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아버지께서 소풍 가셨습니다 - 장루용품 및 PCN 소독용품 나눔완료 :)

윤슬슬l대보
2025.10.16 15:07 | 조회 2.3k

안녕하세요. 올해 3월에 가입하고서 처음 글을 써봅니다 :)

활동 열심히 해야지하고 생각은 했었는데 간병하느라 일하느라 하면서 시간이 훅 지나가 버렸네요.

아버지께서 얼마 전에 떠나셔서 남은 장루용품과 PCN 소독관련 용품을 나눔하려고 합니다.

1분 또는 각각 2분께 택배 드리고 싶어요. 필요하신 분은 댓글 달아주시면 쪽지 드리겠습니다^^

* PCN 소독 용품

- 멸균 튜브가드 50개짜리 1 박스

- 일회용 포비돈 스틱 2개입 40팩

* 장루 용품

- 장루백 46개

- 장루판 47개

- 몰더블링(피부 보호대) 20개


아버지께서는 너무 젊지도 그렇다고 너무 많지도 않은 67세에 소풍 떠나셨습니다.

혹시나 도움이 될까하여 저희 아버지 이야기를 적어보자면,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살이 너무 많이 빠져서 (10키로 정도)

병원 안가겠다고 고집 피우던 분을 억지로 데리고 가니 위암과 대장암 둘다 진단 받으셨어요.

나중에 고백하시길 사실은 작년 9월부터 혈변이랑 다른 증상들이 있었다고 ^^

3월 중순에 동네 내과에서 진단받고 바로 다음날 삼성서울로 진료 잡혀서

다시 조직검사포함 여러가지 검사, 내과, 외과, 혈종내과 진료까지 보고

수술불가로 항암부터 해야할 거 같다고 판단될 때까지 한달이 걸렸습니다.

위암은 3기로 수술 가능하나 대장암이 4기로 골반, 방광, 복막전이까지 퍼진

아주 큰 암덩어리가 몸의 에너지를 많이 뺏어가는 게 결국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거 같아요.

다른 병원 이야기도 들어봤어야 했는데, 증상이 너무 심해 괴로웠고 (30분마다 화장실을 가셔야 했어요)

다른 병원을 가면 또 검사를 해야할 수도 있다고 해서 바로 1차 폴폭스 항암을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서 후회하는 점이 집에서 가까운 창원삼성에서 항암을 했었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6월 초 폴폭스 2차 후 계속 아랫배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서울이 집에서 멀어서 기다리다가

천공이 생기고 복막염에 폐렴까지 악화돼서 3차 항암 하루 전날 사설구급차를 타고 삼성서울 응급실로 갔어야 했거든요.

다행히 고위험 환자로 분류되었고 응급외과 교수님께서 바로 검사 후 수술을 해주셨습니다.

오후 2시쯤 도착하여 저녁 7시쯤 수술실에 들어갔으니 5시간 정도 걸렸네요.

그러고보면 삼성서울 아니었으면 이렇게 빨리 됐으려나 싶기도 하구요.

수술 전 중환자실에서 동의서 작성하는데 아버지 심장이 한 번 멈추기도 했지만,

수술을 잘 해주셨고 폐렴도 잘 나아서 항암 다시 해봐도 될 거 같단 소리도 들었는데,

갑자기 위 점막이 분리되어, 2주 동안 금식하느라 살이 다 빠지고 CPE 감염에다가,

금식이 해제되고 콧줄 경장식을 시작하면서 걷기 연습하는데

갑자기 또 진통제가 듣지 않을 정도의 무릎 통증이 생기고

그 사이에 암이 커져서 요관을 눌러 PCN도 하게 되는 상황까지 왔어요.

의식은 아주 멀쩡하시고 더 살고 싶어하셨는데... 안타깝게도 데려가려나 싶었네요.

삼성에 2달 정도 입원해 있다가 8월 초에 퇴원 압박이 와서 (사실 2달도 아주 길었죠)

시흥에 아너스힐로 갈까 하다가 아버지가 집 근처로 가고 싶다고 하셔서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전원했는데 첫날에 몰핀을 너무 세게 놓아서 위장이 마비되어

경장식 다 토하고 콧줄이 막히고 했었습니다. 다행히 무릎 통증은 잡혔어요.

상황이 계속 이렇게 안 좋게 돌아가니, 아버지가 이제 그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셨어요.

항암도 너무 힘들어서 그렇게 삶을 연장하고 싶지 않고, 가족들 더이상 고생시키는 것도 싫으시다며.

(요양병원 의사, 간호사, 행정직원들이랑 매일매일 싸움의 연속이었거든요 ^^)

조금 더 살다 가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제가 같은 입장이라도 그만하고 싶을 거 같아서

아버지 뜻을 존중해 드리고 최대한 편안하게만 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요양병원에서 친구들, 가족들, 지인분들과 인사도 하시고

저희랑도 시간을 보내시면서, 고통없이 한 달 동안 지내시다가 9월 초에 돌아가셨습니다.

서서히 살이 빠지고 혈류량도 줄고 하면서 장기 기능이 저하되는 게 눈에 보였고,

마지막에 심장이 멈춰가는 과정까지 지켜보게 되었네요.

평온하게 고통없이 가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노력해볼걸 하는 후회도 남고

그 후회는 내 욕심일 뿐이다는 생각도 들고 이리저리 보호자로서 죽음에 대해 많은 걸 느꼈던 거 같아요.

그 후 장례를 치르는데 장례지도사님께서

(스스로 장례지도사 안했으면 무당했을 거라고 하셨네요;; 잘 모르겠지만 저승가는 버스 같은 것도 진짜 있다고 ㅎㅎ)

아버지 미련없이 길 잘 찾아서 가고 계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집안 선산이 있어서 할머니, 할아버지 곁에 모셔두니 든든했지만

그래도 5년만 더 살다가지, 내가 뭘 잘못했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 같아요.

소풍 가셨다는 표현을 믿고 싶어요. 잠시 가셨다가 다시 이 쪽 삶으로 돌아오실 거라 믿습니다.

너무 이야기가 길었네요 ^^

여튼 이렇게 짧고 굵게 6개월 간의 여정이 끝나고 아래와 같이 깨달음이 남았습니다.

병원과 진료는 여러 곳을 가보기 - 다른 의견들을 종합해서 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항암은 무조건 가까운 병원에서*** - 자주 응급 상황이 생깁니다.

연명치료는 보호자에겐 희망, 환자에겐 고통이 될 수 있으니 이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

현실적으로는 영정사진, 상속, 장례절차, 납골당 등등 미리 알아보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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