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용기가 없어질 때

완생 l 직본직보
2024.05.12 15:36 | 조회 1.6k

괴물의 발톱이란다. 만약 누군가 너의 용기를 의심하거나 아니면 네 자신이 용기가 없어질 때 이걸 손에 쥐고 네가 여기서 했던 일을 생각해보거라.

잃어버린 것들의 책

제가 좋아하는 소설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이 문구를, 케모포트 제거와 장루복원, 직장 및 담낭 절제 수술로 남은 제 몸의 상처들을 보며 곱씹곤 합니다.

지난 금요일은 2주간의 파트너사 개발팀의 방문 협업이 끝난 후, 피곤함에 푹 빠진 상태에서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상황을 보고해야 했습니다.

토요일은 출근해서 후속 작업을 하던 중, 저녁 즈음 되어 결국 7월에는 출시할 수 없다는 개발임원의 결정을 전해들었습니다. 사무실 출근해 계신 저희 팀 임원께 바로 보고했고요. 2년 동안 부서에서는 제대로 함께 하는 이가 없어서 2주 전에 한번 폭발했던 사건까지 말씀드리며, 정말 이 과제 그만둘까 했었다고도 말씀드렸지요.

일요일 새벽 4시 비행기로 출장 준비 열공 중이시던 팀장님 깊은 한숨. 뭐 2주나 지나서 그때의 분노는 벌써 가라앉았지만, 팀장님이 저보다 배는 더 고생하시는 걸 알아서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팀장님께서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서 이런 저런 방향 지시를 해주셨고요. 특히 이 날 점심은, 며칠 전부터 타이앤님 소식을 확인해봐야겠다 싶었는데, 블로그에 부고 소식이 떠 있는 것을 보고 더욱 가라앉았네요.

일요일인 오늘도 새벽 5시부터 출근. 배변양상이 매우 좋지 않아서 한시간에 두 번 꼴로 화장실 들락날락. 가장 아프고 신경쓰이게 하는 배변양상입니다. 두어 시간 후, 저와 사이 안좋은 그룹장 출근. 인사만 하고 서로 할 일 하다가, 아무래도 컨디션이 안 좋아 먼저 가겠다고 하고 나왔는데요. 어제 결국 출시 지연된 과제 대응 방안을 잠시 이야기하다가, 또 서로의 입장 차와 서로 싫어하는 성향을 재확인하고 기분 상해서 집으로 돌아왔네요.

에라. 월화 휴가 확 내버렸습니다. 어제부터 타이앤님 부고가, 그리고 오늘 유독 동해현진님의 삼척 사진들이 저를 등 떠밀며 떠나라고 하는 것 같아요. 떠나려고요.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우리 개발팀, 주말에도 고생하는 sos 전화 받아주고, 또 지난 2주 동안 이 먼 나라까지 와서 고생한 파트너사 개발팀들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게 오늘 저녁 내에 정리 좀 하고 내일 떠나려고요.

수술도 방사선도 항암도, 저는 용기가 있어서 한 건 아닙니다만, 그 후의 삶은 정말 밑바닥부터 용기를 끌어올리고 쥐어 짜내서 살았습니다. 매일 아침 샤워하며 제 몸에 난 움푹 패이거나 솟아오른 상처들을 어루만지면서요. 출시 지연이 되었으니 앞으로 최소한 올해말까지는 용기를 더 내야합니다. 그러나 건강은 챙기려고요.

출시 후에는 그룹장 말대로 싫으면 팀을 떠나야겠지요. 그건 천천히 생각해보렵니다. 떠나도 밑질건 없으니까요. 새로운 곳에서 홀가분하게 시작하고도 싶습니다.

2주간 고생한 파트너사 개발팀과 서로의 로고와 캐릭터가 공존하는 공간에서 찍은 사진 올려봅니다. 저만 빼고는 다 먼 나라에서 온 파트너사 사람들이에요. 제일 쪼꼬이가 접니다. (프라이버시 상 사진은 잠시 후 펑 예정)

그리고 실은 더 찬찬히 바라보는, 내가 가진 괴물의 발톱인 상처들이요. 용기를 잃지 말아야겠어요. 내일은 어디든 고고.

장루복원 자리

케모포트 제거 자리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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