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8월을 지나 찾아온 9월이 벌써 며칠 지나갔습니다. 9월은 부디 모두 무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배변 양상도 몸무게도 사는 것도 항상 고만고만합니다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이틀 뒤에는 출장을 갑니다. 그 전에 꼭 장을 비우고 가야 될 텐데요. 오늘 저녁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먹고 나서 갓비움과 갓채움 복용 후 화장실에 앉아 있습니다. 원래는 공복에 먹어야 제대로 된 효과가 있는데요, 저녁 안 먹기가 참 쉽지 않네요. 조금이라도 효과를 기다리며 글을 써봅니다. (배변 결론부터 살짝 말씀드리면 2시간 20분 안에 그래도 꽤 나왔습니다. 중량 정도로 느낌상 뱃속에 있는 변의 2/3 정도. 이 정도면 양호합니다. 낮 동안 과식하지 않은 게 효과를 거둔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드라마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도 한번 썼는데 아픈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란 과연 어떠한가라는 내용입니다. 저는 친할머니가 오랫동안 중풍을 앓으시다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희귀병으로 돌아가셔서, 스스로가 주변인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또 직접 크게 아프고 나서는, 주변의 사람들이 야속하게 느껴지고 도대체 무슨 마음이기에 저렇게 행동하는 것일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주변인이었을 때 했던 행동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 말이지요.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 이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는 주인공이 한 명 있습니다. 프라이어의 동성 애인 루이스인데요. 다정하고, 마음이 약하고, 생각도 말도 많고, 겁도 많으며, 남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많이 신경씁니다.
바로 이 검은 머리에 젊은 유대인 남성이 루이스입니다. 그는 지금 막 할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왔습니다. 그와 6년 동안 함께 살고 있는 동성 애인인 프라이어도 함께 갔었죠. 물론 루이스는 프라이어가 자신의 애인이라고 가족들에게 차마 소개하진 못했습니다.
그날따라 프라이어가 기분이 별로인 것 같아보여서 루이스는 무슨 일이냐고 묻죠. 낙엽이 깔린 거리, 뉴욕의 한 벤치에 앉아 프라이어는 루이스에게 자신이 에이즈 진단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눈물 섞인 장난처럼 가볍게 말하는 프라이어에게, 충격을 받은 루이스는 흐느껴 울며 따져 묻습니다. 그걸 왜 여지껏 자기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왜 이제서야 말하느냐고 말이죠.
이 드라마에서 루이스의 온갖 변명과 연약한 마음은, 그가 열심히 일장 연설로 감추어보려해도 곳곳에 드러납니다. 특히나 평소에 서로 좋아하지 않던, 프라이어의 베프인 벨리즈를 몇 차례나 만나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신세 한탄을 하고, 한편으로는 프라이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며 묻습니다. 실제로 본인은 새로운 애인을 만들어 놓고 말이죠.
참 최악이죠? 저는 이 드라마에서 좋아하지 않는 역할이 몇 명 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게 루이스 입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어찌보면 루이스가 보편적인 사람의 약한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어요.
제 옆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아니, 동행에 생면부지의 사람이 이런 상황이라고 글을 올리기만해도, 당장 손절해야 된다고 참견할텐데요. 막상 저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었나 생각해보면 한치도 더 나을 게 없는 그런 모습이었구나 싶습니다.
여러 가지 명장면들이 많지만, 제가 참 좋아하는 제프리 라이트가 연기한 벨리즈와, 루이스가 서로 투닥투닥하는 장면 올려봅니다.
어느 한 식당에 앉아, 둘은 방금 나온 음식을 먹지도 않고, 열렬한 논쟁을 이어갑니다. 둘 다 말이라면 한마디도 지지 않죠. 루이스는 실은 프라이어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어서 만났으면서도 그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자신의 개똥 철학과 정치관을 한바탕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질린다는 듯 자신을 대하는 벨리즈로부터 필사적으로 자기를 방어합니다. 하지만 밸리즈의 날카로운 독설을 피할 수는 없죠.
"네가 지금 욕하는 정치인은 얼마전에 니가 열렬히 지지한다면서 후원금을 보냈던 바로 그 사람 아냐?"
"사람 마음이라는게 원래 모순덩어리야. 그리고 그때 보냈던 후원금 수표는 되돌아왔어."
"니 수표는 항상 되돌아오지. 넌 그게 문제야. 넌 항상 모든 것에 이율배반적이야."
"사랑은 이율배반적이지 않아. 나는 프라이어를 정말 사랑해. 프라이어에 대한 내 사랑은 이율배반적이지 않다고."
"사랑은 이율배반적이지 않다라... 가만있어봐,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맹세하건데 내가 읽은 연애 소설에서 나온 대사다. 너 그 책 꼭 읽어봐라. 민주당이니 공화당이니 떠들 시간 있으면 싸구려 연애소설 읽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거야."
또 다른 장면입니다. 비가 오는 뉴욕의 센트럴 파크.
새로운 애인이 자기가 그토록 싫어하는 보수주의자 편이라는 걸 알고서 죽도록 괴로워하는 루이스는, 또 밸리즈를 불러내서 미친 듯이 분노하고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냐고 따져 묻습니다. 루이스가 불같이 화를 내도 밸리즈는 얼음처럼 냉정하고 침착합니다.
"미국을 알고 싶다면 내가 일하는 야간 병동에 와봐. 거기서 일어나는 모든 혐오스러운 현실이 이 나라의 현주소를 말해주지. 난 이곳이 정말 싫어. 특히나 루이스, 너같은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지. 넌 여기서 평생 잘 먹고 잘 살아라. 니가 사랑하는 이 미국 말이야. 누구든지 사랑할 게 하나쯤은 있어야 되는 법이니까."
"누구든 당연한 거 아니야?"
제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요.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정말 많고,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주변에도 서운하고 섭섭하고 분노케 만드는 사람들 많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 때문에 때로는 그러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그렇게 분노할 것도 없고, 그렇게 미워할 것도 없을듯 합니다. 나를 포함한 인간 모두에게 가련한 마음을 가지고 담담하게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아직 한참 멀었지만, 그런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무덤에서 랍비와 루이스가 나누는 대화 장면 을 YouTube 링크로 올려봅니다.
ps. 제가 올린 대사들은 원작에서 그대로 따온 것은 아니고, 대략 생각나는 것들을 제 나름의 해석으로 적은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똑같진 않아요. 맥락은 다 동일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