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남편을 보내고,.항암치료하지 않고 호스피스병동에 있다가 임종

진성화
2021.10.06 20:53 | 조회 1.3만

58세 남편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4주 있다가 임종했습니다. 처음 호스피스로 간 후 보호자로서 책임을 다 못 하는 것 같아 죄채감과 갈등으로 힘들었습니다. 호스피스에서 주는 신경안정제와 진정제로 남편의 의식이 더 흐려진다고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마지막에 가실 때 편안하게 가시는 걸 보면서 시기적절하게 완화치료가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이 췌장암으로 폐와 간, 복막, 림프에 전이가 많이 돼서 항암치료를 하지 않았습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가 조직검사 후 몸이 약해지면서 가정형호스피스로 영양수액만 맞았습니다. 한창 더운 여름에 집에서 열대야로 고생하더니 황달이 와서 8월 8일에 입원했습니다. 입원하고나니 남편도 실감난다고 했어요. 칠곡경대병원에서 일반병실에 며칠 있다가 호스피스에서 염증이 호전되어 퇴원하라는 걸 더 있다가 대구보훈병원 호스피스로 전원(8월25일)했습니다. 호스피스 센터장이 첫날 입원할 때 보호자인 저와 딸을 앉혀놓고 임종 준비를 하라고 환자가 폭포수처럼 나빠질 거라고 얘기했습니다. 딸은 무섭다고 옆에서 울고요. 임종 사진, 장지 등등을 준비하라고...

호스피스로 옮길 때까지만 해도 걸었던 남편은 1주일만에 장폐색이 왔고(9월2일) 금식이 시작되면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졌습니다. 복부가 팽팽해지면서 복수가 아니라 가스 찬 거라고 의사가 얘기하고 환자는 답답해 하고 보는 저는 당장에 대학병원응급실로 델고 가 수술이라도 시켜주고 싶었습니다. 보호자로서 뭔가 해주고 싶었죠. 의사도 그런 경우가 있다고 수술 후 다시 호스피스로 와 있는 환자가 너무나 힘들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보호자의 훗날 죄책감보다 힘든 환자를 먼저 생각하고 편안하게 해주라고 간호사 지인이 조언했어요. 그래서 호스피스병동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금식 중 시원한 콜라 마시고 싶다고 했고 의사도 나중에 좀 나아지면 한 모금 마셔도 된다고 했습니다. 보다 못 해 콜라 한 모금 마시게 해줬는데 배가 더 아프면서 참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참 강단있게 참으면서 앓는 소리 안 내고 아픈데도 비명 한 번 안 질렀는데... 빈속에 독한 콜라 몰래 줬다고 의사에게 혼이 났어요.

남편은 9월 13일부터 소변을 보는 걸 힘들어 하고 앉아서 보던 소변을 무의식적으로 서서 보면서 옷이고 몸에 소변을 묻혔어요. 환자의 동의를 받아서 의식이 있을 때 유추도뇨관을 삽입하느라 시기를 보다가 의사가 추석연휴 앞두고 인력이 있을 때 소변줄을 꽂고 적응하는 게 좋다고 9월15일 수요일 낮에 꽂았습니다. 소변줄 꽂을 때 아 하고 비명을 질렀어요. 그때부터 남편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면서 퉁퉁 부은 발로 걸어가서 변기에 앉아 있었어요. 변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다리도 붓고 보호자인 저도 지쳐 다시 침대로 옮기면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안절부절 못 했습니다. 진정제도 네 번을 텀을 두고 넣어서 겨우 진정되었어요. 남편이 너무 힘들어해서 부채로 몸을 식혀주고 쓰다듬어줬습니다.

그리고 새벽에도 깨서 화장실을 갔다가 진정제를 놓고 새벽 5시에 간호사가 다리 압박끈과 손에 벙어리 장갑을 갖고 와서 도우미 간병인과 함께 셋이서 남편무릎을 묶었어요. 그때 저는 더이상 힘이 없어 묶는데 반대하지 않았어요. 몸부림이 심해 좌우로 몸을 뒤척일 때마다 소변줄이 빠질까 정맥에 꽂은 주사줄이 빠질까 계속 지켜보면서 자세도 잡아주고 침대 테두리 부분을 이불과 배게로 막아놨죠.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리가 부어서 다리부분 침대를 높여둬서 자꾸 머리가 침대헤드에 박아서. 이때부터 남편은 진짜 많이 아팠습니다.

