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가 미웠었다.
어릴때부터 아빠랑 엄마는 싸움이 잦았다.
아빠는 어릴때부터 고생을 많이하고
그걸 다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사람이었고
엄마는 온실속의 화초처럼 사랑받고 살아온
막내딸이었다.
그런 엄마는 아빠를 만나서 너무 많이 고생했고
아빠는 사랑받고 자라온적이 없어서
그 흔한 고맙다는 말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아빠가 술을 먹거나 딴짓을 하거나
한 그런 사람은 아니였고
사회생활 열심히해서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지만 다정하지않고 가부장적인
그 시대의 아빠셨다.
자식에게 살갑게 대하지는 않았지만
힘들때는 늘 옆에서 아빠가 있으니 걱정하지말라고
지지해주는 강한 아버지셨다.
하지만 엄마가 아빠의 폐암 병간호하면서
스트레스로 우울증도 걸리고
그 이후에 난소암까지 걸려서
난 아빠를 정말 미워했었다.
아빠때문에 엄마가 병에 걸린거라고
모진말도 많이 했다.
그리고 엄마가 난소암에 걸린 해에
아빠는 폐암 전이가 되었고
나는 엄마 아빠 근처에 신혼집을 꾸리고
매일 엄마 아빠를 신경쓰며 살았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나는 엄마가 바라던 임신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
산후조리원에 있을때
엄마가 난소암이 온몸에 전이되서
이제 손쓸수없는 단계에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도 난 아빠를 정말 원망했다.
왜 미리 얘기하지않아서
엄마 모시고 살지도 못하게 했는지...
엄마는 내가 임신하지못할까봐
일부러 전이사실을 안알린것이었다.
그래도 아빠는 알려줬어야했다고 원망했다.
삼성병원에서 엄마 여명이 3개월 남았다는 말을 할때도
아빠가 먼저 장례식장 준비를 하라느니
영정사진을 준비하라느니 얘기해서
아빠가 참 매정하고 끝까지 엄마 생각은 안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엄마를 억지로 운동시키고
엄마 체력은 생각않하고 자기 멋대로 엄마를 힘들게해서
엄마가 더 빨리 갔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렇게 미워한 아빠지만
아빠마저 돌아가실까봐 아빠한테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움이 쌓이니
잘하다가도 화가나고
엄마가 받아야할 효도를 왜 아빠한테 하고 있나
내 자신에게 화가 날때가 많았다.
그래서 아빠한테도
내가 언제까지 이래야하냐고
아빠때문에 엄마 돌아가신거라고
화낸적도 많았다.
그래도 어린 쌍둥이 키우면서도
아빠까지 잃지않기위해 아니 아빠 가실때 후회하지 않기위해
주 3회는 아빠 밥 차리고
명절이나 행사있을때마다
상다리 뿌러지게 차려드리고
아이들 시댁에 맡기고 아빠랑 여행도 다녔다.
아빠를 미워하면서도
아빠한테는 나밖에 없다는 동정심때문에
나는 효녀니까 아빠한테 잘해야한다는 의무감때문에
아빠한테 잘했다.
그러면서도 아빠때문에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아빠를 미워했다.
아빠도 내 맘을 다 아셨지만
너 아니면 누가 하냐고 말하실때마다 더 화가 났었다.
4년을 그렇게 아빠 집 근처에서
아빠가 코로나 걸리거나 폐렴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사람 만나는것도 못하게 하고
우리 애들도 감기걸려오면
아빠 근처에도 못가게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리고 올해 9월
아빠가 갑자기 숨차하시고 힘들어하셔서
응급실에 갔었고
아빠가 기적적으로 퇴원할수있었다.
그때 오빠가
자기집 근처에 시설좋은 암 요양병원이 있으니
거기에 모시면서
자기가 병원도 모시고 가고 신경쓰겠다고 했다.
그곳은 우리집에서 왕복 4시간 걸리는 곳이라
아이들 유치원 등원시키고 갔다가
하원시킬 시간에 맞춰서 와야했기에
일주일에 한번 겨우 5~10분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아빠는 그곳에서 친구들도 사귀고
그렇게 가고싶었지만 코로나때문에 못간
교회도 갈수있었다.
아빠도 거기서 영양제맞으며
몸도 더 좋아지는것같았고
나도 아빠 간병의 책임감에서 벗어나서
편하게 생활할수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우리 애들한테 집중하면서
아빠는 잘 있겠지하며 의무적으로 하루에 10분정도
통화하는것만 했었다.
그러는 동안 11월에 아빠는 삼성병원 진료를 보러가서
코로나에 걸렸다.
암요양병원에서는 그냥 쓰던 병실을 독실로 한채
거기서 격리하시라고 했고
증상에 맞는 약을 처방해준다고 했다.
하필 아빠가 먹고있는 타그리소가 팍스로비드와 같이
복용하면 안된다고 해서
아빠는 염증수치도 높지않았고 열도 안나서
몇일 감기약만 먹고 격리해제되었다.
