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함박눈 내리던 날 - 아무도 몰래 내려앉은 햇살

미카엘2015ㅣ설본
2024.01.08 15:19 | 조회 334

어느 시인은 유자차를 마시다가 문득 자기가 마시는 것이 지난 여름 어느 날/아무도 몰래/어느 유자나무 위로/내려앉은 햇살임을 자각하였다고 합니다. 이 시를 읽으며 저 역시 제가 즐겨 마시고 꽃차를 떠올렸습니다. 아는 권사님께서 직접 키우고 정성스럽게 말려 주신 메리골드 꽃차인데 자출 하면서 한 모금씩 마시고 있습니다. 마른 꽃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마치 부활을 하듯 꽃 모양이 원래의 모습으로 살아나는데 꽃이 만개했을 때 햇살에 비치던 눈부신 황금색을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꽃은 성모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으로 꽃말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입니다. 그냥 막연한 행복이 아니라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니 여느 꽃말보다 더 친근감이 듭니다.

지난 여름 어느 날 아무도 몰래 내려앉은 햇살이 어디 유자나무와 메리골드 꽃뿐이겠습니까 내 주름진 이마 위에도 사랑하는 손자 수현이의 눈망울 위에도 계단을 오르는 아내의 가쁜 숨소리 위에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고 형님 같은 환자들의 지친 얼굴 위에도 내려앉았을 테지요. 우리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삶을 살아오고 있다는 생각을 지난여름 내려앉은 햇살을 떠올리며 자각하게 됩니다.

작년 함박눈 내릴 때 찍은 사진이 많아 겨울 곰국 끓여 먹듯 한번 더 우려내어 보냅니다. 2024년에는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을 지대로 누리며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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