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덕수궁 산책 - 김수우 시인의 <봄은 또 하나의 문이다>

미카엘2015ㅣ설본
2025.02.27 16:25 | 조회 123

뜻밖의 반가운 전화처럼 봄이 울린다.

그 진동에 모든 사물이 깨어나고 돌아본다.

봄이 도착했다.

이미 대문 안쪽에 가득하다.

노랑나비들이 무수히 팔랑이는 듯한 봄빛.

낡은 나무 대문에서 새어 나오는

새봄이 맑고 아름답다.

김수우 시인의 <봄은 또 하나의 문이다> 中에서

마지막 수요일은 문화의 날이라서 고궁 입장이 무료입니다. 아내와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덕수궁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반가운 전화를 받은 것처럼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봄이 벨 소리처럼 부르르 떨며 울립니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 봄에게 말을 걸 뻔했습니다.

덕수궁 정문을 통과하면 우리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산책을 합니다. 연못을 지나 좌회전하면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이 나타나는데 그 앞에는 진달래 꽃밭이 있습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연보랏빛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장관을 이룰 겁니다. 가까이 가서 진달래를 살펴보니 봉오리가 제법 씨알이 굵습니다. 정관헌을 지나면 왼편으로 석어당과 살구나무가 보이는데 지금은 흡사 죽은 것 같아 보이지만 사월이 되면 팝콘 튀기듯 펑펑 소리를 내며 꽃을 피워내기 시작할 테고 그러면 마치 대낮에 불꽃놀이를 하는 것처럼 온 세상이 밝아지고 환해질 테지요. 그 모습을 상상하며 살구나무 아래서 아내와 저는 올해는 꼭 살구나무가 절정일 때 보러 오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석어당 바로 옆 즉조당과 중명당을 지나 석조전 앞에 다다르니 배롱나무들이 튼실한 가지를 자랑하며 서 있습니다. 배롱나무들은 여름이 올 때까지 가지 끝에 영양분을 모으며 때를 기다렸다가 피를 토하 듯 뜨거운 붉은 꽃들을 피워 낼 겁니다. 석조전을 돌아 돈덕전 안에 들어가니 궁궐 내 조명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어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덕수궁에서 화장실을 가게 되면 늘 돈덕전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제가 다녀본 화장실 중에서 가장 밝고 깨끗하며 우아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김수우 시인은 곧 봄을 맞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생애에 몇 번째의 봄을 맞이하는가?’ 묻고 있는데 뭐라 대답하시겠습니까?

봄빛 가득한 대문에서 무수한 생명의 손자국을 본다.

당신의 생애에 몇 번째의 봄을 맞이하는가.

몇 번째의 문을 여는가.

몇 번째의 아름다움을 낳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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