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와 상관없는 성경 통독 (2017념 2월 남부구치소)
접견실에서 우연히 보라돌이를 만난 후 나는 성경을 손에 놓치 못하는 병에 걸렸다. 분명히 병이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성경책이 꽂힌 책꽂이부터 더듬었다. 한시도 성경을 읽지 않고는 눈에 가시가 돋는다는 것이 과장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잠시라도 성경을 손에 놓고 있노라면 마치 금단증세가 온 마약사범처럼 조바심이 나고 목에 마른 침이 넘어가기까지 했다. 하루종일 성경을 붙들고 있으니 같은 방 수감된 사람들은 칭찬 일색이다. "항상 성경을 읽는 아이구나.." 나는 그게 아닌데....단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게다가 성경을 읽는 내내 내가 글을 읽는게 아니고 성경속 내용이 내 가슴을 후비다가, 머리를 강타하다가, 글자가 나를 지배해 가고 있었다. 난생 처음 활자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단언컨데 성경은 생물이었다.
시편에서 시작한 성경봉독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마치 씹어 삼키듯 마무리가 되었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재물로 바치기 위해 올라가는 장면에서 숨을 못쉴만큼 눈물이 터졌다. 몇일 후 다시 그 구절을 읽었는데 똑같이 나는 통곡을 했다. 이렇게 서너번 우연인지 아닌지를 보기위한 내 시도는 결국 내 새끼들과 떨어져 내자신의 꿈에 미쳐있던 나에 대한 하나님의 메세지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 통곡은 마무리 되었다. '하나님, 제가 이곳을 나가면 절대 가족을 떠난 어떤 일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끼고 사랑하는 내 새끼들,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제가 좋은 엄마의 자리를 지키는 것을 제 삶의 첫째 사명으로 알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태어나서 하나님앞에 올린 첫번째 서언이 되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가는 동안 나는 살아있는 활자의 음성을 수없이 들었다. (사실 나는 이런식의 기독교식 간증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었음을 덧붙인다) 하나님은 재판때 함께 가서 변론하자고 말씀 하셨고 절대 나를 억울하게 만든 자들이 내 앞에서 잔치를 벌이게 하지 않을것이라 하셨으며 내게 노하였으나 반드시 용서하고 나를 살리신다 하셨고 내 재판에 거짓 증언 한 자들을 내 앞에서 멸망케 하신다 하셨다. 이런 구절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찾아 적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구절인지는 외우지 못하지만 당시 내 가슴속에 살아 박히어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는 음성들이다.
보라돌이의 권유로 시작된 성경읽기가 이쯤되니 나는 보라돌이의 다른 말도 듣지 않을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나는 아침 6시 점오 노래가 울려 퍼지면 자리에서 바로 엎드려 주기도문을 외우고 그날의 기도를 시작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이 좋아하신다는 새벽기도를 올렸다. 이쯤되면 보라돌이의 사주에 말려들어도 단단히 말려든것이 틀림없었다.
어느새 첫 번째 공판이 눈앞에 다가왔다. 이때 까지만 해도 보라돌이가 내게 내린 사주가 특별한 결과물을 가지고 올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내가 하나님 보다 한수 아래라지만 겨우 성경읽고 새벽기도 해나가고 있는걸로 이제는 내 소원을 들어줄 차례라는 저렴한 거래를 하는 것은 내 수준과는 맞지 않는 처사였다.
드디에 항소심 첫 공판일 (2017년 2월 서울 고등법원)
회사에서는 제법 잘나가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사건 자체가 전문 로펌이 아니고는 풀어가기도 힘든 사안이기도 했고 항소심이 진실을 밝힐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에 한국지사의 사할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던 탓이다. 잘나가는 변호사들은 늘 바쁘다. 그래서 법정을 가기전에 매번 만나거나 하는 것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다. 게다가 첫번째 공판에서는 대략 신원확인이나 사건에 대한 각 입장을 살피는 요식행위가 고작이니 첫 공판일 이전에 변호사를 만날 기회는 더욱 없었다.
공판 시작과 동시에 재판장의 서두가 시작되었다.
"다툴 사안이 많아 보이네요. 피고인측에서는 합의 보실 생각은 없으신건가요?"
