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할머니 돌아가시고 첫 제사를 지냈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세상
2024.03.11 14:24 | 조회 1k

벌써 1년이 넘었네요.

제작년 6월에 폐암선고 후 고령으로 치료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었어요. 그래서 수술도 항암도 아무것도 안했고

10월부터 통증이 시작되어 응급실만 다니다가 요양병원을 거쳐 호스피스로 옮기시고 거기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93세 연령으로 가족 대부분이 치료를 반대했고

저는 백신도 거뜬하게 맞으시고 뇌경색도 이겨내신 할머니가 암치료도 잘 받으실듯 하여 가족들 결정에 많이 속상했지만 혹여나 치료받으시다가 더 힘드셨을수도 있었겠지..그렇게 마음을 위로하며 살고있습니다.

문득 문득 할머니가 저의 집에 오셨던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안좋아요. 제가 혼자 사는데 할머니 심심할때 오시라고 열쇠를 드렸었는데 거의 매일 오셨거든요.

그땐 재택근무라서 할머니 오셔도 저는 일하느라

많이 이야기도 못했어요. 그래도 할머니는 티비도 없는 저의 집에 오셔서 저 일하는것도 보다가. 베란다에서 담배도 태우시다가. 낮잠도 주무시다가 (더 주무시라고 하면 안 잤다고 하심ㅋㅋ) 제가 우동 시켜드리면 그거 드시고 저랑 코드가 맞아서 농담도 하고 수다도 떨고 ..

그것도 허리 압박 골절 되신 후에는 오지도 못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저의 집에 놀러오실때가 너무 행복했던 한 때 였어요. 틀니라서 음식도 조심해서 시켜드렸고 입맛도 까다로우셔서 고기는 잘 드시지도 않았고.. 메뉴 생각하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산소에 가서 할머니 보며 지금 편안하실거야..

라고 제 자신에게 계속 말했어요.

호스피스에서 마약성진통제에 구토도 없었고

통증이 심해서 잠만 주무셨는데

마지막에는 갑자기 온 몸을 비틀며 소리를 지르시고 고통스러워 하시더라구요. 5일정도 검은 변을 너무 많이 보셨는데 그게 위 출혈인듯 했어요. 기저귀를 갈 때마다 잠드셨다가도 아프다고 소리지르며 고통스러워하셔서 할머니께 물어보니

엉덩이 닦을때 눌려지는게 아픈거냐는 말에 힘없이 고개만 끄덕이셨죠. 그 후로는 살살 닦아 달라고 하여 아파하지 않으셨어요. 폐암이 대장에 전이가 된건지 뭔지도 모른채 저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할머니 얼굴만 바라보고 눈물만 나고..

마지막날.. 마약성 진통제를 아무리 넣어도 고통에 몸부림치셔서 엄마랑 저는 어찌해야하냐고 더 쎈약 없냐고 했더니

진정제 놔드릴까요?

네 빨리 놔주세요. 제발요..

무슨 작용인지 모르겠지만 진정제 맞으시고 2분 이내에 다시 잠드셨어요. 그렇게 6시간 후 임종을 맞으셨죠.

생각해보니 간호사님은 알고계셨던 거 같아요.

진정제를 놓으면 할머니가 못 깨어 나실거라는걸요.

갑자기 장례 및 임종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거든요.

할머니가 더 고통 받지 않으실거라는 생각에

담담히 들었고 임종 후. 할머니 닦아드리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우리 할머니.. 이제 안 아프다..

아이처럼 순수했던 우리 할머니..

암 통증 오기전에 혹시나 할머니가 눈치채실까봐 이런말을 해드렸어요.

할머니. 사람은 죽으면 우주로 간대. 가서 내가 어떤 몸으로 다시 태어날지 아니면 우주에 머물지 내가 결정하는거래.

그럼 할머니는

아이고 진짜? 정말이여?

아프실때 두려워하실까봐 미리 저런말씀을 몇번 드렸는데

고통속에서 주무시며 제 말을 기억하셨기를 바래요.

저는 태어나기 전에 할머니 손녀가 되고 싶었던거 같아요.

어쩜 이렇게 할머니를 좋아할수가 있었겠어요.

자식들에게 모든걸 주시고 오직 자식들만 생각하며 사셨던 할머니.. 다음번에도 나는 할머니 딸이나 손녀로 태어나서

우리 할머니 실컷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Naver
목록으로

댓글

8
로그인 하고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