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너무 답답해서..

힘내82ㅣ후보
2026.01.07 23:44 | 조회 1.6k

오늘로써 아버지 후두암 방사선 치료를 끝냈습니다

10월 28일 확진을 전북대에서 받고 길고 긴 여정이였습니다

먼저 가족이야기를 하면 3남1녀 막내고 둘째 형만 장가를 갔고 기존 한국 나이로 큰형 53, 작은형51, 누나 49, 저 45세가 되었네요

※ 누나는 참고로 경계선 지정장애 이런분들이 꽤 있더군요

. 아이큐가 70이하여야 지작 장애인인데 정상인과

장애인의 딱 낀 그정도에요

. 어쩔땐 정말 지적장애이 이여서차라리 정말 시설에

있는게 나을 듯 싶다고 생각도 해요

이번이 암환자 2번째 인데 엄마는 9년전에 제가 36세에 돌아가셨어요 12년 자궁경부암 투병..

정말 투병기간동안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저 엄마가 처음 발병했을때는 엄마가 잘 이겨 낼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4년을 정상인 처럼 사시다 재발에 4차 재발 나중에는 장루 요루 장누공을 가지고 3년을 더 사시다 호스피스에서 돌아가셨어요

어쩌면 저도 핑계이지만 엄마는 자식에게 피해 안 입힐려고 부단히 노력 했을꺼에요

하지만 세상살이가 참 쉽지 않더구요 제가 정신차리고 공부해서 먼가 해보려 할때 마다 1년을 거처 시험을 한달 앞둘때 마다 재발을 하더니 나중에는 말기암까지 오시고 케어가 타인의 케어가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와서 저 또한 어쩔 수 없이 시험을 접었어요 세세한 내용은 너무 방대해서 적지 않을께요

말기암 상태에서 아버지가 그래도 성치않은 몸(협착이 심하셨고 수술을 하였는데 혈종이 생겨 오른쪽 다리 발목이 마비가 왔어요)이라도 시골 집에 계시기 때문에 말기암 환자라도 병원은 가야돼고 기구(장루,요루)도 사야돼고 완화치료 있으시는 환자도 Ct, mri, pet 찍어야 하기에 전원한 지방 대학병원에 한달에 한번씩은 꼭 가야돼고 두분이 가사생활은 해야하기에 요양보호사도 신청해서 오시고 해서 직장생활을 이어 나갔고 어머니 병원비 해결도 해결이지만 정말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 말기 암환자의 케어가 정신적 피폐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그때 느꼈습니다

정말 그시간은 이제 치료가 목적이 아니기에 언제간 이것도 끝나겠지 끝날꺼야라는 한가지 목적이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3년을 지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슬프지만 가족들도 웃음을 찾게 되었어요

하지만 저의 고정관념 아니면 트라우마 일까요 결혼에 대한 생각이 부정을 만들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걸 다시 해보자 그게 잘못된 생각이였더라고요 사람의 인생은 때가 있고 거기에 맞춰가야 한다는 걸 요즘 너무 많이 느낍니다

어쩌면 엄마 돌아가시고 더 독하게 마음먹고 살아으면 가정을 꾸리고 힘들더라도 지금의 아버지 케어도 서로 의지할 사람이 있어 덜 힘들어 지금처럼 멘탈이 힘들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 발병하고 진단금 6,000만원 / 실비도 있기에 일단은 해보자 해보고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맘으로 시작한 치료가 마무리 되었지만 이제는 아버지가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나이가 되었더라고요

82세 혼자 부단히도 자식들에게 폐끼치지 않으려 노력 했지만 덜컥 암에 걸리셔서 자식들 고생만 시킨다는 말을 하시면서도 자신도 심란하기에 여러모로 또한 현재 쉰목소리로 의사소통을 저와 하지만 자신의 처지에 어떤 결정도 의견도 힘이 들어 하십니다

아버지가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라는거 제가 가정을 꾸리고 어딘가에서 당당하게 자리잡고 하였으면 조금 마음이 나을려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어쩔때는 공사를 다니며 1억이 넘는 연봉을 받고 3자녀의 가장인 작은형도 지금보면 이 문제에 버거워 하는걸 보면 또 그런건 아닌 듯도 싶어요

