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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어느날..
남편이 소화가 잘 안되는 것 같다는 말을 몇번 하는 것 같아 동네 내과에 가서 내시경을 해보라고 했다.
우리 둘다 내시경 해본 경험이 없었던 터라 난 출근을 하고 남편은 혼자 병원에 가 내시경을 하고 왔다.
"뭐래?"
"그냥 헬리코박터 있다고 보름간 약먹으래. 괜찮데. 그런데 수면하고나서 내가 막 움직여서 못했다고 깨서 그냥 다시했어. 그런데 그냥 쑥넣었다가 금방 빼던데?"
"헉! 힘들었겠다!"
그렇게 처음해본 내시경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인상만 심어주고 지나갔다.
꼼꼼하게 봐주지 않았던 일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상하지 못한채...
보름간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괜찮겠지 하며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중간 중간 속이 안좋거나 역류성 식도염증상이 있긴 했지만 심한 증상까진 아니었고 동네 병원에 가보면 역시나 식도염약이나 위염약만 처방해주는 식의 반복이었다.
불과 몇달 전에 내시경으로 속을 들여다보았으니 내시경은 또 해봐도 똑같을거야, 하며 병원에 대한 불신만 늘어갔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면역력은 점점 떨어져갔나보다.
그해 11월 남편에게 대상포진이 왔다.
대상포진인줄도 모르고 미련하게 계속 일하다 증상이 좀 심해진뒤 병원에 입원했다.
태어나서 처음 한 입원이라며 철없이 웃던 우리 남편.
이왕 입원한거 푹 쉬자며 일주일 입원 후 퇴원.
퇴원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다래끼가 나선 또 찢어서 고름빼내는 시술.
다래끼가 난 것도 태어나서 첨이라고 했다.
그때도 역시,
"요즘 왜자꾸 아파~"
"몰라~ 피곤한가봐~"
하며 웃어 넘겼다.
바보같이 몸이 보내는 신호는 알아채지 못한채...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속이 더부룩하고 트름이 아주 심하게 올라오는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이건 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큰 병원에 검사차 입원하기로 했다.
2013년 1월 어느날..
직장에서 퇴근 후 신랑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다음날 퇴근 후 병원으로 향했다.
"내시경 했어?"
"응."
"이번에는 안움직였데?"
"응. 얌전히 있었나봐."
"의사가 뭐래?"
"위 궤양이 좀 심하데. 궤양도 심하면 수술할 수도 있데. 조직검사 해놨어. 내일은 CT찍는데."
"아 그렇구나. 위 궤양이 심해서 속이 안좋았나보다."
의사는 남편을 배려해서였는지 암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남편을 병원에 입원시키면서도 암이란 것은 전혀 1%도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그 말을 곧이 곧대로 이해했다. CT를 찍는 것도 그저 건강검진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채...
인터넷 창에 위궤양 수술을 검색해보았다.
위궤양도 심하면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는 글들이 나왔다.
조직검사도 위궤양의 중증도를 알기위해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암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던지...
그것이 얼마나 더 큰 충격을 안겨줄지 모른채 몇일이 더 흘렀다.
2013년 1월 26일.
조직검사 결과 기다리느라 입원한지 5일쯤 지난 듯 했다.
나는 퇴근 후 병원으로 향했고,
남편과 친한 동생들이 문병와 화기애애하게 웃고 농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의사가 회진을 왔다.
"조직 검사 결과가 아주 잘 나왔습니다. 암이구요."
"네????"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의사는 우리에게 전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암세포의 종류가 몇가지가 있는데 이건 좀 좋은거고 이건 좀 나쁜거고...."
이미 귀에 아무것도 안들어 왔지만 의사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끝에,
"그중에 가장 안좋은 암입니다."
병실 분위기는 물론이고 병문안 왔던 동생들까지 어쩔줄 몰라하고...
나는 눈앞이 노래지고 손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럼 몇기 인건가요?"
"CT상에 임파선이 많이 커져있는 걸 보니 적어도 3기말인 것 같습니다. 일단 다른 장기로는 안간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떻해야 하나요?"
"수술을 하셔야할건데 여기선 수술을 안하니 부산이나 원하시면 서울에 가셔도 되고..."
그렇게 그날 부터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위암이라는 놈과의 동행은 시작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위암 4기.
항암 안하면 6개월, 항암해서 잘되면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되었고,
2013년 9월의 어느날..
호스피스병동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며 암 진단 이후 8개월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겨보겠노라 당찬 포부도 있었지만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니란 것을 몸소 느끼며..
투병의 과정이 아닌 시작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우리처럼 암에 대해 무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그 사람들은 우리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해서이다.
처음 내시경을 큰 병원에서 했었더라면,
중간 중간 있던 증상들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았더라면,
이제 겨우 32살 우리 남편이 이렇게 힘없이 암에게 당하진 않았을텐데...
너무 안타깝고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눈물로 기도해본다...
