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담쭈아빠] 율법의 완성..

담쭈아빠
2017.03.02 07:00 | 조회 2.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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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일상으로 돌아와 하루하루 불량식품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담쭈아빠입니다. 사실 전쟁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싸워야 전쟁인 것인데.. 언제나 굴복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유린이라고 불러야 할 판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일 백년손님 촬영지.. 후포리 후포중앙교회에서 들었던 말씀을 중심으로 율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해요.. 성경의 본문은 MATTHEW 5 : 17 ~ 20 까지의 말씀이에요.. 마태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에서 가버나움의 세리였던 사람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국세청의 세금징수팀 공무원이라 할 수 있겠네요.. 사복음서의 첫번째 마태복음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작년에 인기있었던 38사기동대가 떠오르는군요.. 마동석 이미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자와 병든자의 편에서 기적을 행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진리를 가르치시지만.. 당시의 기득권세력인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은 예수님의 그 모든 사역이 못마땅하기만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good news)에 수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되며.. 그분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지만.. 그 가르침이 자신들이 내세우고 있는 율법을 잘 지켜야만 복을 받을꺼라는 내용이 아닌 그 당시로는 혁명적인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행위를 율법의 잣대로 제한하기 위해 안식일에 손이 마른자를 고치신 것이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기준으로 반론을 제기합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엄습했거든요. "이거봐라~ 우리가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세워놓은 율법을 폐기하려는 것 아냐? 사람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우리들을 우러러 봐야하는데 전혀 율법을 강조하지 않는 새로운 가르침에 마음을 뺏기고 있잖아?"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여기서 율법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고자 해요.

유태인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라는 자긍심이 있지요? 그것을 선민(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사상이라고 하고 그들은 예전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이 14세 이전까지 구약성경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를 통채로 외우도록 해요. 한글문서의 글꼴크기 8 정도의 깨알같은 글씨로 319페이지에 해당하는 분량입니다.


율법이라고 함은 기본적으로 영화 이집트왕자의 주인공.. "Mose"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온 돌판에 새겨진 10가지 명령이 기록된 십계명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율법적인 해석으로는 실생활에서 적용할 구체적인 세부조항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죠.. 그것을 히브리어 미쉬나(Mishnah)라고 하고 원어의 뜻은 "공부"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쉬나는 613개의 세부조항과 800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법전으로 편집되어 갑니다. 미쉬나의 편집목적은 법규를 변경할 수 없도록 최종 확정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가능한 해석들을 종합하여 나타내고자 함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태인의 지혜의 가르침 "탈무드"는 미쉬나의 주석으로 비유를 통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찬된 것이죠.. 아마 여러분도 탈무드의 여러가지 이야기를 책이나 만화를 통해서 접해 보신적이 있을꺼에요.

하지만 인간은 율법이 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그 자체에 집착하며 스스로의 편의에 따라 이용하고자 하는 교만함의 죄악을 저지릅니다. 현대사회에서도 대한민국의 국가정책과 민주주의 근간,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범죄자의 학력은 의외로 서울대법대 출신이 많습니다. 그 이유가 왜인지는 이제 이해할 수 있으실꺼에요.

