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우 프로필
-아름다운동행 별명 : 잘키ㅣ직본직보
-환우와의 관계: 본인
-환우의 나이: 47세
-진단명과 병기: 직장암3기
-진단받은 연도: 2021년
-치료중인 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담당의사: 암센터 김덕우교수
*진당당시 상황
-암 진단 전 증상: 매우 피곤하고 2층정도 계단을 올라가거나 급한 일로 아주 짧은 거리를 살짝만 뛰어도 숨이 턱까지 차고 심장이 두근거림, 1~2년 정도 변이 흩어져서 나옴. 6월말 어느날 항문으로 엄청난 하혈을 하고(오후 4시부터 새벽 4시 정도까지 5~6차례) 기진맥진 탈진한 상태에서 다음날 집근처 항문외과 방문. 수지검사 후 대장내시경 필요 소견. 이때부터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어지럽고 귀에서 맥박 뛰는 소리가 들리며 매우 힘듬. 나중에 알고보니 다량 출혈로 헤모글로빈수치 매우 낮음. 2~3일 후 동일 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한 후 악성종양 소견으로 큰 병원 방문 권유받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게도 이런 가운데 겉으로 티를 내지 않고 회사 출근함. 벽이나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걸어다님.
-병원선택 과정: 집에서 가까운 아주대병원, 성빈센트성모병원을 예약해놓았는데, 지인의 권유로 3대 메이저 병원(아산, 서울대, 삼성) 연락을 해보고 가장 빨리(일주일 뒤) 예약할 수 있는 분당서울대를 가게됨. 계속 숨이 차고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어서 여러 병원, 명의를 알아보거나(아무도 대신 알아봐주지도 않았고, 알아봐달라 하지도 않았고) 방문할 여력이 되지 않아서 처음 방문한 분당서울대에서 검사를 받고 수술까지 하게 됨. 검사 후 헤모글로빈 수치가 심각하게 낮아서 수혈을 하러 응급실 방문이 시급하다는 병원 연락을 받았으나, 응급실 앞에 줄을 서 있을 기력이 없어서 그 다다음날 위내시경검사 겸 보호자 팔을 붙잡고 걸어서 병원에 방문하여 12시간에 걸쳐 응급실에서 수혈 3팩 정도 받음. 수혈이 끝나고나니 혼자 걸을 수 있게 됨.
*수술경험
-수술 방법 및 술식: 복강경
-수술 소요시간: 10시간
-수술 후 입원기간 : 10일
-진단부터 수술까지의 과정: 진단받고 2주 후로 바로 수술 날짜를 잡음. 위내시경, CT검사 등이 있었으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헤모글로빈 수치가 매우 낮은 상태로 정신이 혼미하여 정확한 기억이 다 나지는 않음. 선항암이라는 개념도 몰랐으며 의사가 검사 및 수술 날짜 잡아주는 대로 따라서 움직임.
입원해서 2~3일 정도 대장을 비우고나서 수술을 받았음. 간호간병동에서 2주 입원해있었으며 수술 당일만 보호자(시어머니)가 수술전후 2시간씩만 있었음. 보호자가 없어도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간호간병동으로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임. 수술이 끝나고나서 항문 통증이 상당했으며 기력이 없어서 일어나기 어려움. 임시장루를 형성해서 수술장에서 나왔음. 초저위절제로 항문을 간신히 살렸다는 의사의 설명이 있었음.
수술 후 기력이 없고, 자고 깨면 온 몸이 아프고 쑤시고 굳어있어서 다시 움직이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뒤틀어야했음.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고, 걸어다니는 것도 힘들어서 병원에 있는 동안 정말 느리게 질질 끌듯이 걸었음. 심한 항문통도 지속되었음. 퇴원하기 전에 항문에 삽입했던 관 같은 것을 빼내고 나서 움직이는 게 조금은 수월해졌음.
퇴원 후 요양병원에 일주일 정도 있었으나, 너무 불편하고 요양병원의 간호사도 장루 관리에 능숙치 못해서 실망하고 집으로 돌아옴. 수술 후 한달 정도 항문통은 계속 있었고, 조금씩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묵직한 느낌으로 남았다가 차츰 사라짐.
*방사선치료: 28회
-부작용: 피로, 몸살
*항암치료
-항암제: 젤로다 경구투약, 방사선치료와 함께 한달.
-항암제: 폴폭스 8차 시행
-케모포트 시술함
-부작용: 손발저림, 눈가와 입 등 얼굴과 손마비, 시력저하, 피부색변색, 오심, 구내염, 탈모, 코피, 입맛변함, 턱관절저림, 찬물을 마시면 목구멍에 비늘이 돋은 느낌
*장루복원수술 후 배변 상황
-처음보다 많이 좋아진 것은 맞지만, 지금도 하루 평균5회, 때로는 12회 이상 변이 나옴. 이 상태가 2년 정도 되어서 아직 더 이상 개선은 없는듯.
