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공부를 제대로 한 적도 없고 교회 봉사도 해본 적 없는, 말 그대로 '나이롱 신자'인 나를 그래도 좋으신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다.
위암 진단받고 수술을 앞둔 1월의 새벽 기도 길
교회 십자가 밑에 다다랐을 즈음 때마침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가로등 밑에서 올려다본 십자가와 하얀 눈꽃 송이는 나를 축복해 주었고 '너는 염려하지 마라'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내 마음 속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순간의 감동은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그 순간 타올랐던 성령의 불꽃은 자그마치 일 년 동안 꺼지지 않고 지속되었다.
한 순간도 내 마음 속에 뜨거운 감사와 벅찬 환희가 넘치지 않은 적이 없으니 그걸 어떻게 묘사해야 할 지 무딘 글재주나 신실하지 못한 신앙심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수술실에 들어가서도 두렵지 않고 회복은 순조로웠으며 나는 종달새처럼 즐거웠다.
'이런 환자라면 열 명도 보겠다.'라는 마음 좋은 간병인과 수다 떨며 열흘 가량 입원기간을 보냈었다.
일 년 동안 먹는 항암을 하니 몸무게가 14kg이나 빠져 납작한 신발만 신어야 될 정도로 휘청거리며 다녔지만 기쁘고 즐거운 마음은 여전히 충만했었다.
이십 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병을 얻어 휴직을 하니 그 또한 행복했다.
고무 탄 내가 나도록 앞만 보고 달려온 내 인생에 기나긴 휴식의 시간이 주어져서 하고 싶던 여행도 실컷 해보고 시골에 새로 지은 목조주택에서 친정 부모님과 함께 요양생활도 했다.
무심한 경상도 남자인 남편은 이제 팔짱을 꼭 끼고 다니는 자상한 남편으로 변했고 아이들은 내 손이 필요치 않을 만큼 자라났다.
암환자로 공부할수록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의 방식이 얼마나 잘못되었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 슬하에서 맵고 짠 식단으로 음식을 배운 것도, 운동을 싫어하는 것도, 물을 안 마시는 버릇과 과자나 빵을 좋아하는 식성도, 면이라면 배가 꽉 차게 먹어대던 입맛도 모두 바꿨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걸 피하려고 노력했기에 자기 얘기만 하고 잘난 체하는 사람과는 약속을 만들지 않았다.
진실되고 따뜻한 사람, 마음이 소통되는 사람과 주로 만나면 환하고 따스한 기운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직장 생활에서 오는 업무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어 주말엔 괜한 쇼핑을 하며 돈과 시간을 낭비했는데 이젠 백화점도 발길을 끊고 보니 수입은 줄었지만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체력이 회복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려서 이 년 동안 휴직을 연장하며 쉬었다.
그동안 복직과 퇴직을 두고 수없이 망설였지만 '모든 건 하나님이 결정해주시겠지.'라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일 년 반 정기검진에서 대장 이상 소견이 나와 다음 날 대장 내시경을 했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혼자서 울기도 하고 전화기도 꺼놓으며 앞으로 다시 항암을 어찌 견딜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졌다.
천만다행으로 결과는 염증이 약간 있는 것으로 나와 어찌나 마음을 졸였는지 종양내과 교수님에게 인사 한 마디 안 하고 나와 버렸다.
남편은 내게 말도 못 붙이고 얼마나 걱정을 했던가 이튿날 입술이 부르텄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복직이고 뭣이고 시골 가서 살아야겠다.'
<주만 바라볼지라> [[[CONTENT-ELEMENT-0]]]
수술 전날 밤새워 불렀던, 지금도 어김없이 눈물이 솟구치는, 가장 힘주신 찬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