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호스피스 병원에 관해.. (개인 경험담)

서울강서보호자
2020.01.25 21:54 | 조회 3.7k

아내가 미만형 위암 4기를 진단받고 11개월 투병 끝에 43세로 2019년 7월 5일 눈을 감았습니다. 이제 반 년 됐네요.

 

이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호스피스 병원에 대한 정보 공유를 하기 위해서입니다이 글을 보시는 분은 환우의 보호자이거나 환우 본인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호스피스병원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면 현대의학에서 제시할 수 있는 치료법이 몇 남지 않은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렇게밖에 돕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그러나 중요하다 싶어서 남깁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호스피스 병원을 추천합니다. 무엇보다 제 아내가 만족해 했습니다.

호스피스병원은 환자를 대하는 관점이 대학병원과 완전히 다릅니다. 아시겠지만 대학병원에서는 병원 시스템, 정확히는 병원 관료제에 환자를 맞추려 합니다. 예컨대, 대학병원에서는 의사들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할 때 상당한 제약이 걸려 있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환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덕분에 호스피스병원에서 아내는 임종 예비 단계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11일 동안 또렷한 의식을 유지하고, 아프다고 찡그리지 않고, 간만에 깔깔깔 웃기도 하고, 저와 핸드폰 게임 팀플레이도 하고, 산책도 하고, 친구들 불러서 사진도 찍고, 자신이 남길 유언을 모두 숙고하고 정리한 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아내가 입원해서 영면할 때까지 16일 동안 호스피스병원에서 먹고 자고 했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에 관한 잘못된 소문도 많습니다. 환자를 빨리 내보내기위해 영양제를 일부러 주지 않는다는 게 한 예입니다. 제가 보기엔 완전 헛소문입니다. 제 아내는 16일을 입원했는데 임종 예비 단계에 돌입하기 전까지는 필요한 영양제 다 맞았습니다. 또 저는 잘 아는 의사 분한테서 호스피스 병원에 가도 진통제 많이 쓰는 것 외에는 일반 병원과 다를 바 없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용을 해 보니까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지만 삶의 질을 크게 높인 사례 하나는 이렇습니다.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기 직전의 두 달 동안 저와 아내는 서울의 대학병원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내는 환자 병상에, 저는 보호자 간이 침대에서 잤습니다. 호스피스병원으로 옮기면서 아내는 뜻밖의 요청을 했는데 환자 침대 두 대를 나란히 붙여 제 손을 쥐고서 매일 밤 잠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제가 입원한 굿피플의원은 전부 1인실이었고, 병원 측에서 환자 침대를 하나 더 구해서 배려해 준 덕분에 아내의 뜻대로 나란히 잘 수 있었습니다. 두 달 만에 그렇게 손을 잡고 불끄고 누웠을 때 저는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행복해서요. 정말 작은 일이지만 이게 대학병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병실이 늘 부족한 것도 있지만, 설령 병실과 침대가 남아있더라도 각종 제약이 가해졌을 것이 눈에 선합니다. 대학병원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대학병원은 환자를 좀 불편하게 하더라도 의학적 상태 호전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호스피스 병원은 환자의 심리적 안녕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둘째 조언은 호스피스병원을 너무 늦게 찾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호스피스병원에 지내면서 본 많은 환자들은 호스피스 병원에 올 때는 이미 의식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이거나 하루나 이틀 만에 임종 예비 단계(통증을 잡기 위해 불가피하게 진통제를 많이 쓰다 보니 사실상 환자는 잠만 자는 상태)로 돌입합니다그러나 새로운 병원에 적응하려면 며칠이 필요하고 그런 뒤에야 자기 삶을 정리하고 친구들을 부르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아내는 임종 예비 단계 전까지(즉 의식을 온전히 유지한 채로) 11일을 호스피스병원에서 지냈는데, 아내 요청대로 필요한 살림을 집에서 병실로 옮기고 새로 둥지를 트는 데만 그중 2~3일이 걸렸습니다. 이후 1주일 남짓 동안은 우리가 집에서 쓰던 그릇, 우리가 집에서 쓰던 칫솔, 우리가 집에서 쓰던 발받침대 등등을 모두 갖추며 지냈고, 그래서 우리의 2번째 신혼집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달 정도는 그렇게 지낼 것만 같았는데 불과 11일 만에 끝났다는 게 너무 아쉽습니다. 아무튼 너무 늦게 호스피스병원을 찾으면 이런 것을 누릴 새 없이 진통제에만 의지하다가 영면할 수도 있을까 봐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보호자가 환자에게 호스피스 병원 입원을 종용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이 둘째 조언은 환우 본인께서 읽으실 때에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조언은 호스피스 병원을 잘 고르라는 것입니다. 일단, 1인실을 강추합니다. 제 아내가 호스피스병원을 고를 때 요구한 사실상 유일한 조건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옆 병상에서 다른 환우가 힘들어하는 것을 볼 자신도 없지만, 둘이서 내밀하거나 진중한 얘기를 나눌 때, 작은 취미(드라마 시청, 모바일게임 등을 했네요)를 함께할 때에도 아무래도 1인실이 편합니다. 둘째로, 상당히 많은 호스피스병원들이 아파트 단지 상가 건물에 입주해 있는데 할 수 있다면 단독 건물이 좋습니다. 제가 인터넷 검색에 의지해 찾아냈던 많은 1인실 호스피스 병원들이 알고 보니 상가 건물에 있다고 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물론 저와 제 아내가 사용해 보지 않아서 상가 건물에 대한 편견일 수 있지만 가급적 온전히 호스피스 케어를 위한 시설에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근처 환경이 좋은 곳을 추천합니다. 예컨대, 나중에 제 아내 장례식을 치룬 곳은 서울의 모 병원이었는데 거기는 장례식장 바로 앞에 호스피스병동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저기서 보름동안 보냈더라면 산책할 때마다 장례식장 보면서 우울했겠다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위 조건들을 만족하려면 만만치 않은 시설이어야 하고 대부분 서울에서 거리가 꽤 됩니다. 친구들이 찾아오기에는 교통이 불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환자 본인을 위해서는 위 조건들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먼저 추천받은 곳은 용인의 샘물호스피스였지만 1인실이 아니라는 점과 용인이 꽤 멀어서 망설이던 차에, 아내 친구들이 발품 팔아 찾은 곳은 파주의 굿피플의원이었는데 전부 1인실이기도 하고, 파주가 용인보다는 가까워서 그리로 선택했습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대기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1주일 이내였습니다.)

