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환각과 현실의 경계, ‘섬망(Delirium)’의 역사와 진통제의 두 얼굴

이길수있어l대보
2026.06.15 10:14 | 조회 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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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참고용으로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암 투병 과정에서 환우와 보호자를 가장 당황하게 만드는 복병 중 하나가 바로 ‘섬망(Delirium)’입니다. 낮에는 멀쩡하시다가도 밤만 되면 전혀 다른 사람처럼 헛소리를 하시거나 엉뚱한 곳에 와 있다고 하시는 증상인데요.

이 혼란스러운 섬망의 실체와 역사, 그리고 ‘극심한 통증’과 ‘이를 잡기 위한 진통제’가 어떻게 섬망을 폭발시키는지 그 아슬아슬한 관계를 영화와 역사 속 장면에 빗대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보겠습니다.

1. 영화 <인셉션> – 현실과 꿈의 경계가 무너진 뇌 (통증과 진통제의 합작품)영화 인셉션을 보면 주인공들은 타인의 꿈속으로 깊이 들어갑니다. 이때 꿈의 단계가 너무 깊어지거나 강력한 진정제를 사용하면, 어디까지가 진짜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꿈인지 분간하지 못해 혼란에 빠지는 ‘림보’ 상태에 갇히게 됩니다.섬망은 ‘극심한 통증’과 ‘진통제’라는 강력한 두 자극이 부딪혀 우리 뇌가 일시적으로 이러한 ‘림보’에 빠진 상태와 같습니다.

통증이 가하는 폭격 (뇌의 과부하): 통증 등 제어되지 않는 극심한 통증이 지속되면, 우리 뇌는 그 강력한 통증 신호를 해석하고 방어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폭발적으로 분비되고 뇌의 신경전달물질 체계가 붕괴되면서 의식의 명료함이 깨지고 섬망이 고개를 듭니다.

진통제가 가하는 브레이크 (뇌 기능의 억제):아이러니하게도 이 지옥 같은 통증을 잡기 위해 투여하는 마약성 진통제(옥시코돈 등)나 케타민이 섬망을 더 부추깁니다. 몸의 대사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이 독한 약물 성분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뇌에 쌓이면, 뇌의 핵심 수용체들을 과도하게 마비시킵니다.

결국 뇌는 통증으로 미쳐 날뛰는 와중에 진통제에 의해 강제로 흐려지면서, 영화 속 인물들처럼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허공에 대고 손짓을 하거나 헛소리를 하는 섬망의 덫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2. 섬망의 역사 – 기원전 히포크라테스부터 시작된 ‘뇌의 열병’섬망은 최근에 발견된 현대병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와 아주 오랜 기간 함께해 온 의학적 현상입니다. 기원전 히포크라테스의 기록: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경, 심한 신체적 질환이나 열병을 앓는 환자가 갑자기 미친 듯이 행동하거나 유령을 보는 듯한 증상을 기록하며 이를 ‘프레니티스(Phrenitis)’라고 불렀습니다. 신체가 극한의 위기에 몰리면 뇌가 정신을 잃고 방황한다는 것을 고대인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로마 시대 ‘델리리움’의 어원:로마 시대의 의학자 셀수스(Celsus)에 이르러 비로소 지금의 ‘섬망(Delirium)’이라는 용어가 탄생했습니다. 이 말은 라틴어로 ‘밭이랑을 벗어나다(De-lira)’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소가 밭을 갈 때 일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경로를 이탈하듯, 통증과 약물 교란으로 인해 뇌의 인지 기능이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해 비틀거리는 상태를 정확하게 비유한 역사적인 이름입니다.

3.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 고래가 필요한 방과 ‘과한 기대치의 함정’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은 세상의 복잡한 소음과 자극에 혼란을 느낄 때, 헤드폰을 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고래 이야기를 떠올리며 평온을 찾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억지로 다그치거나 환경을 급격하게 바꾸면 오히려 더 큰 공황 상태에 빠지죠.

섬망을 치료할 때 의료진은 약물 배합을 조절하여 과흥분된 뇌를 강제로 잠재우는 진정적 효과(Sedative effect)를 쓰기도 합니다. 통증의 폭격을 맞은 뇌를 쉬게 해주는 필수 조치이지만, 이때 보호자가 "약을 썼으니 금방 예전처럼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너무 과한 기대치를 가지는 것은 금물입니다.

통증을 잡으려 진통제를 늘리면 섬망이 심해지고, 섬망을 가라앉히려 약을 조절하면 다시 통증이 폭발하는 아슬아슬한 시소게임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약물이 대사되어 나가고 뇌의 부종과 혼란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과한 기대치로 환자를 다그치기보다는, 우영우가 고래를 보며 안정을 찾듯 보호자가 곁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여기는 병원이고, 지금은 오전이에요. 내가 옆에 있으니 안심하세요"라고 끊임없이 현실을 인지시켜 주는 것이 가장 훌륭한 치료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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