재판장의 말의 끝나기도 전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내 옆에 변호사가 내 옷을 끌어 당기며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합의"라는 소리에 또 꼭지가 돌았다.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하시고 합의를 보라시는 건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재판장에게 할말은 아니기에 정제하고 걸러서 정중히 하지만 당돌하게 내 생각을 내뱉었다. "재판장님. 자료를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제게 어린 아이들이 미국에 있습니다. 고소인이 거짓말로 고소를 하는 바람에 제가 현재 1년째 미국을 못가고 아이들을 못만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3년이라는 실형을 받고 자식이 걸린 리스크를 걸고도 합의를 안보겠습니까? 제발 사건의 진실좀 밝혀주십시오!" 정중함으로 시작한 첫 문장은 끝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변호사의 옷자락을 끌어내리는 강압에 못이겨 자리에 앉게되었다.
그때 우리 변호가가 일어나 아주 점쟎은 목소리로 몸까지 굽신거리며 재판부를 향해 읇조렸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시다시피 사법부 내에서 일어나면 안되는 불미스러운 일로 피고인의 1심판사가 법원내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1심판결이 잘못되었다는 말씀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서 과연 사건을 면밀히 검토할수 있었을지에 대한 재고를 해주시어 이 사건을 처음부터 재검토할 필요성을 감히 요청드리는 바입니다." 판사석에 앉은 재판장과 배석판사 두분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잠시 침묵이 흘렀고 예상대로 첫 공판이니 만큼 신원확인등의 절차를 마치고 다음 공판일을 정한 후 변호사는 법정 정문으로 나는 교도관을 따라 뒷문으로 각각 나갔다. 여전히 변호사와 말을 섞을 기회가 없었다.
내 1심 재판장 (2017년 3월)
사법부내 불미스러운 일?
내 1심판사가 사건의 중심?
첫 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돌아온 나는 우리 변호사가 뱉은 말들이 머리에서 윙윙 돌아가며 미치고 환장할 궁금증에 시달렸다. 나만 모르고 다 알고 있는 내 1심 판사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몇일 후 면회를 온 직원에게 1심 판사 이름을 주고 인터넷 검색을 해달라 다그쳤다.
그리고 실명이 다 안나올수 있으니 1심판사가 맡았던 주요사건인 이청연 인천교육감 사건도 언급하면서
연관 검색어들을 던져주고 무슨 일인지 검색하고 안나오면 변호사에게 물어서라도 알아오라했다.
궁금증을 겉잡을 수 없었지만 접견품으로 복사된 서류가 내게 도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외에 뾰족히 할수 있는게 없었다. 하루가 열흘 같았으니 백일즘 흐른듯한 열흘이 지난 후 나는 의문의 열쇠를 손에 넣고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내 1심선고 1주일전에 내사건을 맡은 재판장에게 이런 일이....그래서 선고를 한달 미루고....그래서 우리가 제출한 자료는 제대로 처 읽지도 않고 그런 동문서답의 판결문을 적었다는 말인가......직원이 넣어준 신문기사를 읽다가 온 몸에 힘이 풀렸다. 다행인듯 불행인듯 우연인듯 필연인듯 알수 없는 미스테리 같은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신의 한 수가 시작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와 같은 재판부에서 1심 판결을 받은 인천교육감 뇌물사건에 연류된 박모씨는 당시 뇌물 수뢰로 법정구속이 되었다가 항소심에서 뇌물 공여로 죄명이 완전히 뒤집혀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 이제 생각해보면 잘나가던 판사가 음주 뺑소니 혐의를 받았으니 그 어떤 생각도 할수 없을 지경까지 멘탈이 붕괴될 수 있었겠다는 인간적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상태로 재판에 임했다는 것은 재판장 자신은 물론, 그에게 재판을 받은 자들까지도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 결과에 대한 미필적 고의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결국 내 1심 재판장은 법복을 벗고 법원을 나갔다. 당시 1심 재판장의 판결문을 분석해보면 뇌물 사건에 있어서 피고인이 뇌물을 받은 사람인지 뇌물을 준 사람인지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집중을 할수가 없는 지경이였으니 과연 기업금융의 복잡한 생태계가 얽힌 우리 사건을 제대로 보기나 했을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내 사건을 더욱 면밀히 검토할 수 밖에 없었던 항소심 재판부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재판부는 우리가 신청하는 증인들(그 중에는 1심과 중복되는 증인도 있었지만)을 이례적으로 모두 받아주었고 재판 기간도 보통의 항소심보다 공판횟수가 2배이상 늘어났다. 2차 공판때부터 마지막 선고에 이르기까지 재판때 마다 관여하시며 우리 변호사를 울음 터뜨리게 하고 검사의 얼굴이 상기되게 만들고 판사의 마음까지 주관해 가신 하나님의 기획력은 인간의 머리로 짜낼수가 없는 말그대로 신의 한수가되어 광풍처럼 법정안을 몰아가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