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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동행 칼럼] 암환자를 위한 밀가루 바로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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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30 00:44 | 조회 3.5k

1. “당은 암세포의 먹이다?” - 그 오해와 맹점

암 진단을 받은 많은 환우들은 식단에서 가장 먼저 설탕과 단 음식을 제한합니다. “당은 암세포의 먹이다”라는 말이 그만큼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과학적으로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세포는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며, 암세포 또한 빠른 분열과 성장에 많은 포도당을 필요로 하지만, 설탕 섭취가 암세포만을 선별적으로 자라게 하거나, 암을 유발한다는 직접적인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설탕 자체보다는, 정제 탄수화물의 지속적인 과잉 섭취가 야기하는 혈당 스파이크, 인슐린 저항성, 만성 염증, 대사 불균형 등 전신적인 생리적 변화에 있습니다.

또한, 설탕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이 강조되는 반면, 쌀이나 밀가루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대한 태도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밥은 괜찮고, 면은 피해야 한다?

떡은 허용되지만, 빵은 금지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분법적 판단은 과학적 기준보다는 문화적 익숙함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백미와 정제 밀가루는 모두 고혈당지수(GI)를 가지며, 대사적 관점에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핵심은 ‘쌀이냐 밀가루냐’가 아니라, ‘정제 탄수화물을 어떻게,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섭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 밀가루 자체가 암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현재까지 밀가루가 암을 직접적으로 유발하거나 재발을 촉진한다는 인체 기반의 결정적 연구는 보고되지 않았으나, 장기적인 정제 탄수화물 섭취가 비만, 인슐린 저항성, 대사증후군 등을 통해 암의 위험 인자로 작용할 수 있다는 간접적 연관성은 제시되고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얼마나 자주 섭취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조리되는가", "어떠한 종류의 밀가루를 선택하는가".

3. 밀가루 음식에 대한 인식, 조리 방식의 문제이다

흔히 ‘밀가루 음식’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라면, 짜장면, 떡볶이, 부침개, 가공빵, 고열량, 고염분, 고지방, 강한 양념

이러한 음식들이 건강에 부담이 되는 이유는 재료로서의 밀가루 때문이라기보다는, 조리 방식과 함께 사용되는 부재료의 조합 때문으로, 기름을 쓰지 않고 삶거나 찌는 방식으로 조리하고, 채소와 단백질을 적절히 곁들이며, 염분과 당분을 절제한다면, 밀가루 음식 또한 충분히 균형 잡힌 식사가 될 수 있습니다.

밀가루에 대한 혐오감은 단순한 건강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 등으로부터 구호물자로 대량 유입된 저급 밀가루의 조리법은 낯설고,특유의 이취가 있었으며, 풍미는 부족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된장, 고추장, 간장, 소금, 설탕, 조미료, 기름, 양념 등의 사용이 과도해졌고, 조리법도 기름을 이용한 방법이 주가 되었습니다. 결국 밀가루 음식은 곯은 배만 채우기 위한 '싸구려', '자극적', '불균형한' 음식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1970~1980년대, 가난했던 시절의 ‘꽁보리밥’, ‘분식장려운동’ 같은 캠페인은 밀가루 음식을 '가난한 사람의 대체 식량'으로 각인시켰고, 이는 곧 "밀가루 = 싸구려, 몸에 안 좋은 음식"이라는 인식으로 고착되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기억은 세대를 거쳐 무의식 속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후의 경제성장기에도 '쌀은 정식, 밀은 간식'이라는 위계가 유지되었고, 1980~90년대까지도 '쌀밥'은 가정식의 정석, 반면 '빵, 라면, 국수'는 부정적 보조 식사라는 인식이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라면이나 빵을 먹은 자녀에게 "그걸 왜 먹냐", "밥이나 먹지"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오늘날 암 환자들이 “밀가루는 나쁘다”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는 데는 단지 건강상의 이유 외에도, 오랜 사회적 편견과 무의식적 문화 코드가 함께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4. ‘수입 밀가루는 썩지 않는다’는 괴담에 대하여

