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한강 풍경 -나희덕의 소풍

미카엘2015ㅣ설본
2023.09.26 13:50 | 조회 157

며칠 전에 나희덕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페이스북에 글과 사진을 올렸는데 ‘좋아요’ 누른 사람 중에 ‘Ra Heeduk’이라는 낯선 이름이 있어 누군가 찾아가 보니 아 글쎄 제가 인용했던 시를 쓴 나희덕 시인이셨습니다. 아마 자신의 시를 검색하다가 저의 글과 사진을 보신 모양입니다. 존경하는 시인에게서 ‘좋아요’를 받았으니 살다 살다 이런 일이 다 있는가 싶어 얼떨떨합니다. 가끔씩 정보의 홍수 속에 과연 나까지 글을 써서 세상을 어지럽힐 필요가 있을까? 아무도 읽지 않고 누구도 기억하지 않으며 재활용도 안되는 쓰레기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어 의기소침할 때가 있었는데 그분의 ‘좋아요’가 계속 글을 쓰라는 응원처럼 느껴져서 반갑웠습니다.

그분의 시를 처음 만난 건 소풍이라는 시를 통해서입니다. 세 아이 열심히 키우던 젊은 아빠 시절이었는데 물론 가사와 육아는 대부분 아내의 몫이라서 육아에 관하여서는 내세울 것은 전혀 없지만 저는 틈만 나면 세 아이 데리고 소풍 가는 것을 즐겨 했기에 시구 한 구절 한 구절 모두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니 얘들아 꼭꼭 씹어 삼켜라

그게 엄마의 안창살이라는 걸 몰라도 좋으니

오늘은 하루살이 떼처럼 잉잉거리며 먹자'

하루살이처럼 잉잉 거리며 먹는 모습이 바로 연년생 우리 사 남매의 모습이었고 금쪽같은 삼 남매 내 새끼들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자식에게 먹이는 고기가 ‘엄마의 안창살’이라고 밝히는 대목에서는 알수 없는 설움에 목이 메이기도 했습니다. 각설하고 나희덕 시인의 시 소풍의 전문과 한강의 변화무쌍한 모습 전해드립니다. 가을비 내리는 모습을 보니 이비 그치고 나면 세상 모든 나무들이 한꺼번에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것은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꽃편지 받으시는 모든 분들 부디 행복하세요

소 풍

-나희덕

얘들아, 소풍 가자.

해 지는 들판으로 나가

넓은 바위에 상을 차리자꾸나.

붉은 노을에 밥 말아 먹고

빈 밥그릇에 별도 달도 놀러 오게 하자.

살면서 잊지 못할 몇 개의 밥상을 받았던 내가

이제는 그런 밥상을

너희에게 차려줄 때가 되었나 보다.

가자, 얘들아, 저 들판으로 가자.

오갈 데 없이 서러운 마음은

정육점에 들러 고기 한 근을 사고

그걸 싸서 입에 넣어줄 채소도 뜯어왔단다.

한 잎 한 잎 뜯을 때마다

비명처럼 흰 진액이 배어 나왔지.

그리고 이 포도주가 왜 이리 붉은지 아니?

그건 대지가 흘린 땀으로 바닷물이 짠 것처럼

엄마가 흘린 피를 한 방울씩 모은 거란다.

그러니 얘들아, 꼭꼭 씹어 삼켜라.

그게 엄마의 안창살이라는 걸 몰라도 좋으니,

오늘은 하루살이떼처럼 잉잉거리며 먹자.

언젠가 오랜 되새김질 끝에

네가 먹고 자란 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너도 네 몸으로 밥상을 차릴 때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그때까지, 그때까지는

저 노을 빛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이 바위에 둘러앉아 먹는 밥을

잊지 말아라, 그 기억만이 네 허기를 달래줄 것이기에.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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