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가버린다고 한탄하며
우울해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해주십시오
한 해 동안 받은 우정과 사랑의 선물들
저를 힘들게 했던 슬픔까지도
선한 마음으로 봉헌하며
솔방울 그려진 감사카드 한 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띄우고 싶은 12월
이제, 또 살아야지
해야 할 일 곧잘 미루고 작은 약속을 소홀히 하며
남에게 마음 닫아걸었던 한 해의 잘못을 뉘우치며
겸손히 길을 가야 합니다.
같은 잘못 되풀이하는 제가 올해도 밉지만
후회는 깊이 하지 않으렵니다.
진정 오늘밖엔 없는 것처럼 시간을 아껴 쓰고
모든 이를 용서하면 그것 자체로 행복할 텐데
이런 행복까지도 미루고 사는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십시오
보고 듣고 말할 것 너무 많아
멀미 나는 세상에서 항상 깨어 살기 쉽지 않지만
눈은 순결하게 마음은 맑게 지니도록
고독해도 빛나는 노력을 계속하게 해 주시십시오
12월엔 묵은 달력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며 조용히 말하렵니다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
이해인 수녀님의 12월의 엽서
요즘 제가 밀리의 서재에 푹 빠져있습니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책을 골라 읽기도 하고 오디오북으로도 듣습니다. 예전에는 자출 하면서 FM을 즐겨 들었는데 요즘에는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를 오디오북으로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는 젊은 시절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시작으로 모두 다 좋아하였지만 이제 나 자신이 그분의 나이가 되어 그분이 쓴 에세이를 읽으니 어쩌면 그렇게 공감되는 내용이 많던지 특히 손주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맞아 나도 그런데’ 페달을 밟으며 혼잣말을 하기도 합니다. 눈이 나빠져서 책 읽는 재미를 잃었었는데 오디오북이 다시 듣는 독서의 재미를 안겨줘서 행복합니다.
오늘 전해드리는 사진은 이년 전 눈 내린 선유도와 하늘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고 있으면 사진을 찍을 때의 날씨와 분위기 같은 상황뿐 아니라 기분이나 생각들이 줄줄이 따라 올라옵니다. 사진 찍을 때 빛이 풍성했는지 부족했는지에 관한 것은 물론이요 어떨 때는 코끝을 건드렸던 낯설었던 냄새도 떠오르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사진은 저에게 기억의 외장 하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소 잊고 지내다가 사진을 보면 마치 뇌(내장하드)밖에 보관하고 있던 기억들이 외장 하드와 연결되어 선명하게 기억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2월이 되면 혹은 새해가 되면 저는 묵은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데 필요한 시를 읽으며 보내곤 하는데 오늘 전해드리는 이해인 수녀님의 ‘12월의 엽서’라는 시가 바로 그중에 하나입니다. 박완서 작가와 이해인 수녀님은 절친이라고 알고 있는데 두 분 모두 쉬운 언어로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공통점을 있으시네요. 아무튼 저는 매년 시구를 살짝 바꾸어 이렇게 외치곤 합니다.
가라, 2024년이여
오라, 2025년이여
나를 키우는 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