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재 끝나면 글을 올리자 올리자..했는데. 이제서야 올리게 되네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이미 저때도 어머님 몸속엔 암이 자라고 있었을 것 같아요..후회해도 이미 늦었지만요..
8월에 소천하신후.. 핸드폰에서 사진을 뒤적거리다가 찐으로 좋아하시는 두분 모습이 보기좋아 배경화면으로 해놓았습니다.
사진남기는 걸 안좋아하셨던 어머님도 저때만큼은 너무 행복해 하셨어요..
작년 11.1일엔 엄마랑 같이 작은 케잌 놔두고서 생일축하노래 불렀었는데..그것만 해도 정말 좋았었는데..
어렸을땐 '내 생일인데 뭘 받지?'하는 기대감으로 설렜지만.. 나이가들고 보니,, 두분이 아니었다면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할수 없었으므로.. 오히려 부모님께 ' 태어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맘이 더 커가더군요..
생일때마다 '따님.. 갖고 싶은거 있으면 얘기해..뭐 사주꼬?'라고 물어보셨는데.. 이제는 그 목소리를 들을수 없고, 머릿속에서만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이..아직까진 눈물만이 흘러 슬프기만 합니다..
누군가,, 부모님중 한분이 돌아가시면..장례식땐 이래저래 정신이 없다가..
한 몇달-몇년간은 뜬금없이, 실없이, 누가보면 미친 사람인가 생각할 정도로 눈물이 흐른다던데..
처음보단 덜하긴 했지만.. 아주 조금씩 눈물을 쏟는 시간이 줄어드는 걸보면,, '내가 이렇게 적게 울어도 되는건가.'하는 무정한 내 자신에 놀라고,, 떠나가신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듭니다..
항상 퇴근전에 전화해서 오늘저녁은 뭘 먹을까.. 라고 여쭤보면 ''따님 알아서 하세요..'라던가..'뭐뭐 사온나.,'라며
말하시던 목소리.. 저녁먹고 동생이랑 다같이 일일드라마 보면서 얘기하고..
하루를 마무리할때 '오늘 하루도 잘 견뎌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드리면.. '아니다, 내가 고맙다,'며 힘겹게 얘기한후 조용히 잠드시고,, 제손을 잡고 주무셨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성인이 되고 난후 젤 어머니와 많이 붙어있었던 시간이 지난 2년간의 투병기간이었습니다.
돌아가시고나서 제일 많이 떠오른 모습은.. 수줍게 미소지으면서 얘기하던 목소리와 표정이었구요..
이후론 사망하기 직전 힘들어하시던,응급실 가기 며칠전부터 기력이 쇠하고 창백했던 모습을 보고 얼른 응급실에 모시고 가지 못한.. (딸이 의사이면서도 말입니다) 잘 못해드렸던 부분들만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안그럴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과 한치의 틀림도 없었네요..
사람이 시련을 겪으면 비온뒤 땅이 굳듯.. 내공이 쌓이고, 마음이 더 단단해진다는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지나도 단단해지기 보단 싱크홀처럼 텅 비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흙으로 덮는다 한들..
쉽게 채워지지 않는..
49재를 외할머니가 다니셨던 절에서 지냈습니다. 그때 주지스님이 이제는 영혼이 이승을 떠나 이곳에서의 기억을 잃는다고 하더군요..
제가 엄마 였더라도 이제 고생했던 이승은 돌아보기 싫으실것 같아요.. 속썩인 다른 가족들이나, 말년에 병으로 힘드셨으니까요...
그래도..이기적인 자식은 꿈속에서만이라도 나타나 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넘버원, 어머니..
이제 이승에서의 힘들고 아픈 기억은 다 잊고, 어디서든 행복하게 지내세요...
오늘.. 저를 낳아주셔서.. 저의 엄마로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의 딸로 살아서 행복했으며..
앞으로도 행복하게 지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