아버지 후두암 전북대에서 폐와 임파절 전이 소견의 확정적으로 한 듯 3~4기 판정 / 폐와 임파절 조직검사 결과 음성, 서울대는 1~2기 / 고령과 기저질환인 폐기종, 고혈압, 전립선 비대증을 감안하여 양측다 수술은 권유하지 않는 뉘앙스 였어요 전북대는 항암 방사선, 서울대는 17회 방사선 치료를 설계하였어요 카폐와 유튜브 정보를 취합, 방사선 치료는 장비도 중요하지만 방사선을 행하는 교수와 방사선사의 실력이 중요하며 후두암 같은 두경부암은 더더욱 그렇다 하기에 서울대를 저 개인적으로도 선택하였어요

간병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지만 최초 전북대에서 아버지 조직검사부터 이런저런 영상 검사 날짜 및 결과 발표 또한 후두암의 무서움이 목소리가 변하여 일상에 심각한 리스크를 준다는 게 저의 퇴사를 종용 했어요 누구의 강요는 없었지만 형제들끼리 서로 의견이 분분하고 본가의 농사일은 작파하게 생겼고 더더욱 이런식으로 가면 진단금도 있고 실비도 있는데 치료다운 치료도 못하고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제일 결정적인건 제가 엄마 간병때 왔던 공황 우울증이 심하게 왔어요

직업이 위험한 직업이기에 나 하나의 잘못으로 사람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초기에는 후두암이 이렇게 무서운 암인지 몰랐어요 또한 아버지의 전신 컨디션 및 아버지의 연령을 생각지도 못했고요 그냥 경주마 같이 결정하고 행한거 같으며 또한 형들의 불화, 불화라 하기도 그렇죠 요즘 다들 살기 각막한 세상에 고령의 홀어머니 홀아버지가 암에 걸려 긴 시간을 할애 해야하는 암치료에 선뜻 의견을 제시하고 책임을 지을려하는 형제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자꾸 엄마의 암투병과 오버랩이 되지만 엄마는 사망할때 나이가 69세 셨고 호스피스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의지가 강하셨고 자신이 낮지 않을꺼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를 버티셨습니다 그러한 시간을 누구보다 곁에서 어떤 노력을 어떻게 기울셨던 않았던 아버지가 집에 계시기에 저 또한 정신을 해치지 않는 사회생활을 하였고요 그런 아버지가 이렇게 무너지고 그걸 짊어졌다는 생각과 지금은 1차적 치료는 끝났지만 전처럼 생활이 가능 하실까 하는 불안감에서 밀려오는 돌봄+간병 압박감 저는 알고 있어요 이러한 문제를 형제끼리 상의하여도 좀 처럼 해결책이 없다는걸 또한 가정을 이루지 못한 3명의

자식들이 있는 이러한 가정은 더 버겁다는 걸 저 또한 누구보다 그걸 느끼고 있고요

6년인지 5년전 저의 아버지와 동갑이신 친구의 어머니는 사고로 뇌출혈을 일으키셔서 인지능력이 급격히 떨어지시어 그 당시 얼마되지 않아 양로원에 위탁하여 지금도 생활하시며 노환으로 어떤이의 부축을 해야하며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지셨다 하는데 친구 또한 공무원이지만 미혼으로 어쩔때는 케어의 손을 누군가에게 어느정도의 금전으로 맡기어 자유롭다는게 부러울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더더욱 그렇고요

제가 못났지요 못났어요 아버지는 그래도 어떻게든 4남매 키워 주셨는데 지금의 아버지를 버거워하는 제가 못났지요

엄마 케어때도 어쩌면 그때는 제가 아버지에게 의지한다고 생각들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에게 의지를 하고 있던걸 제가 눈치를 못 챘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암카페에서 지방에서 식도, 직장암 4기에 투병하며 아이들 케어하는 정말 긍정적인 싱글대디 환우분이 계시는데 적어도 3일에 한번씩은 긍정적인 글이 올라와요 어쩔땐 대단하며 그래도 난 안아프고 건강하잖아라는 맘을 먹으며 그분에게 미안하게 비교 위로를 하지만 올라오는 글을 보며 아이들과 항상 긍정적으로 일상을 사시더라고요 이러면 안되지만 그분의 마음 한구석의 우울한 맘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부럽다고만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 정말 나약한가 봅니다 인생을 80으로 보았 을때 아직도 살 날이 많은데 그리고 나하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엄마의 오랜 투병에서 왔었던 간병 쏠림 트라우마 그리고 엄마가 별이 되기 까지의 힘들었던 과정이 지금 투영되어 절 나약하게 만드네요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니 아까까지 힘들었던 감정이 조금은 나아지네요

이렇게 쓰다보니 너무 긴글이 되었네요 다들 힘냈시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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