 

이 곳은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운영하는 거대한 기도원 공원(최자실추모공원)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저도, 제 아내도 신념에 따른 무신론자이고 또 사실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안 좋아서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전국의 모든 호스피스병원은 기본적으로 모든 종교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고(의료법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제 아내 친구(선배)들이 세상 경험이 풍부한 분들이었는데 이곳 의료진들을 만나 상담을 해 보니 절대 종교를 강요할 분들이 아니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었습니다. 또한 거대한 공원 안에 위치한 덕분에 산책하기 좋다는 점도 중요했고, 돌이켜 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아래는 제가 아내와 긋피플의원 근처에 산책 나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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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사실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아내의 회사 동료들 불렀을 때 한 번, 처가 부모님과 처남네 부부 불렀을 때 또 한 번 산책을 했습니다. 아내는 자신이 이렇게 좋은 곳에 좋은 모습으로 지낸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일 수 있었다며 아주 만족해 했습니다. 정말이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런 사소하고 작은 게 환자의 삶의 질에서는 정말 중요했습니다. 아내가 이곳 원장님께 저는 제 인생에 점수를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적어도 8점 이상은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하면서 만족을 나타낼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작은 것들이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주저리주저리 썼네요. 호스피스병원을 알아봐야 할 정도로 다급하신 분들께 많이 부족하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이거 쓰느라 간만에 눈물을 펑펑 흘렸네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2020-9-14 업데이트: 제가 말한 굿피플의원은 문 닫는다고 합니다. 병원 알아보실 때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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