남편이 소화가 잘 안되는 것 같다는 말을 몇번 하는 것 같아 동네 내과에 가서 내시경을 해보라고 했다.
우리 둘다 내시경 해본 경험이 없었던 터라 난 출근을 하고 남편은 혼자 병원에 가 내시경을 하고 왔다.
"뭐래?"
"그냥 헬리코박터 있다고 보름간 약먹으래. 괜찮데. 그런데 수면하고나서 내가 막 움직여서 못했다고 깨서 그냥 다시했어. 그런데 그냥 쑥넣었다가 금방 빼던데?"
"헉! 힘들었겠다!"
그렇게 처음해본 내시경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인상만 심어주고 지나갔다.
꼼꼼하게 봐주지 않았던 일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예상하지 못한채...
보름간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괜찮겠지 하며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중간 중간 속이 안좋거나 역류성 식도염증상이 있긴 했지만 심한 증상까진 아니었고 동네 병원에 가보면 역시나 식도염약이나 위염약만 처방해주는 식의 반복이었다.
불과 몇달 전에 내시경으로 속을 들여다보았으니 내시경은 또 해봐도 똑같을거야, 하며 병원에 대한 불신만 늘어갔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면역력은 점점 떨어져갔나보다.
그해 11월 남편에게 대상포진이 왔다.
대상포진인줄도 모르고 미련하게 계속 일하다 증상이 좀 심해진뒤 병원에 입원했다.
태어나서 처음 한 입원이라며 철없이 웃던 우리 남편.
이왕 입원한거 푹 쉬자며 일주일 입원 후 퇴원.
퇴원후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다래끼가 나선 또 찢어서 고름빼내는 시술.
다래끼가 난 것도 태어나서 첨이라고 했다.
그때도 역시,
"요즘 왜자꾸 아파~"
"몰라~ 피곤한가봐~"
하며 웃어 넘겼다.
바보같이 몸이 보내는 신호는 알아채지 못한채...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속이 더부룩하고 트름이 아주 심하게 올라오는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이건 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큰 병원에 검사차 입원하기로 했다.
2013년 1월 어느날..
직장에서 퇴근 후 신랑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다음날 퇴근 후 병원으로 향했다.
"내시경 했어?"
"응."
"이번에는 안움직였데?"
"응. 얌전히 있었나봐."
"의사가 뭐래?"
"위 궤양이 좀 심하데. 궤양도 심하면 수술할 수도 있데. 조직검사 해놨어. 내일은 CT찍는데."
"아 그렇구나. 위 궤양이 심해서 속이 안좋았나보다."
의사는 남편을 배려해서였는지 암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남편을 병원에 입원시키면서도 암이란 것은 전혀 1%도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그 말을 곧이 곧대로 이해했다. CT를 찍는 것도 그저 건강검진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채...
인터넷 창에 위궤양 수술을 검색해보았다.
위궤양도 심하면 수술하는 경우도 있다는 글들이 나왔다.
조직검사도 위궤양의 중증도를 알기위해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암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던지...
그것이 얼마나 더 큰 충격을 안겨줄지 모른채 몇일이 더 흘렀다.
2013년 1월 26일.
조직검사 결과 기다리느라 입원한지 5일쯤 지난 듯 했다.
나는 퇴근 후 병원으로 향했고,
남편과 친한 동생들이 문병와 화기애애하게 웃고 농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의사가 회진을 왔다.
"조직 검사 결과가 아주 잘 나왔습니다. 암이구요."
"네????"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의사는 우리에게 전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암세포의 종류가 몇가지가 있는데 이건 좀 좋은거고 이건 좀 나쁜거고...."
이미 귀에 아무것도 안들어 왔지만 의사는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끝에,
"그중에 가장 안좋은 암입니다."
병실 분위기는 물론이고 병문안 왔던 동생들까지 어쩔줄 몰라하고...
나는 눈앞이 노래지고 손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럼 몇기 인건가요?"
"CT상에 임파선이 많이 커져있는 걸 보니 적어도 3기말인 것 같습니다. 일단 다른 장기로는 안간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떻해야 하나요?"
"수술을 하셔야할건데 여기선 수술을 안하니 부산이나 원하시면 서울에 가셔도 되고..."
그렇게 그날 부터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위암이라는 놈과의 동행은 시작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위암 4기.
항암 안하면 6개월, 항암해서 잘되면 1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되었고,
2013년 9월의 어느날..
호스피스병동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며 암 진단 이후 8개월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겨보겠노라 당찬 포부도 있었지만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니란 것을 몸소 느끼며..
투병의 과정이 아닌 시작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우리처럼 암에 대해 무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 그 사람들은 우리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해서이다.
처음 내시경을 큰 병원에서 했었더라면,
중간 중간 있던 증상들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았더라면,
이제 겨우 32살 우리 남편이 이렇게 힘없이 암에게 당하진 않았을텐데...
너무 안타깝고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눈물로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