아빠도 딱히 컨디션이 나쁘지 않다고 했고
약간의 기침만 나온다고 하셔서 괜찮다고 여겼다
그리고는 갑자기 피가래와 노란가래가 나온다고
잘 드시고 있던 만성폐쇄성폐질환 약을 끊어버리셨다.
약을 끊으니 피가래가 멈췄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아빠 호흡이
안좋아지셨던것같다.
오빠한테도 아빠가 숨쉬는게 좀 힘들어보인다고 했는데
요양병원 피검사 수치상
염증도 높지않고 괜찮다고 했다고 했고
아빠도 자꾸 병원가니 힘들다고 했다고
2주후에 있을 호흡기내과 진료에서 보자고 했다.
나도 아이들 등하원 시간때문에
가도 잠깐 뵈었던거고
그날 잠을 못자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런거라는
아빠 말에 그런가보다 해버렸다.
그리고 호흡기내과 진료 하루 전날
아빠는 쓰러지시고
지금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계신다.
의사는 살 가능성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아빠가 쓰러진후
왜 오빠는 아빠모시고 x레이라도 찍어보라는 말을
무시했는지 화가 났고
그보다 내가 가래얘기를 듣고
왜 바로 병원에 모시지 않고 넘겼을까 후회가 되었다.
내가 아빠 퇴원할때 요양병원에 보내지말고
우리 집에 모실껄 그랬나 너무 후회도 됐다.
자기가 잘 모실테니 아빠 신경쓰지말라고 했던
오빠를 믿은것도 너무 후회가 됐다.
그냥 내가 할껄
그런데 생각해보니
요양병원있을때 아빠는 행복해보였다.
아빠는 사람만나는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3년간 사람도 못만나고
유일하게 만난 사람이 나였어서
올해는 우울증처럼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는 말까지 하셨다.
나도 4년간 그런 얘기를 들어서인지
그만 좀 하라고 했었다.
생각해보니 일주일에 나랑 밥먹는 2~3일
1~2시간을 제외하고는
아빠는 누구하고도 얘기하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요양병원에서는
몇시간을 다른 환자들과 수다떠느라
내 전화도 안받았다.
집에 있을때는 전화벨 울리자마자 받으셨었는데...
밥도 내가 해준것보다
더 환자식으로 입에 맞아서
잘 드셨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퇴원하고 내가 모셨으면
아빠는 지금도 살아계실텐데
라고 생각한건
내 집착이고 내 오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랑 있었으면
더 우울해하셨을테니까
하나님께서 아빠에게
천국가기전에 이 땅에서 즐겁게 지내라고 주신
보너스 3개월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나랑 얘기할때는 항상
건강한 니가 뭘 아냐?
한입이라도 더 드시라고 하면
나도 먹고싶다. 근데 안되는걸 어떡해하냐고
답답해하셨다.
하지만 요양병원에서는
같은 환자들이라 공감대가 형성되서인지
얘기하는게 즐거우셨던것같다.
엄마랑 같이 얘기하며 옥신각신한게 좋았다고 한것처럼
혼자 있을때보다 그 사람들과 얘기나누면서 지내는 시간이
행복하셨던것 같다.
아빠는 폐렴으로 쓰러진 그날 새벽,
옆에 있던 환자가 쓰러진 아빠를 발견해서
간호실에 연락해 빨리 조치를 취해
심정지전에 병원에 실려오셨다.
아빠 입장에서는 병원에 실려오기전에
거기서 바로 천국에 가셨다면 더 편안히 가셨겠지만
우리가 아쉬워할까봐 잠깐의 시간을 주셨다.
이젠 마음의 준비를 하며 보내드리려고 한다.
너무 갑자기 아빠가 쓰러지셔서 우리도 모르게
기도삽관을 해달라고 했지만
아빠의 평소 말씀에 따라
다음수순인 기관절개는 거부할꺼고
다시 기관삽관이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치료는
하지않기로 했다.
아빠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면 좋겠지만
아빠가 그렇지못하다면
의식없이 고통없이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겠다.
이젠 아빠 마음을 조금은 알것같다.
엄마가 아플때 왜 나한테 전이된거 얘기를 안하셨는지
왜 아빠가 엄마 장례준비를 미리 했는지
엄마가 힘들어도 왜 그렇게 운동시키려고 했는지
그리고 내가 그렇게 원망했는데도
그래도 니가 해야지 누가하냐고 말했는지
그리고 나한테 고맙다고 한 그 말이 진심이었던것도
요양병원에서 나오는 과일이 많다고
못먹고 버리기 아깝다며
매주 올때마다 바리바리 싸준것도
표현은 못했지만 다 아빠가 가족을 사랑해서였음을
미안해 아빠
고마워 아빠
사랑해 아빠
다시 건강히 깨어나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게 힘들다면 내 욕심이라면
아프지않고 엄마가 있는 천국으로 편안하게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