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 가족들 모두 보시고 떠나신지 일주일이 됐어요
어머니께서 내내 간병하셨는데 출근길 아침 요양병원으로 와야할거 같다는 전화에 지방에 있는 동생에게 연락하고 바로 요양병원으로 갔어요
아버지가 계시던 요양병원은 1인 임종실없어서 다인실에서 산소호흡기를 한채 힘들게 숨을 몰아쉬고 계셨어요
금방이라도 호흡이 멈출거 같았는데 제 얼굴 보자마자 눈을 마주치시며 입만 뻥긋하셨어요
주치의가 항암을 안하면 2개월, 항암을 해서 괜찮으면 더 사신다고하여 항암을 했는데 마지막 항암이 독이 됐었나봐요
온갖 피부발진에 욕창이 심하셨는데 매일 욕창 치료할때마다 힘들어하셨어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셔서 항암도 선택하셨는데 결국 말렸어야했나하고 마지막 희망을 왜 가져서 아버지를 힘들게 했나 죄책감이 계속 들더라고요
동행에서 임종증상도 찾아보고 했는데
가래끓는소리 돌아가시기 3일전 계속 가래가 나오고 콧물 침을 많이 흘리시고 열이 오르락 내리락 하셨어요
돌아가시기전날은 쉬는 숨소리가 달라지셔서 바로 어머니가 간호사에게 말해서 산소호흡기 착용하고요
그리고 나서 딱 하루만에 돌아가셨어요
계속 숨이 멎을것만 같았는데 동생이 오니 동생 눈도 마주치고
마지막 대변 보시고 어머니가 기저귀 갈아드리고 사랑한다는 말 그동안 못했던 아버지랑 하고 싶은 일들을 다 이야기하며 가지말길 바라며 제 옆에 계속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잡고 기도하고 이야기했는데 입모양으로 가족들 이름 부르시고 결국 눈을 감으셨어요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마음의 정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어요
올 겨울 그렇게 춥더니 아버지 장례치르고 삼우제지내는 동안 햇살이 따듯하고 아늑하더라고요
아버지는 워낙 말수가 적으셔서 어머니 저 동생이 수다떨면 가만히 난로 째며 조용히 듣고 미소만 지으시는 분이라 지금도 그 자리에서 가족들 이야기를 듣고 있는거 같아요
아마 일상생활 복귀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본가에 계실거 같고
전화하면 응~딸~하며 다정하게 불러주실거 같아요
마음이 아직도 힘들지만 또 정리해야할거 하고 아버지가 가시고 싶었던곳도 다니며 지내겠죠
짧은 장례식에도 아버지가 보고싶었던 분들은 모두 와주셔서 감사인사도 드렸습니다
동행에 5년간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