우리나라의 헌법을 살펴볼까요? 헌법전문은 12줄 정도의 내용으로 요즘 많은 언변가들이 외우고 있을 정도로 간단합니다. 하지만 세분화되는 법률은 분야별로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등으로 나눠지고 각 법령과 시행령, 시행규칙등으로 끝도없이 세분화 되어가지요. 한 평생 살다가 죽는 날까지.. 아마 나와 관련된 법률은 도로교통법과 세법의 몇 가지가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일꺼에요.. 수만가지의 법이 있지만 그런 법이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는 것이죠.. 법을 너무 잘 알아서 이용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예시였어요. 급하게 위독한 환자가 있어서 차에 태우고 비상등을 켠 채로 갓길로 달려서 병원근처에 대충 주차를 하고 환자를 응급실로 옮긴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7만원짜리 범칙금통지서가 트리플로 날아왔다는 거에요. 너무너무 야속해서 이의신청을 하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서 사정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찰관은 사정은 딱하나 절차상의 증빙이 없이는 감면이나 통지서의 취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는겁니다. 그것이 법의 기능인 것이죠.. 그래서 요구하는대로 환자의 응급실 입원날짜가 표기된 내역서와 지정된 양식의 탄원서를 첨부하여 팩스를 보냈더니 담당책임자가 전화가 와서는 "범칙금통지서 취소처리 해드렸습니다. 법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 생명이 우선이지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법은 정말 최소한의 것인겁니다. 법의 정신을 잊은 채.. 그 법 자체를 지키려고 할수록 더 많은 법들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목적을 지니거나 특정한 경우를 제한하는 특별법처럼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려고 오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간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크게 두 가지의 새 계명으로 기존의 모든 계명을 압축합니다.

첫째..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둘째.. 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는 성경의 핵심내용인대도.. 사실 지키는 사람은 몇 없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알고 있습니다.

사랑에 한계라는 것이 있을까요? 어느 정도선까지 참아주면 사랑이고 더 이상 못참고 폭팔하면 사랑이 아닌.. 그런 어떤 한계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겁니다. 사랑하는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는 한계없는 사랑을 순종함으로 보여주시면서 인간이 수천권으로 편집해서 작성해 놓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 되셨어요.


순종(obey)이란 내게 요구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간신히 지키고는 있는대.. 내 맘은 그러고 싶지 않았어.. 봉사를 하는데.. 정말 하기 싫었어.. 헌금을 드리기는 했는데.. 사실 너무 아까웠어..

그런 형식적인 순종의 흉내, 보여지기 위한 헌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칼을 들고 가서 사람을 찔러 죽인 자나 마음속으로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자나 같은 죄악으로 보신다고 했어요.. 다른 사람의 아내와 잠자리를 가지는 사람이나 상상으로만 음욕을 품은자도 똑같은 죄악으로 보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물론 사회에서의 법률은 최소한으로 그 행위자만 처벌했었지만 이제는 그 법 마저도 사라졌으니 일부 도덕적인 비난을 감수한다면 얼마든지 법을 이용하는 똑똑한 법꾸라지가 될 수 있는 완악한 시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될꺼에요. 암에 걸려 죽는다고 해도 보호자와 푸닥가리를 하고 싸우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큰 댓가성을 위해서 어떤 목적을 위해서 내 자녀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 없을겁니다. 내가 암이 완치된다고 해도 그것은 순종할 수 없는 경우일꺼에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우리가 grace 라고 부르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설령.. 암이 낫지 못하고 생명을 다한다고 해도 두렵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정말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겁니다. 사고로 죽으나.. 암으로 죽으나.. 노환으로 죽으나.. 내 죽음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 또한 내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주신 육체를 소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것은 우리 몸은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토기장이가 흙으로 빚어놓고 불에 구워낸 영롱한 빛을 내는 청자나 백자를 보고 나는 왜 저렇게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냐고 질그릇이나 놋그릇이.. 주인에게 불평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담습니다. 물론 그릇이 깨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더 이상 담을 수 없을만큼의 벅찬 감동이나 감사함이 느껴질 때.. 그릇이 차고 넘친다고 표현을 하지요.. 우리는 그것을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모든 양자물리학의 법칙은 "등가교환의 법칙" 이 적용됩니다. 분자나 원자 하나를 얻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하나를 잃게 되어있지요.. 그 율법과 같은 과학을 초월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구원이 인간의 어떤 행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값없이 주어진다는 점 때문에.. 온전한 믿음은 정말 비과학적이고 온전한 신앙은 정말 재미가 없습니다.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사(능력)으로 눈부시게 빛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기분이 좋아지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척 하면서 나를 나타내야 하는데.. 그걸 못하게 막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의 길을 따라가는 과정은 정말 세상기준으로는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순종하게 되는 각자의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내 생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 불러도 되겠지만.. 언제나 기적은 하나님의 때에만 일어납니다.