생협이나 일부 친환경 식품 브랜드는“수입 밀가루는 썩지 않는다, 방사선이나 약품 처리를 했기 때문이다”라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우리나라 밀가루 유통 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면, 이 주장은 허술한 논리이며, 과학적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으로, ‘암’, ‘장 질환’, ‘면역력 저하’와 같은 키워드와 연결하며 공포 기반의 마케팅(=공포 마케팅)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생협에서는 수입산 밀가루의 안전성을 의심하며, 우리밀 제품을 ‘건강한 대안’으로 강조합니다. 이 과정에서 ‘글리포세이트 잔류’, ‘GMO 위험성’, ‘면역 억제’, ‘암 발생 가능성’ 같은 표현이 사용되어 환우와 가족의 불안감을 자극하지만, 이런 주장의 대부분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거나 왜곡된 정보에 기반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입밀은 국내 반입 전 엄격한 방사능, 농약 검사를 거치며, 2023년 식약처 수입식품 검사결과에서도 수입 밀가루에서 기준 초과 글리포세이트 검출 사례는 0건이었습니다. GMO 논란도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수입밀은 비GMO 품종이 주류이며, 우리밀=건강식’, ‘수입밀=발암’이라는 이분법은 소비자 기만이라 판단합니다.

물론 로컬 식재료 사용과 우리 농업 보호는 충분히 의미 있는 가치이지만, 이를 근거 없는 건강 공포와 연결짓는 행위는 공정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일입니다. 대한민국 밀 자급률은 2023년 기준 약 1.2%에 불과하며, 국내 소비용 밀의 99% 이상은 수입에 의존합니다. 우리가 수입하는 것은 대부분 ‘밀가루’가 아니라 ‘원료 밀(소맥)’이며, 이 수입 밀은 부산, 평택, 군산 등의 항만을 통해 들어오고, CJ제일제당, 대한제분, 삼양사, 곡우제분 등 대형 제분회사에서 제분하여 밀가루 형태로 각종 제품에 사용됩니다. 즉, 우리가 먹는 밀가루는“수입산 밀가루”가 아니라 “수입한 밀(소맥)을 국내에서 제분한 밀가루” 입니다.

단, 일부 제품은 수입 '밀가루' 자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제과·제빵 업계, 호텔, 디저트 전문점, 고급 베이커리 등에서는 미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에서 수입된‘강력분’ ‘박력분’ 등의 완제품 밀가루를 사용합니다. 이는 밀 품종의 특성, 가공 적성, 제조공정의 일관성 등 기술적 이유에 따른 선택이며, 이들 제품 역시 수입 단계에서 식약처 검역·잔류 농약 검사 등을 통과해야만 유통될 수 있습니다.

밀가루는 원래 수분이 적고, 부패가 느린 식재료로. ‘썩지 않는다’는 건 제품의 포장기술, 저장기술의 결과이지, 방사선이나 약품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방사선 조사가 허용된 식품군은 극히 일부이며, 밀가루는 방사선 조사 대상이 아닙니다.

5. 암환자를 위한 밀가루의 바람직한 선택지

밀가루를 완전히 배제하기보다는, 보다 적합하고 부담이 적은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접근이 될 수 있습니다.

국산 토종밀 – 앉은뱅이밀

국산 고유의 재래종 밀로, 줄기가 짧아 "앉은뱅이 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외래 품종보다 글루텐 함량이 낮고, 고소한 풍미와 좋은 소화력을 가져, 국수, 부침, 수제비 등에 적합합니다.

고단백 밀 – 듀럼밀, 세몰리나

주로 이탈리아산 파스타나 지중해식 식단에 쓰이는 이 밀은 단백질 함량(13~15%)이 높고, 복합탄수화물 비율이 높아 혈당 반응이 완만합니다. 세몰리나는 듀럼밀을 거칠게 분쇄한 형태로 탄력있고 풍미좋은 반죽을 만들수 있어, 파스타, 쿠스쿠스, 건강 빵 등에 적합하며, 체력 보충이 필요한 환자에게 긍정적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6. 밀가루는 ‘피할 음식’이 아니라, ‘잘 선택해야 할 식재료’이다

암환자의 식단은 공포나 금기가 아닌, 과학적 정보와 자기 이해에 기반하여 현명하게 구성되어야 합니다. “밀가루를 먹어도 되나요?”라는 질문보다는 “어떤 밀가루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먹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적절하다 생각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성찰과 실천이, 보다 지속 가능하고 현명한 식이 조절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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