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끝나는 토요일에 막내딸과 아내 모시고 종묘에 다녀왔습니다. 여간해서 잘 따라나서지 않는 막내딸이 긴 연휴 탓에 약속이 말랐는지 군말 없이 따라나선 것이 제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종묘는 눈이 많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나는 최상급 품질이어서 걷는 내내 기분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막내딸과 함께 걸으니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며칠 전 연휴 기간 동안 뭐 볼까 티브이 채널을 돌리다 최근 개봉한 월레스와 그로밋을 침대에 누워 보고 있었는데 막내가 엄마와 나 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영화를 같이 보기 시작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누워서 막내딸과 영화를 같이 본 것이 언제였나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니 아마 이십 년은 훌쩍 넘은 것 같아 참으로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오랜만에 재미난 영화도 보고 막내와 같이 누워 영화도 보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연휴였습니다.
며칠전 아내가 제게 ‘부모는 자식에게 이불같은 존재’라는 박완서 작가의 말을 전해준적이 있었습니다. 왜? 라고 묻자 추우면 이불을 끌어당기지만 더우면 걷어차니까. 그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제가 한마디 덧붙혔습니다. 박완서 작가님이 살 때는 이불이었지만 지금은 솜이불일거야 겨울 한철 사용하고나면 잘 개켜서 장롱구석에 치워두니 말야
막내딸에게 나의 존재는 여느 자식과 다름없이 이불일지도 모르지만 두 아들을 낳고 33살에 낳은 내 딸은 내게 섯다판에서 땡 잡은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도 33살 차이 때문에 딸이 1땡을 잡으면 나는 4땡 (44살), 2땡일 때는 저는 5땡을 잡게 됩니다. 딸이 6땡을 잡았을 때 내가 살아있다면 9땡이 되는데 그 나이까지 과연 살아있을까 싶지만 딸에게 나는 이불같은 존재가 아니라 9땡같은 존재였다고 기억해주면 참 좋겠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종묘사진과 작년 함박눈 내릴 때 종묘사진 그리고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나이’ 라는 시 함께 전해드립니다.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 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