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마흔둥이에요.
엄마는 재혼을 하셔서 아빠는 제가 첫 아입니다.
마흔셋에 처음 만난 아이가 저였대요. 저는 아빠랑 진짜 많이 닮아서 길에서도 저를 아는 사람이면 아빠를 알아보고 아빠를 아는 분은 너 누구 딸이구나 하며 용돈을 주셨었어요.
어릴 때 엄마 손을 탈 수도 없게 아빠가 저를 끼고 키웠어요. 유별나게 사랑하신 거 같아요.
그런데 사춘기가 오면서 저와 너무 똑같아서 서로 한치도 물러서지 못하고 많이 싸웠어요. 정말 죽도록 많이 싸워서 엄마가 등떠밀어 독립시켰을 정도였어요.
같이 살다간 둘 중 하나가 누굴 죽이거나 병이 나서 죽을 것 같다고.
그래서 독립을 했는데도 아빠는 집에 안오는 저를 원망하고 질책하고 그래서 집에 가면 또 저와 싸우고 애증의 쳇바퀴를 굴렀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보고싶은데 만나면 자기 품안에 살지 않으니 더욱 염려되는 게 많아서 말이 좋게 나오지 않으셨겠죠. 아빠의 가치관과 경험으로는 늦둥이의 삶이 영 이해하기 어려우니 엇나가는 걸로 느끼셨을 수도 있고요.
그런 생각들이 더이상 우리가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없어지고야 들어요. 아마 어린시절을 합쳐도 지금만큼 아빠랑 많은 얘길 나눈 적이 없을 거예요. 사랑한다는 말도 아주 많이 하고 있어요.
아빠는 이제 주로 주무세요. 깨실 때는 통증 때문에 깨시는 거라 옷을 쥐어뜯거나 자신의 몸을 할퀴거나 때립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자주 깨고 더 아파하세요.
오늘은 얼마 남지 않은 치아로 자신의 손을 깨무시네요. 호스피스 오면서 틀니도 빼고 오셔서 본인 치아가 얼마 남지도 않으셨거든요. 상처를 낼 수도 없는데 고통스러워 주먹을 깨무세요. 머리를 때리고 벽을 치고 손을 깨물고 의식이 거의 없는데도 아파서 자해를 하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주사약을 달라고 해서 재워드리는 것 뿐이네요.
배설이 안되어 이뇨제와 좌약을 넣었는데 뭔가 신호가 오시면 제자리에서 볼일 보고싶지 않으신지 제 손을 잡고 일어나려고 애를 쓰세요. 마지막까지 기저귀에 뒷처리하시는 게 싫으신가봐요. 아버지 성격에 이게 자존심 상할 일이라는 것도 알아요. 그래도 이제는 앉아계실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어요.
이제야 아빠에 대해 생각하고 이해가 되고 안쓰럽고 열심히 사신 세월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아버지가 어서 떠나셨으면 해요.
아빠에 대해 설명할 때 제가 자주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겨울날 신발 얘깁니다.
아빠는 매년 겨울마다 신발을 대여섯 켤레씩 사셨어요. 원체 검소하고 멋도 모르는 분인데 겨울엔 그랬어요. 왜냐면 차를 타고 배달 다니다가 눈길에 슬리퍼 신고 다니거나 맨발로 다니는 노숙인을 보면 아빠는 자기 신발을 벗어서 신켜주고 자기는 양말만 신고 돌아왔어요.
동상 걸린다고 엄마가 질색을 해도 꼭 그러셨어요. 엄마한테 혼날까봐 어색하게 웃던 아빠가 잊혀지지 않아요.
우리 아빠가 그런 사람이에요. 그렇게 착하고 성실하게만 산 순진한 사람이에요. 늘 손해보고 다녔지만 저 빼곤 누구한테도 모진 말 못하고 남에게 빚 한 번 진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고통 속에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착한 사람 그만 아프게 하고 신이 있다면 그만 데리고 가달라고 빌어요.
아빠 빨리 죽게 해달라고 비는 패륜아가 여기 있으니까 저를 벌해도 좋으니 아빠는 이제 그만 떠나셨으면 좋겠어요. 내일은 얼마나 더 아파하실까 두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