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서촌 풍경-이문재 시인의 <오래 만진 슬픔>

미카엘2015ㅣ설본
2023.10.17 14:12 | 조회 156

아침 기온이 10도 아래로 떨어진다고 하여 단단히 무장하여 길을 나섰습니다. 마침 겨울을 대비하여 주문한 두툼한 자전거 바지도 도착하였고 일본 여행하면서 한겨울에 신는 부츠도 사두었기에 모두 꺼내 입고 신고 길을 나섰습니다. 발열 장갑만 착용했다면 영하의 날씨도 견딜만한 복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맛있는 음식을 표현할 때 흔히 겉바속촉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고 하는데 오늘 자출 하면서 느낀 감정은 겉시속따입니다. 겉은 시원하고 속은 따뜻했습니다.

자출 한다고 하면 항상 빠지지 않는 질문은 어느 계절이 자출 하기 좋으냐는 물음입니다만 저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지금'이 가장 좋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눈이 내려 길이 얼지 않는 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지금'이 좋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 사진은 어제에 이어 북촌에서 식사하고 서촌으로 이동하여 박노해 사진전 보고 온 풍경입니다. 박노해의 사진전은 언제 봐도 감동이고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특히 사진에 제목만 적혀있는 여느 전시회와 달리 사진에 대한 설명이 있어 좋습니다. 먼저 작품을 감상하고 설명을 읽은 후 다시 감상하면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와인을 마시기 전 잔을 흔들어 시각과 후각으로 맛을 본 후 마시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가을은 무엇을 해도 깊어지는 계절입니다. 하여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깊어 보이고 사랑도 깊어지고 시를 읽어도 생각이 깊어집니다. 보내드리는 시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이 슬픔은 오래 만졌다

지갑처럼 가슴에 가지고 다녀

따뜻하기까지 하다

제자리에 다 들어가 있다

이 불행 또한 오래되었다

반지처럼 손가락에 끼고 있어

어떤 때에는 표정이 있는 듯하다

반짝일 때도 있다

손때가 묻으면

낯선 것들 불편한 것들도

남의 것들 멀리 있는 것들도 다 내 것

문밖에 벗어놓은 구두가 내 것이듯

갑자기 찾아온

이 고통도 오래 매만져야겠다

주머니에 넣고 손에 익을 때까지

각진 모서리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리하며 마음 안에 한 자리 차지할 때까지

이 괴로움 오래 다듬어야겠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를 힘들게 한 것들이

우리의 힘을 빠지게 한 것들이

어느덧 우리의 힘이 되지 않았는가

이문재 시인의 <오래 만진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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