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한동안 글 안썼다가 회원님들 안부도 물을 겸 간만에 카페에 접속했네요ㅎㅎㅎ
결론부터 말하자면,
폴폭스 항암 13회차를 맞을 때까지 피검사 수치가 늘 좋았고 CT에서도 더이상 암이 보이지 않는다는 좋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번주 토요일에 또 CT를 찍는데 이번결과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음 항암맞는 동안은 확실히 힘들긴해요. 약을 맞고 일주일 정도는 힘이 없어서 애도 못보고 누워있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다른 분들보다 부작용은 덜한 것 같고 체중유지도 잘 되고있습니다.
음식은 먹고싶은 건 다 먹지만 매운거나 질긴 채소류는 최대한 안 먹으려고 하고 있구요. 고기는 매끼니 먹고 있어요. 운동은 인요가를 하루에 1-2회씩 매일하고 있고 육아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저이지만 가끔씩 우울감이 몰려올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저는 일기를 쓰거나 명상을 합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유일한 시간이에요. 방문 꽉 닫고 잠 못 이루는 조용한 새벽에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잠도 잘 오더라고요!
이 글도 어제 항암제 맞고 심장 두근거림 때문에 잠이 안와서 새벽에 끄적인 건데 병마와 힘들게 싸우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좋은 마음에 공유를 해볼까해요.
-2026. 2. 5. 새벽
어제 오전부터 항암을 맞고 집 와서 푹 쉬었는데도 몸이 처친다. 벌써 13차 항암까지 왔네. 고생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제일 솔직해지는 것 같다.
여전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신경 쓰이긴 하지만 글쓰기를 할 때마다 뭔가 정신이 총명해지는 느낌이고 잠도 달아난다.
주제도 없고 목표도 없는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일기가 나를 나답게,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글쓰기는 내 영혼에 큰 울림을 준다.
쓸 때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겠고 글을 다 쓰고 나면 갑자기 졸리기 시작한다. 명상 그 자체다.
항암 하면서 겨울을 나는 게 정말 힘들었는데 어젠 입춘이었고 날씨가 많이 풀렸다는 게 체감이 됐다.
난 강인한 나무의 생명력처럼 잘 버텨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생기고 벌어질지 모르겠다.
첫 항암 입원 때 생명 연장을 목표로 항암 진행을 하겠다던 전문의 선생님의 말처럼 2-3년이 고비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다면 재발도 안 하고 완치되겠지.
이런 생각이 항암약을 맞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든다.
내 힘으로 막을 수 없다면 나는 받아들이는 걸 선택하겠다.
내가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바꾸려고 노력하겠지만 통제 밖의 일들은 놓아주기로 했다.
항암을 하면 몸이나 신경 변화에 예민해지고 혹시라도 안 좋아졌을까 봐 불안함에 잠을 못 이룬다.
그리고 마음도 많이 약해져서, 지금 같지 않고 나중에라도 몸이 악화된다면.. 연명치료를 거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와 가족들을 위해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갑작스러운 이별을 대비해 유언장을 써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암에 걸리고 나서 드라마나 솔로 지옥 같은 연애 프로그램을 잘 못 본다. 나와 달리 싱그럽고 매력 넘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내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한 번에 쏟아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소원이 있다면,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에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고 사랑 가득하게 살고 싶다.
내 몸 깊숙한 곳에 호흡을 불어넣고 있다.
살아있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숨을 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항암하고 일주일 뒤면 이 감정을 잊어버리겠지.
그래도 매번 기억나게 해주는 항암제한테 고맙다.
어제 병원에 가면서 아빠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참 '삶' 자체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잊고 있는 사실인데, 실은 우리는 죽음에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매일 잠에 들고 꿈을 꾸며 죽음을 대비하기도 하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수많은 가능성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운 좋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다.
차를 타고 가다가 엔진장치 이상으로 죽을 수도 있고터널이 내려앉을 수 있으며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쓰러질 수도 있다.
집 안에서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윗집이나 옆집, 아랫집의 부주의로 화재 피해를 고스란히 받을 수도 있고강도 사건이 생겨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나처럼 갑자기 암 판정을 받아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 있고, 싱크홀이나 산사태 때문에 걸어가다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의 가능성은 무한하고 죽음만이 공평하게 인간세계를 관장한다.
그렇기에 '호흡'이란 것은 아주 큰 달란트고 이 순간순간이 행복이고 행운이다.
인생이 힘들고 복잡해졌다면 자기 연민에서 빠져나와 이렇게 거시적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게 습관이 되면 일시적으로 감정에 휩쓸리더라도 다시 중심을 잡는 게 쉬워진다.
죽음이 무섭지 않다는 게 아니다.
여전히 두렵고 공포스럽다.
그래도 예전처럼 적대시하고 미워하진 않는다.
언젠간 찾아올 죽음을 위해 하루하루를 더 재밌게 보내고 싶다.
그리고 여기 있는 동안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많이 나눠줘야지.
Love is all.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