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덕수궁의 살구나무 꽃

미카엘2015ㅣ설본
2024.04.03 17:07 | 조회 374

한강공원의 살구꽃과 서울숲에 만개한 살구꽃을 봤을 때만 해도 올해 살구꽃 순례길이 순조롭겠구나 싶었습니다. 이제 덕수궁의 지체 높으신 살구꽃만 알현하면 살구꽃 나들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부푼 마음을 안고 덕수궁에 들렀습니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울긋불긋 꽃 대궐을 이루고 있더군요. 그런데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살구꽃은 벚꽃 전에 만개하기 때문이지요. 발걸음을 재촉하여 정관헌에서 먼빛으로 석어당을 바라보니 왠지 허전하고 심지어 어두워 보입니다. 살구꽃이 활짝 피고 봄 햇살이 석어당을 비추면 멀리서도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석어당에 도착하니 입에서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의 첫 구절이 터져 나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사실 토요일에 서울숲을 갈까 덕수궁을 갈까 망설였는데 그날 덕수궁에 왔어야 했나 봅니다. 작년에도 꽃이 진 후에 와서 내년에는 일찍 와야지 다짐을 했는데 또 때를 놓치고 말았네요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터지려는 슬픔을 추스르며 내년에는 제일 먼저 들려야겠다 다짐을 하며 셔터를 열심히 눌렀습니다. 님의 침묵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PS 덕수궁에는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는 물론이요 벚꽃과 명자나무, 미선나무, 자두나무 꽃 심지어 라일락까지 피어 장관을 이루고 있더군요. 그런데 살구꽃을 떠나보내는 입장에서 다른 꽃들과 섞이는 것이 떠나는 살구꽃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싶어 오늘은 살구꽃 사진만 보내드립니다. 앞의 18장은 오늘 찍은 사진이고 나머지는 9장은 2년 전 만개했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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