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북촌 산책 -세월 가는 소리 오광수

미카엘2015ㅣ설본
2024.12.19 14:09 | 조회 142

세월 가는 소리

오광수

싱싱한 고래 한 마리 같던 청춘이

잠시였다는 걸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서른 지나 마흔, 쉰 살까지

가는 여정이 무척 길 줄 알았지만

그저 찰나일 뿐이라는 게 살아본 사람들의 얘기다

정말 쉰 살이 되면 아무 것도

잡을 것 없어 생이 가벼워질까

쉰살이 넘은 어느 작가가 그랬다

마치 기차 레일이 덜컹거리고 흘러가듯이

세월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요즘 문득 깨어난 새벽,

나에게도 세월 가는 소리가 들린다

기적소리를 내면서 멀어져 가는 기차처럼

설핏 잠든 밤에도 세월이 마구 흘러간다

사람들이 청승맞게 꿇어앉아 기도하는

마음을 알겠다

이 시를 처음 읽은 것이 오십 대 초반이었고 그때는 참으로 격하게 공감을 했는데 지금은 슴슴하고 덤덤합니다. 속도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는 100킬로로 달려도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지만 시내에서는 50킬로가 넘어도 덜컥 겁이 나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50대 세월 가는 속도에 이미 적응을 끝냈고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이 내 또래이다 보니 세월 가는 속도가 이제는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나저나 내게 ‘싱싱한 고래 한 마리 같던 청춘’이 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그저 앞으로 ‘싱싱한 고래 한 마리 같은 청춘’을 겪게 될 손자와 손녀가 허투로 보내지 않고 충실하게 잘 즐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고흐 전시회를 얼리버드로 구입해두고 수요일 오전에 다녀올까 했는데 갔다 온 분들의 후기를 읽어보니 평일에도 웨이팅이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10시 오픈런을 하려면 9시에 가서 줄을 서야 한다니 이 엄동설한에 선 듯 내키지 않습니다. 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북촌 한 바퀴 돌고 왔습니다. 늘 다니던 곳을 벗어나 다른 골목으로 접어드니 또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오래 머물면서 지켜볼 만한 것은 없지만 살짝살짝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 하나 하나가 소박하고 정겹습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정신이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듯합니다. 그리고 상점마다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으로 눈이 즐겁습니다. 북촌 한 바퀴 돌다가 국밥 한 그릇하고 정독도서관 벤치에서 내려 간 커피 한잔 마신 후 공예 박물관 특별 전시를 보고 돌아왔습니다. 무료 전시임에도 훌륭한 작품들로 안목이 높아지고 넓어지는 기특한 경험을 하고 왔습니다. 저의 흔적을 담은 사진 함께 보내드리오니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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