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아빠의 구강암 5개월차, 다른 분들께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 글 써봅니다

우가지l구보
2024.03.09 18:59 | 조회 4.4k

저도 힘을 얻고, 다른 분들께도 도움 드리고 싶어 용기내어 글 써봅니다.

이전에도 분명 아프셨을텐데... 23년 10월 왼쪽 턱쪽의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저도 악관절이 아파 고생한 적이 있어 비슷한 증상이기에 아빠께 따듯한 걸로 찜질 잘 해주시라 말씀을 드렸어요.

보통 그러면 하루만 지나도 나아지는데 아빠의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입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다들 생각하여 아빠가 다니시던 치과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어느 한 대학병원에 갔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3곳을 가서 mri, 피검사, 씨티검사를 해도 다들 병명을 모르겠다고, 염증 수치도 없고 깨끗하다는 말뿐이었습니다. 환자는 아파서 입도 안벌어져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있었는데도요.

지금도 후회하고 있지만, 그제야 서울대치과병원으로 갔습니다. 11월 중순이 되어서야 아빠의 병명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구강암이었습니다..

저희 아빠는 11월 17일 구강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교수님께서 병기는 말해주시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말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암이 너무 커서 수술로 다 제거가 힘들 것 같으니 우선 항암으로 암 크기를 줄인 후 수술을 하자고 하셨거든요.

그러나 항암을 해도 소용이 없었고, 급하니 얼른 수술을 하자며 교수님께서 감사하게도 수술 일정을 빠르게 잡아 주셨습니다.

12월 14일 21시간이나 걸린 대수술이 이뤄졌습니다. 긴 시간 수술해주신 권익재 교수님 그외 다른 마취과 교수님, 전문의 등 도움주신 많은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암이 워낙 질겨 수술도 어려울 거라 하셨지만 권익재 교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저희 아빠 수술을 해주셨습니다. 비록 일부는 수술이 불가능한 곳에 있어 다 제거는 못 했지만 암덩어리 8-90%는 제거를 해내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나오는 아빠가 엄마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안도의 눈물이셨을 거라 생각해봅니다. 워낙 대수술을 하신지라 섬망 증상이 5일 정도는 갔습니다. 이때는 저희 가족 모두 정말 너무 힘들었지요.. 아빠가 훨씬 힘드셨겠지만요. 처음 보는 아빠 모습에 마음이 미어졌습니다. 그래도 수술을 해서 마음이 놓였지요, 이 순간만 버텨내면 다시 건강해지시겠구나 하고요.

서울대치과병원에서는 3개월 정도를 입원해 계셨습니다. 수술 전 검사 때부터 수술 후 회복까지... 석션, 수술 부위 치료 등을 할 때에 세심하게 챙겨주신 이경준, 이용선 주치의 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섬망이 끝난 후부터는 아빠는 회복을 잘 해나가셨습니다. 비록 입으론 못 드시지만 위루관으로 식사량도 점차 늘려가며 드시고, 피부에도 점점 윤기가 생기고 하루 산책량도 많아지셨고요. 이대로면 1년 후에는 일상생활도 가능해지시겠구나 싶었지요.

3주차 넘어갔을 때에는 아직 말을 못 하셨지만 발음이 튀는 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제가 말귀를 못알아들으니 멍청아, 라고 하셨는데 ㅎㅎ 그건 알아들을 수가 있었지요.

4주차에 막 접어들 무렵 아빠는 갑자기 다시 이전과 같은 두통을 호소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수술 후 회복단계에서 생기는 두통일 수 있다해서 진통제를 투여하며 버텼습니다. 그런데도 두통이 나아지질 않았고 다시 씨티를 찍어보았는데, 그 남아있던 암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항암과 방사선치료를 동시에 해보자 하셨고, 외래 치료기에 더이상 병원에 입원해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집과 병원이 멀지않아 매일 택시를 타고 통원 치료를 다녔어요. 항암은 시스플라틴으로 했는데 좀처럼 말을 듣질 않았습니다.. 그 독한 방사선도 이겨내고 독한 암이 줄어들질 않았습니다..

종양내과 김범석 교수님과 권익재 교수님께서는 그럼 다른 방법으로 해보자 하시어 항암 종류를 바꾸었지요. 시스플라틴은 그대로 하되, 티에스원으로 항암 치료제를 바꾸었습니다. 당장 완치는 어려울 것 같으니 암 크기를 줄인 다음 다시 시도해보자 하셨어요. 티에스원은 아주 독한 항암제더군요. 아빠는 입으로 드시질 못하니 보호자가 무조건 필요했습니다. 엄마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저는 미혼 여성이라 제가 약 투여는 하지 말라 하시더군요.

수액으로 맞는 항암 후 이틀은 몸이 편안해진다 좋아하셨는데 3일차에 늘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래서 티에스원은 원래 하루 4알씩인데, 하루 2알씩 5일간 복용하시고 나머지 5일 동안은 4알씩 복용을 하셨습니다. 이때에는 아빠 상태가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집안에서 산책도 많이 하시고 옥상에도 가서 산책도 하시고요. 앉아서 티비도 많이 보시고, 유튜브로 먹방도 많이 보셨어요. 먹방을 참 좋아하시거든요.