그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어 방황하고 고통속에 몸부림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너무 싫고 재미가 없어 짜증이 나는대도..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부르십니다. 네가 상상할수도 없는 평안함과 자유함을 주겠다고요.. 왜 너의 영혼 하나가 온 우주보다 귀한지 보여주시겠다고요.. 그저 부르심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는 그 한걸음이 정말 수십번의 항암치료보다 힘이 듭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내가 댓가없이 받았으니 내게 주신 은사와 능력도 댓가없이 나눠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인간은 그러지 못합니다.

예전에 저와 대학동문이고 지금은 광주 무지개교회 담임목사님으로 계신 조요셉 목사님께서 추천하신 책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율법이냐.. 은혜냐.."

추천을 받고 결국 여전히 읽어보지 못했지만 기억이라도 하고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율법과 은혜..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려서는 안되는 균형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부탁하고 싶은 기도제목이 있어요. 제가 섬기는 성천침례교회가 상암동 새성전으로 이전을 하면서 준공시점과 기존교회를 비워주어야 하는 시점이 잘 맞지 않아서 한달 정도는 근처교회의 예배당에서 연합예배도 드리고 태권도장도 빌려서 수요예배, 금요예배를 드리게 될 것 같아요.

여러가지 어려움들로 목사님.. 마음도 무겁고.. 성전건축 과정 가운데 많은 상처입은 마음들도 있는 것이 현실이에요. 동행에는 5만명에 가까우신 환우분들이 계시죠.. 아마 대한민국의 교회 숫자와 비슷할꺼에요.. 더 늘어나고 있으니 어쩜 더 많을 수도 있겠네요.. 저희 교회 건축이 잘 마무리되고 여기저기 떠돌며 드리는 예배 가운데서도 반드시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반전을 이루십니다.
필요한 물질, 사람, 시간.. 절묘한 때에 허락하실꺼에요.

성산동 성전에서 드리는 마지막 수요예배 특송 영상과 함께 마칠까해요.. 부족하지만 아내가 섬기고 있는 "샤론중창단" 입니다. 함께 나누실 찬양은 "빛을 들고" 라는 곡이에요.. 난이도가 쉽지 않은 곡인만큼.. 넉넉한 마음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https://youtu.be/VZhaWmq5cMs

용량이 너무 커서 YouTube 링크로만 가능하겠네요.. 촬영중에 앞에서 왔다갔다 하는 녀석은 저희집 귀요미 2호에요.. 요즘 누가누가 더 아빠랑 닮았나? 놀이를 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엔 누가 더 닮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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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화요일에 방문했던 사랑의병원에서는 언제나 마주치는 마카다미아님과 두나미스님 부부를 만났고요.. 귀하게도 기적이올꺼에요님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어쩜 저에게는 모두 미인들만 마주치게 해주시는 것 또한 은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기적이올꺼에요님 남편분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시간 갖겠다고 하고 사진촬영도 했어요.. 방학의 마지막날이라고 따라 온 귀요미1호도 함께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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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센스가 좀 생겨서 스스로 왕대가리가 되어주는 개념은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으니.. 앞으로 저와 사진을 찍게 되는 대두(?)님들께서는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완전한 봄소식과 함께 봄비도 내렸네요..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우리의 완치를 향한 각오와 희망을 간직하는 멘탈도 더욱 단단해지기를 소망해봅니다.

수요예배 먼저찬양도 잠깐 영상으로 담아봤어요.. 그녀의 자리는 원래 건반이 익숙하지요.. 다음 시간에는 복음에 관한 주제나 혹은 커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보고자 해요.. 오늘 하루 귀요미들에게는 새학기, 새로운 선생님, 새 친구들 덕분에 설레이는 하루가 될 것 같아요. 우리에게는 새생명을 주심을 향한 벅찬 감동과 넘치는 감사가 있을꺼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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