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암진단을 받았을 때만해도 암에 대해 아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분명 초기암일테니까 종기 떼어내듯 수술만 받고나면 두번 다시 그 병원에 갈 일이 없을 거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사로 잡혀 있었고, 다른 사람들처럼 암 진단 받고 절망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부분 절제로 1차 수술을 받은 후 1주일 뒤나온 조직 검사 결과 나의 병기는 예상보다 높은 3기로 판명되었고 의외로 넓게 퍼진 암조직으로 인해 첫 수술 10일만에 전절제로 재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게다가 말만 들어도 끔찍했던 항암치료도 무려 8번이나 받아야 하고 방사선 치료에 5년간 호르몬 치료까지 전부 빠짐없이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정기적인 추적 검사를 통해 재발과 전이여부를 체크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나의 건방진 예상은 참담한 패배를 맛보고 나는 바닥 모를 절망감에 빠지게 되었다.
모든 환자가 다 그러했듯이 “왜 하필 내가?”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매일 운동하고 인스턴트 식품도 싫어하고,
비만한 것도 아니고, 술 담배를 한 것도 아닌데
무엇 때문에 이런 병에 걸린 거지?
나를 가장 못 견디게 한 것은, 그동안 나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제공한 사람들에
대해 폭발하는 미움과 증오였다. 그들이 나를 병들게 했다는 생각에 당장 달려나가 요절을 내버리고 싶었다.
암진단을 받고도, 2번이나 암수술을 받아 흉측한 칼자국만 남기고 한쪽 가슴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도 내가 암환자라는 현실이 실감나지 않더니, 항암 치료 후 어깨를 덮고 등까지 내려올 만큼 치렁치렁하던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지면서
비로서 나는 실감하게 되었다. 내가 암환자가 맞구나.
퇴원후 인터넷을 통해 유방암 3기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을 검색해보니 생존율이 50%란 결과를 보고, 내가 처음 한 일은 국민연금 공단에 연락해서 내가 사망하면 유족연금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한 것이었다. 휴면 계좌를 정리하고 보관하던 여러가지 물품을 정리하면서 마치 내 인생을 마무리 짓는 느낌마저 들었다. 동시에
나를 이렇게 좌절시키는 암이란 존재에 대해 내가 너무 아는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암에 대해 알고 싶어 책을 통해, 많은 암환자 교육을 통해 암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암이란 외부에서 침입한 병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생긴게 아니고 내 몸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세포분열 과정에서 어떤 원인에 의해 비정상적인 세포가 생성되고 인체 면역력이 저하되면 비정상적인 세포가 제거하지 못해 발생되는 것이었다. 결국 암은 내가 내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생긴 결과라는 거였다.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를 통해 의학적인 검사에서 발견되는 암세포 덩어리를 제거할 수는 있지만, 미세한 암세포는 항상 우리 몸 안에 불씨처럼 남아 있다가, 잘못된 생활 습관을 고치지 못하고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암세포는 언제든지 재발이나 전이라는 형태로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치료후 5년간 재발이나 전이가 없으면 의학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게 되지만, 엄밀히 말해 암의 완치라는 건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암은 이제 당뇨병이나 고혈압처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나 유방암은 치료후 10년 심지어 20년 후에도 재발, 전이되는 끈질긴 특성이 있다. 나도 내년 4월이면 증증환자 등록 기간 5년이 만료된다. 만기 출소라기보다는 일정의 가석방(?)같은 느낌이다. 내가 지금까지 재발이나 전이 없이 무사했음에 감사한 맘이 들면서, 같은 병원에서 치료 받다 만난 소중한 암친구(?)들 중 불행히도 전이되어 별이 되어 버린 친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먹먹해진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예전에 알지 못하던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침에 고통 없이 잠에서 깨어날 수 있는게 얼마가 고마운 것인지, 구역질 없이 식탁에 앉아 식사할수 있는게 얼마나 기쁜 것인지, 감염의 우려없이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 건지... 7년간 기른 치렁치렁했던 긴 생머리와 나의 왼쪽 가슴은 암이 앗아갔지만, 반대 급부로 내가 암에게서 받은 것은 너무나도 많았다.
유명한 유방암 전문의로 얼마전 대장암으로 작고하신 이희대 교수님이 쓰신 책에서 봤던 문구가 기억 난다. “암은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세입자”라는. 그래서 나는 나의 암세포에게 늘 말한다. “그래 우리 사이 좋게 평생 어깨동무하고 같이 살아 가자. 하지만 너는 세들어 사는 세입자에 머물러 있거라. 나를 몰아내고 안방을 차지하고 집 소유권을 넘겨 받을 생각은 하지 말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