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시골 이야기와 도시 이야기

화이트l위본
2025.09.23 12:12 | 조회 902

살면서 드물게 잘한 일 가운데 하나가 시골집인데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은퇴 후의 소일거리로 시골살이가 저에겐 잘 맞는 것 같아요.

이웃에게 나눠줄 게 없을 정도로 하찮은 텃밭 농사에, 풀을 내버려둬서 있는 꽃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의 손이지만 그럭저럭 십 년째 꾸려가고 있지요.

마당과 텃밭은 집주인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라 부지런하고 정갈한 성향의 주인은 가지런하게 관리합니다만 그렇게 유지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내버려 두면서 가끔 손 보는 정도로 하고 있습니다.

새로 입주한 옆집 지인은 내후년이 정년퇴직이라 시간이 많은 저를 부러워하면서 출근도 하기 싫고 시골에만 있고 싶다 합니다.

잔디를 백 평 넘게 심어 골프장같이 드넓은 초록을 마당에 펼치고 있는 옆집은 그림에 나오는 전원 주택처럼 반듯하고 예뻐요.

아담하고 단순한 저희 집은 나무에 온통 둘러싸여 정감있어 보이긴 합니다.

아침 산책길에 만나는 물소리가 들리시나요?

암을 겪고 십 년이 훌쩍 지나고도 동행을 못 떠나는 이유는 암이 제 삶을 대부분 바꿔놓았고, 인간 관계를 비롯한 모든 것을 새로 구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유와 성취가 목표였다면 지금은 일상의 소소한 만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요. 카프카가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인생은 일상' 이라고 했다는데 일상이 모여 결국 인생이 된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아침을 밥 대신에 과일채소식으로 바꾸니 밥상의 고민으로부터 벗어나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싫어하던 운동을 춤으로 바꾸고나서 날마다 무도회에 가는 기분으로 살아요. 월수 저녁은 라인댄스, 화목 오전은 줌바 댄스를 합니다.

시골집에서 불어보려고 오카리나를 배우고 있는데 요즘은 어니언스의 <작은새>를 연습하고 있어요.

도시의 일정을 끝내고 목요일에 혼자 시골로 갑니다. 가족을 돌보는 건 오래 했으니 나를 위해 살기로 작정했기에 미련없이 아파트를 떠나 시골집으로 향합니다.

삼각형 작은 우리집

저녁 산책길에서 본 옆집과 우리집

지금까지 살면서 대체로 행복했으나 제가 선택한 삶을 위해 힘들게 노력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십여 년 전, 그 모든 걸 다 놔야 했지만 막상 내려놓고나니 얼마나 홀가분하던지요.

과체중과 저체중을 겪은 후 지금은 군살없이 날씬한 몸이 당연히 제일 좋아요. 주변에서 작아서 못 입는 옷들을 주니까 쇼핑을 잊고 살아도 입을 옷들이 늘어납니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주위에 밥도 사고 커피도 살 수 있어서 또한 좋아요.

암을 겪고 크게 바뀐 점은 매사에 걱정을 별로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자잘한 근심이 끊이지 않던 예전에 비해 집착을 버린 지금은 '내 모든 걸 아시는 이가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이렇게 믿고 의지하게 되어 자식 일이든 무엇이든 크게 염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원래도 태평스러운 편이긴 했어요. 단순하고 가볍고 웃기는 사람이라 신중하고 차분한 사람을 남편으로 골라야 했는데 저는 만족합니다만 결혼 생활이 만족스러우면 다른 한 사람이 희생하고 있는 거라던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 생각나네요.

세 알 달린 자두를 찍고 있는 남편, 설마 희생하고 있는 건가요?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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