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망설이다가 처음으로 글을 올려요

떡잎마을친구l대보
2026.02.23 03:34 | 조회 1.3k

작년 1월에 처음 아빠의 대장암 4기..

다발성 간전이 소식을 듣고 하늘이 무너지면 이런 느낌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순서가 되면 누구나 떠난다고 스스로에게 항상 최면을 걸었는데..막상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에 가슴이 짓이겨지더라구요.

소식을 듣고 부모님댁으로 가는 차 안에서 울기만하는 저에게 남편이 묻더라구요.

어떻게 하고싶냐고.. 원하는대로 해주겠다고..

후회 남지않게 선택하라면서 본인은 장인이 오셔서 치료받으시길 원한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착한 남편이라 울아빠한테 이거저거 해드리라고 닥달하는 통에 오히려 부부싸움 날뻔도 했지요.

부모님은 멀리…전남에 사시고…

저희 삼형제는 모두 경기도에 살고있어요.

아빠는 첫 진단을 받은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거 같다는 얘기를 들으시고..포기하신듯 집에서 가까운 병원을 가시겠다고 하셨지만 저희 부부는 힘들게 설득해서 용인에서 치료를 받게 되셨어요..

사실 아빠를 살리고싶은 마음이 가장 크지만 그 다음은 아빠 병수발 들다가 엄마가 잘못될까봐 그 또한 무서웠어요.

모든 분들이 그렇듯이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구요..

시골에 사시는 분이라 답답해 하시니..항암하는 동안에 제가 모시고 나머지 시간은 KTX 타고 내려가셨다가 또 항암 할 때 오셨어요.

2주에 한번씩 하는 폴폭스+얼비툭스

4번 항암을 하고 수술 가능하다해서 수술하고 남은 8번 항암도 작년 10월 초에 끝냈어요..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살면서 아무리 기뻐도 행복하다는 말은 아껴왔는데… 그냥 행복했어요..이 행복을 누가 뺏어갈까봐 두려울 정도로 행복했어요.

애들 키우면서 아빠 모시고 다니고..간호해드리고 항암 때 식사 신경쓰고 이런거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버틴만큼 아빠가 회복되어서 힘듦이 다 없던 일이 되었어요.

저는 그시절(1980년대생) 시골에서 자란 어린시절 치고는 엄청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고 컸었거든요..

‘폭싹 속았수다’에 나오는 관식이가 딱 저희 아빠였어요..

아직도 저는 애기이고 아빠 없으면 큰일나는 인간인데..아빠가 없는 삶을 상상하려해도 안되더라구요…

저번 검진에서 아직 아무것도 보이는게 없다는 소견을 듣고 처음으로 부모님 모시고 온가족 해외여행도 다녀왔어요.

생각보다 아빠가 너무 행복해하시고 심지어 여행 다녀오시고 여권을 새로 발급받으셨어요. 삶의 의지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아빠는 이제 3개월마다 검사를 받으시는데..

본인은 얼마나 떨리시고 불안하시겠어요.

저는 검사 3주 전부터 불면증과 불안으로 일상에 집중을 못하겠어요

체하고 두통에 시달리고..결국은 이석증이 또 왔어요.

지금 이 시간에 이렇게 깨어있구요..잠이 잠깐 들면 또 악몽을 꾸겠죠. 제가 엄청 예민한 인간인건 맞는데..

제가 이렇게 불안한 이유는 안좋은 상황에 대한 다음 플랜이 없어서 그래요.. 여기까지는 아빠가 내 뜻에 따라주셨는데 조금이라도 안좋은 상황이 생겼을 때 안따라주시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이요. 한번 놀란 마음은 진정이 잘 안되요.

하루에 몇번씩 처음 아빠의 진단 소식을 듣던 순간으로 돌아가서 눈믈이 막 차올라요..아빠는 지금 괜찮은데..

그 순간 느꼈던 마음의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더라구요.

모두 남들 앞에서는 항상 씩씩한척 하는데 속은 뭉그러진 채로 그냥 사는거겠죠?

누군가에게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못하는 말

이렇게 두서없이 마음속 보따리를 조금 플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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