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도 제가 암판정을 받고 그 해 12.23일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발인은 크리스마스에..
그리고 23. 12. 19일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
아낌없이 사랑주셨던 아버님이 너무나도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날 막네딸들 가족과 드라이브도 하시고
점심식사도 잘 하셨고 저녁엔 팥죽까지
잘 드시고 남편이 거의 매일 들리는데 아무
이상이 없으셨어서 더 충격이었지요..
제가 인사드리러 갔다오고 결혼전에 어딜
같이 가자고 하시더니 둘 커플링도 없냐고
반지도 맞춰주시고 큰아이 임신했을때는
입덧땜에 못 먹는며느리 겨울에 수박이며
과일들 사서 보내 주시고 둘째입덧때는
큰아이하고 같이 산정호수도 드라이브
시켜주시고 맛난것도 사 주시고 .......
그런 아버님을 어머님은 늘 질투를 하실
정도로 저에게는 아빠같은 존재셨어서..
남편과 가족들이 장례식장에 힘들다고
입관식때나 오라해서 마지막 얼굴을
뵈었네요.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얼굴도 만져드리고 꼭 안아드리면서
못난 며느리 사랑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저 걱정 많이 하셨어서 더 맘이 아팠지요.
이젠 좋은곳에서 편안하셨음 ....
그렇게 엄마와 아버님을 보내드렸네요.
그래서 이젠 크리스마스의 설렘도 없고
12월은 아픈 달 로만 기억될듯요 ...
그러구 1월. 암이 조금 커져서 약을 바꿔야
할것같은데 네번 더 해보구 씨띠찍고 다시
보자고 한 네번을 다 마치고 씨티를 찍었
어요. 찍은날 바로 외래 교수님 뵙는데
판독이 나오지 않은 상태로 교수님 보시곤
전과 크게 달라보이는건 없어보인다 근데
판독이 나와봐야 정확하다고 이틀뒤 13차
항암입원해서 듣자고...
목요일날 입원해서 또 수혈받고 그 담날
교수님 학회가시고 주치쌤 회진. 크기는
변동이 없으나 복수가 저번보다 조금 더
양이 늘었다. 전에도 조금은 있었다 하니
생겼다 없어지기도 하니 일단은 계속 항암
유지하는 걸로 해서 어제 13차 폴피리맞고
퇴원했어요. 약이 안 바뀌는 것도 너무도
감사하고 활동 안 하구 좀 쉬어라 했는데
말 잘 들은 암덩이도 감사하네요.
참 또 슬픈소식은 다육이들 100 여개만
남기고 가지가 자잘한 아이들은 이제
제가 손이 섬세하지 못해 분갈이도 힘들
고 해서 신랑 긴 휴가내고 부산 언니네
분양보냈어요. 3년을 자식같이 키운애들
작년 5월부터 병원에 더 오래 있어서 거의
방치수준이었는데 간간이 남편과 아들이
케어해 줬지만 그래도 그 장마비 다 맞고
짱짱히 이쁘게 잘 도 이겨내준 내새꾸들
이모손에서 더 이쁘게 자라라~~~
언니도 다육이 저보다 먼저 시작해서 더
잘 키우거든요. 가믄 또 볼수 있으니까
조금만 서운한걸로~~~
하나밖에 없는 조카 남친도 보고 결혼까지
생각하구 있어서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
같이 식사자리도 갖고 좋아하는 바다도
실컷보구 잘 얻어먹고 푹 쉬다왔네요.
4박 5일을 ㅎ. 언닌 저희 올라오고나서
너무 허전해 공황올것 같다고....
아들한테 이모도 잘 챙기라고 평소에도
자주 이야기 했더니 위로도 잘 해주고
있더라구요. ㅎ 기특한 넘 .
이렇게 전 많은 일 들이 있었어요..
힘들고 지치기도 했지만 또 일상으로
언능 돌아와야겠지요..
동행님들도 힘 드셔도 더 같이 힘 내서
이겨내셨음 좋겠어요. 감기도 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