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저희 엄마 7.19 소천하셨습니다

트링놩l위보
2024.07.23 23:09 | 조회 2.7k

위암 재발 후 항암 하시다가 항암이 더 어렵다고 하여 4월에 여명 3개월 판정 받고 호스피스로 들어가셨어요.

이미 전이가 진행된 상황이라 음식을 삼키면 그대로 밤에 가래랑 함께 토해내셔서 호스피스 들어가시자마자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셨어요.

물도 드시지 못하고 입에 물 머금고 뱉기만 하셨어요.

처음엔 그래도 거동은 가능하셔서 화장실도 혼자 가시고 걸어서 병동 한바퀴 돌면서 운동하시기도 하셨어요.

그렇게 1개월 후 다른 호스피스로 옮기시면서 콧줄 다시고 그래도 물은 드실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때 정도에 숨이 계속 차다고 하셔서 콧줄산소 3정도로 유지하시면서 계셨어요

그렇게 2주 후 휠체어도 못타시겠다고 하시더니 계속 누워만 계셨네요..

움직이지 않으시니까 힘도 많이 빠지고 허리를 많이 아파하셨어요 ㅠㅠ

그래도 병동 의료진분들이 엄마 조금 더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하셔서 엄마가 의지를 엄청 많이 하셨어요

그렇게 7.17일 여명 3개월 판정 받은 지 딱 3개월만에 임종실로 옮기셨어요.

새벽에는 혈압도 산소포화도도 정상이었는데, 아침에 갑자기 혈압이 70 이하로 급격히 떨어지시고 산소포화도도 84% 정도로 떨어지셔서 그렇게 결정하셨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이틀을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입으로만 호흡하시다가 7.19일 낮에 비 안 오고 맑게 해 뜰 때 가셨습니다.

사실 엄마가 임종실 옮기기 이틀 전, 아빠가 엄마를 간병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갑자기 엄마가 저를 보고 싶어한다고 해서 급하게 찾아갔었거든요. 엄마가 저 보시더니, 왜 이제야 왔냐고, 보고 싶었다고 아이처럼 엉엉 우시는데.. 너무 죄송스럽더라구요

하루하루 안좋아지는 엄마 상태를 생각 못하고 너무 제 일만 생각한 것 같아서.

그 날도 엄마 얼굴 보고나서 약속이 있어서 나서려는데

"제발 가지마. 지금 가면 진짜 헤어지는거야." 라고 몇 번이나 저를 붙잡으시더라구요.

저는 섬망 증세인줄 알았고, 거기에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제가 교대하기로 되어 있어서 하루 만에 안좋아지시진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엄마를 설득하며 그 때 엄마를 두고 병실을 나왔었어요.

나가는 제 뒷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힘 없던 목소리를 크게 내뱉으면서 "고마워"라고 말하시더라구요.

저는 다시 돌아가서 "뭐가 고마워. 내가 고맙지. 내일 또 올거니까 내일 보자!" 라고 말하고 다시 병실을 나왔어요.

그러고 다음 날 병원에 가니까 엄마가 저를 기다렸는지 저를 보자마자 뽀뽀를 해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뽀뽀를 하시고는 바로 잠들고 이후로 깨어나지 않으셨어요..

아직도 너무 후회해요

엄마는 마지막을 직감하고 저랑 함께하고 싶었던 건데... 제가 그걸 못 알아차린 것 같아서요..

엄마가 잠들고 나서 미안하다고 얘기를 해도 돌아오는 명확한 대답은 없더라구요.

임종실에서 내리 잠만 자시다가 한 번 눈을 뜨셨을 때는

의사 선생님 얼굴을 보시더니 말할 힘도 없던 엄마가 온 힘을 다해서 의사 선생님 두 손을 붙잡으시더니

"도 와 주 세 요" 한 마디 겨우 꺼내고 다시 잠드셨어요.. 그러곤 정말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대로 잠만 자시다가 소천하셨어요.

아무래도 27살인 저와 29살인 언니, 그리고 아빠 셋을 두고 떠나는게 걱정이 많이 되셨나봐요.

그래도 저는 엄마가 맑은 날을 골라서 가신 게 아무래도 걱정 다 털어놓고 좋은 곳으로 가신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이 기간에, 소천 하신 날도, 화장하신 날도, 맑은 날을 골라가셨거든요.

오늘은 삼우제를 지낸 날인데 무지개가 떴더라구요!

아무래도 엄마가 좋은 곳으로 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보낸 사인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오랜 기간 암 투병으로 고생한 우리 엄마, 이제 아프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환자 분들, 그리고 보호자 분들, 식사 든든히 챙겨 드시고 얼른 나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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