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아픔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암은앎이다ㅣ직본
2025.10.05 06:55 | 조회 564

― 아픔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유난히 하얗고, 유난히 고요한 날.

의사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단어 하나가

내 세상을 멈추게 했다.

‘암’.

짧고도 묵직한 그 두 글자가

가슴속에 떨어지는 순간,

시간은 얼어붙고

공기는 낯설게 변했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두려움은 참으로 집요했다.

밤마다 문틈으로 스며들어와

내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둠 속에는 작은 빛이 있었다.

그 빛은 내게 속삭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네가 배워야 할 건

‘앎’이란다.”


아픔은 내게서 많은 것을 가져갔다.

식사 한 끼의 평범함,

거울 앞의 웃음,

걷는 기쁨,

사람들과의 약속들까지.

그러나,

그 상실의 자리에

새로운 것들이 자라났다.

기도가 자라났고,

감사가 자라났으며,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졌다.


병실 창가에 앉아

천천히 떨어지는 링거 방울을 바라보았다.

그건 단순한 약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이고,

누군가의 사랑이었다.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했다.

그 사랑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 나는 안다.

삶은 완벽해서 아름다운 게 아니다.

깨지고, 흘러내리면서

그 속에서 빛이 피어난다.

고통은 무너짐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생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고백한다.

“암이라 쓰고, 앎이라 읽는다.”


이 책은 병의 기록이 아니다.

다시 태어나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끝없는 사랑을 배우는 한 사람의 일기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의 뜻을 배웠다.

그리고 오늘,

그 깨달음의 한가운데서 조용히 기도한다.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의 고통을 두려움이 아닌 ‘앎’으로 받아들이길.

아픔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사랑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믿어주길.


겨울은 지나가고,

이제 빛이 서서히 내 안으로 들어온다.

그 빛은 이름이 있다.

희망.

그리고… 사랑.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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