*후배 환우에게 한마디
-육체적인 고통도 고통이었으나 정신적인 고통도 극심하였습니다. 모두다 끝난 인생 같고, 이렇게 고통받고 희망없이 살 바에야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일 년정도 들었습니다. 누구에게 기대는 성향이 아니여서 내색하지 않고 거의 모든 치료와 진료를 혼자 병원 다니며 받았으나, 별일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남편과 철없는 초등학생 자녀가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친정아버지는 십수년 전에 돌아가셨고, 친정어머니와는 절연한지 오래였고, 데면데면한 친정오빠에게 새삼 연락할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위안을 받았던 분이 평소에도 선하고 잘 챙겨주시던 시어머니셨는데, 제가 수술한지 한달만에 시어머니께서도 같은 직장암 진단을 받아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저도 어머니도 수술과 치료 후 안정을 찾고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해온 것이 일뿐이라, 병가 6개월 후(어떤 분들은 병가 없이도 수술, 항암치료 받고 거뜬히 지내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는 수술 후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 다시 정상 속도로 걷는데 최소 한달이 걸렸습니다) 회사 복직할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였던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건데 7월 수술 후 두달 뒤에 복직 가능했을 것 같습니다. 방사선 기간이긴 했지만요. 하지만 항암기간 어떤 부작용을 겪을지 몰라서 감히 돌아가지 못 했고, 두려워했던 항암 기간 동안 출근하지 않은게 잘 한 것 같습니다. 단점은 세상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으로 살아갈 의욕이 없이 우울증과 절망감에 빠져있던 것이고요
-항암이 2회 정도 남았으나 병가기간을 다 썼기에 복직했고, 신체적으로는 큰 무리없이 회사를 다녔습니다. 복직 두달후 장루복원수술과 담낭제거술을 받았습니다. 병원 입원 시 일주일 휴가 쓰고, 퇴원 후 일주일 재택근무 썼습니다. 장루복원수술 끝나고 배변양상이 두려워서 회사 또 못 나가면 어쩌나, 미리 재택 6개월 할지도 모른다 말해놨지만, 하루 10번~16번 화장실 들락거려도 출근 가능했습니다. 물론 회의 중, 출장 중 아찔하고 괴로운 순간 많았습니다만, 어떻게든 대처하며 지금도 지냅니다.
-마지막 수술이 끝나고 6개월 정도 케모브레인이라 불리는 인지저하 증상을 경험했습니다. 복직후 겁먹고 바보같이 쭈그러들어있던 8개월후, 더 이상 남에게 특히 나 자신에게 병신 취급 당하기 싫어서 마음 다잡고 일하기 시작해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너무 지나친것 같아서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 자신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다잡고 일하기 시작하면서 우울증과 절망적인 마음도 점차 사라졌습니다.)
-저와 같은 시기 치료받고 글 올리신 분들 중 안타깝게 작고하신 분들도 많고, 저는 특별히 관리하지도 않고 그저 운이 좋아서 지금 살아있는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금세 수술후 절망적이던 마음을 잊고, 나에게 정말 중요한게 무엇인지 또 잊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죽었다 살아났기에 이제 후회없이 일에 매진하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예전에도 워커홀릭이었지만, 정말 의미있는 결과물을 남긴 것 같지 않다며 더욱 일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지금의 일을 한다고 의미있는 무엇이 나오지 않으리란 걸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이렇게 동행 카페에 환우분들의 값지고도 절절한 경험을 모아 다른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이드를 만들어보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읽고 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여러 환우분들의 글이 생각나지만, 그중에도 잊을수 없던 것은 누구 한명 의지할 사람 없는 천애고아같은 처지의 젊은 환우분이었습니다. 신문기사에 실렸던 사진이 있었는데, 침대 구석에서 온몸을 파묻듯 뒤로 빼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마치 온세상에게 학대당한 것 마냥 슬프고 절망적이고 외롭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감히 짐작컨데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남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도움을 받은 단체였을까요, 어딘가의 인터뷰를 거절할 수 없어서 마지못해 찍힌 듯한 모습이 안타깝고 미안하고, 그 모습이 내 모습인듯 하고 그랬습니다. 얼마지나지 않아 작고하신 것으로 압니다.
-많은 분들이 계신 이 곳에 분쟁도 있고 미움도 있고, 저도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 난리를 치며 사는데요. 저야말로 마음을 내려놓고 살아가야겠습니다.
지금까지 일해왔던 경험으로 아프고 힘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는 게, 제 남은 인생의 소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와 다투고 탓하는 마음은 이제 다 내려놓고, 이 소명을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