로입니다. 오래 머물고 관심을 가져야만 그때서야 은은한 매화향으로 인사를 건네니 말입니다. 더불어 저와 오랜시간 마음과 생각을 나눠주시고 격려해주신 친구 여러분께 매화 향기와 더불어 봄인사를 전합니다.
“친구여, 창문을 열라. 3월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