그러던 중 2월 26일부터 너무 힘들어하시기에 항암제 투여를 멈췄고, 다시 나아지시기에 하루 2알씩 그리고 마지막 날엔 하루 4알을 복용하셨습니다. 항암약을 뗐는데도 좀처럼 컨디션이 나아지질 않았고 잘 드시던 엔커버도 조금씩만 달라며 짜증을 많이 내셨습니다. 위루관에 꽂혀있던 피딩백도 빼버리시고.. 드셔야 힘이 난다고 이때 아웅다웅 많이 했지요.

3월 4일 몸무게를 다시 쟀는데 그나마 유지 중이던 44.6kg 였던 몸무게가 42.3까지 줄어 있었습니다. 아빠는 충격을 받으셨는지 그날부터는 다시 밥 양을 늘려달라 하셨어요. 그래서 좀더 엔커버 양을 늘려 드렸고, 방사선 치료도 매일 받으며 다니고 있었습니다.

3월 6일 수요일에도 좀 힘들어하셨지만 직접 계단도 내려가시고, 방사선 치료도 잘 받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시는 순간부터 제 발로 잘 걷지를 못 하시더니 묻는 말에도 고개만 겨우 끄덕이시고 누워만 계셨습니다. 저녁에도 아빠 밥을 챙겨드렸는데 아빠 상태가 점점 나빠지시는 것 같았습니다. 상태가 심상치않은 듯 하여 119에 연락하여 급하게 집에서 가까운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셨습니다.

상태가..많이 좋지 않으셨습니다. 검사 결과 고혈당 쇼크, 그리고 폐렴...... 입으로 먹지 못 해도 토한 잔여물이 기도로 넘어가게 되면 폐렴이 올 수 있다 얘기를 들었었는데, 저희 아빠에게도 폐렴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토해도 먹어야 기운 차린다는 말을 듣고 드린 거였는데 후회도 되었습니다.. 전해질 수치도 엉망이라 응급처치에 얼른 들어갔습니다. 아빠는 원래도 당뇨가 있으셨던지라 먹는 걸 조심하고 당뇨약도 매일 먹었는데도..고혈당 쇼크가 갑자기 찾아오더군요.

뜬 눈으로 밤을 지샌 후 3월 7일 아침, 종양내과 교수님께서 급하게 아침일찍 찾아와주셨습니다. 아빠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시더군요. 그리고 지금 컨디션으론 도저히 항암치료를 이겨내실 수 있지 않다며, 연명치료는 환자를 더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고 순리대로 하는 걸 추천하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여태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나왔습니다. 폐가 괴사되고 있는 폐렴과 항암을 못하니 더 커질 암.. 교수님께서 제 등을 토닥여주셨습니다. 효성이 지극하셔서 맘이 힘드시겠지만 가족들과 잘 얘기해보시라고..

엄마와 언니와 얘기한 끝에 저희는 아빠가 여태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옆에서 너무나도 지켜봐왔기에.. 연명치료는 거부하겠다는 동의서를 썼습니다.. 이에 대한 글은 여기 카페 동행에서도 많이 찾아보았는데, 연명치료는 저희의 욕심인 것 같았거든요. ㅠㅠ 아빠가 의식이 분명하시던 때에 도저히 안될 것 같으면 자기를 보내달라고도 말씀을 하셨던 것도 있어서..

이 날은 하루종일 울었던 것 같습니다. 완화치료센터 간호사분께서 찾아오시어 아빠도 마지막 정리를 하실 수 있게 다른 가족분들과 아빠와 가까이 지냈던 소중한 분들을 불러 인사를 하실 수 있게 해주라 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작은아빠가 보고싶다 하셔서 연락을 했고, (할아버지는 22년도에 97세의 나이로 별세하셨습니다.) 아빠의 형제자매분들과 외가쪽 가족들도 다 먼길을 달려오시어 아빠께 인사를 하셨습니다. 다들 보시자마자 눈물을 흘리시어 그때마다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엄마와 언니와 교대를 하는데, 제가 있는 시간 때에 교수님들이 찾아오시는 때가 많아 그때마다 따로 나가 아빠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요.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익숙해지지가 않더군요. 들을 때마다 울었습니다.

3월 8일은 아빠의 치과병원 외래가 있는 날이었는데, 직접 가실 수가 없어 제가 대신 교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아빠를 살리고자 많이 노력해주신 교수님이셨기에 보자마자 눈물이 나와 죄송스럽게도 한참을 울다가 겨우 아빠의 상황을 말씀 드렸습니다.

권익재교수님께서는 이날 밤에 수술 및 외래진료가 끝난 후 저희 언니가 있을 때에도 아빠의 상태를 보러 와주셨습니다. 참 감사하더라고요... 김범석 교수님께서도 아침에도 찾아와 아빠 상태를 보고 가주셨습니다. 두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지금은 그래도 아빠의 혈당 수치가 많이 좋아졌고, 폐 염증 때문에 열은 있긴 하지만 열도 조금은 좋아진 상태입니다. 아직 밥은 못 드시지만요...

지금 글을 쓰는 중에도 아빠의 산소포화도가 떨어질까 계속 환자감시장치를 보며 글을 쓰고 있네요.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얘기를 들었지만 저는 여전히 기적이 일어나 아빠 상태가 호전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암을 앓고 계시는 모든 분들께 선물과도 같은 건강이 다시 찾아오시길 마음 깊이 바라며, 저희 아빠를 위해 함께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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