이틀을 진정제 투여후 금요일부터는 24시간 시간당 4미리리터로 정기적으로 진정제가 소량 들어가는 기계를 달고 하루에 정기적으로 진정제 투약, 진통제 투약, 몸부림이 심하면 '여보 아프나?'하고 묻고 처음에는 대답도 했지만 나중에는 끄덕 거리면 간호사에게 추가 진통제 더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금요일 의사가 회진 후 따로 불러서 환자에게 추석은 넘기자고 말하라며 의학적 근거는 없지만 환자가 힘을 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남편에게 그렇게 말하고 거짓말이지만 치료 잘 받고 빨리 나아서 같이 다음 주 토요일 강아지 델고 염불암도 가고 갓바워도 가자고 말했어요. 24시간 진정제를 3일 투약하니 환자가 밤새 엎드려 자면서 눈도 눌리고 입안에 가래도 나오고 너무 쳐져서 아침 6시에 24시간 진정제투약을 중단했습니다. 그날이 9월20일인데 하루 종일 소변량이 없어서 간호사가 저녁 늦게 임종증상이라고 제옆어 앉아 설명하더군요.

9월21일 추석날 아침 남편을 1인실 평안실로 옮기고 다른 가족도 같이 있도록 배려해주셨어요. 딸을 추석에 혼자 집에 두기에 맘 아팠는데 잘 됐다 싶더군요. 우리가족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추석 다음날 남편은 목이 붓고 얼굴도 붓고 바로 누우면 숨을 못 쉬는지 깜짝 놀라면서 눈을 떴어요. 이 날 최고로 안 좋아보였습니다. 남편에게 생전 젊을 때 좋아한 나훈아의 영영도 들려주고 손잡아줬어요. 그가 결혼 전 불러준 나훈아 사랑도 불러주었어요.

9월23일 목요일 옆으로 누워서 자듯이 있는 그를 부르면 그가 몸을 들썩들썩 하며 뒤로 돌아보려했어요. 그 전날보다 붓기도 빠지고 편안해보였어요

. 의사가 회진 후 딸과 저를 외래진료실로 불러 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미루지말라고 그의 인생을 인정해주고 고맙다 사랑한다 앞으로 남은 가족이 잘 살거라고 얘기주라고 하더군요. 특히 딸에게 아빠에게 할 말을 하라고 말해서 딸과 아빠의 시간을 줬는데 그 사이 남편 가슴에 심전도 패치가 붙혀지고 남편의 산소포화도가 90이 넘었었는데 70대로 떨어졌습니다. 남편은 딸의 말을 듣고는 쌕쌕 거리며 숨을 쉬다가 아주 평온하게 심장이 멈췄어요. 그게 낮 12시였습니다. 딸 얘기를 듣고 미간 안 찌푸리고 잠자듯 갔습니다.

호스피스에 간호사들이 많은 일을 하고 판단을 하는 것을 봤고 도우미 간병인들이 있어 의지가 되고 외롭지 않았어요. 특히 센터장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보호자가 준비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병원에서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니 눈치도 보이고 외로웠거든요.

호스피스병동에서 남편이 비교적 젊은 측에 드는데 나이많고 아프신 어르신들속에 남편이 처음에는 멀쩡해보였기 때문에 보호자로서 참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휴직하고 남편하고 마지막 3개월을 같이 보낸 시간이 추억이 되었습니다.

어제도 서류때문에 대구보훈병원에 갔는데 호스피스병동에 올라가고 싶고 남편이 거기 있을 것 같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항암 투병 중이신 분들은 힘내시고 보호자분들은 호스피스병동을 선택 결정하실 때 제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힘내라는 말이 남편이 돌아가시고 장례치르면서 이해되더군요.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힘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를 추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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