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개나리 -구상시인의 말씀의 실상

미카엘2015ㅣ설본
2024.03.06 16:02 | 조회 98

월요일 출근시간에 쫓겨 최고 속도로 한강 자전거길을 쌩~~하고 달리다가 노란 꽃을 스쳐 지나갔는데 지나고 나서야 개나리였음을 뒤늦게 알아챘습니다. 순간 ‘쌩깐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나 싶어 일찍 핀 개나리들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다음 날에 일찍 집을 나서 개나리들과 인사 나누고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 아직은 처삼촌 뫼에 벌초한 것처럼 듬성듬성 꽃대가 올라와 볼품은 없지만 머지않아 횃불처럼 환하게 세상을 밝혀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교회나 성당을 다니시는 분들은 지금이 사순절임을 잘 아실 겁니다. 곧 부활절을 맞게 되는데 개나리를 보면서 문득 구상 선생님의 ‘말씀의 실상’이라는 시를 떠올렸습니다. ‘창밖 울타리 한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 꽃도 부활의 시범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말씀하셨지요. 출근길에 본의 아니게 쌩깠던 개나리꽃 사진과 꽃이 만개했을 때 찍은 사진을 함께 보내오니 즐감하시옵소서.

말씀의 실상(實相)

구상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이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 구석

새로 피는 개나리 꽃도

부활(復活)의 시범(示範)을 보듯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蒼蒼)한 우주(宇宙), 허막(虛莫)의 바다에

모래알보다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象徵)도 아닌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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