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5일차 수요일 오후에는 분서대 정신의학과에 2차로 방문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좀 실망스러웠어요. 그 이유는,
1. 진료 시간 1시간 반 지연
: 진료 예약 시간은 오후 2시였고 그 앞에 다른 진료가 없었기 때문에, 의사의 다른 일정 때문에 늦어진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가 않더군요. 채혈 때문에 오후 12시부터 방문했었는데, 3시반에 진료를 볼 수 있어서, 결국 병원에서 채혈 후 3시간 반이나 기다렸네요.
2. 특이 사항 없이 약처방만 받음
: 일주일간 소량의 약 복용 후, 피검사에 있어서 특이사항은 없었고, 부작용도 없으니 앞으로 일반적인 용량으로 약을 늘린 후, 몇 주 후 다시 피검사를 해보자. 가 결론이었습니다. 뭐 정석인 것 같은데요, 시간들여 대학병원에 와서까지 받는 진료인데 너무 평범하다고 할까요.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일반 1차 병원 정신의학과에서는 피검사는 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것도 대학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겠거니 생각해보면 또 의미가 없는 건 아니고요. 다만 조금 더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복용하고 있는 약이 내 몸에 적합하지 않다면 피 검사 결과 어떤 수치가 나오는지, 혹은 일상 생활에서 어떤 부작용을 보이는지 같은 설명이요.
예를 들어서 제가 몇 달 전에 몸무게 감량을 위해서 삭센다를 처방받았었는데, 처음 테스트 기간에는 괜찮다가 일주일 후, 정상 용량으로 늘렸더니 바로 알러지 반응을 보여서 끊었거든요. 이때 만약 피검사를 했으면 염증 수치가 높게 나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신의학과 약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삭센다나 위고비가 몸에 맞지 않는 슬픈 현실이네요 ㅠㅠ 요즘 비만 치료제로 열풍이던데, 염증 수치 고려해서 조심해야 될 거 같긴 해요)
3. 병원비
: 1차 진료 때 6만원대로 그렇게 많이 나온 편은 아니었는데, 2차 진료는 재진이기 때문에 더 적게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아니더라고요. 피검사까지 들어가서 8만원대 정도가 나왔습니다. 비싼 편은 아닌데 암관련 중증환자 적용이 안 되다 보니, 분서대에서 평소 내는 외래 비용을 생각했을 때 비싸게 느껴지네요. ^^;
죽 써놓고 보니 결국에 1번 말고는 실망할 부분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팁도 두 가지 써보아요.
1. 증량한 약복용 후 피검사를 또 한 번 해보자 해서, 8월달에 CT 촬영과 피검사가 있는데 어차피 하는 피검사 이때 같이 하면 안 되겠냐고 말해서 날짜 조절해 놓았습니다. 한 번이라도 바늘에 덜 찔려야죠. 병원에 오래 다니니 이런 짬밥이 생깁니다.
2. 분서대에서 약 처방을 받으면 저는 항상 나오는 길에 근처 정은약국에 들려 약을 사가곤 하는데요. 이날은 너무 귀찮더라고요. 여기가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약국으로 가는 미니밴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되거든요. 이런 게 번거로워서 사람들이 그 근처 길가에 불법주차를 많이 해놓죠.
이날은 그게 너무 귀찮아서, 흔하게 많이들 먹는 약이라고 하니, 동네 약국에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그날 복용할 약 하루 분은 이미 있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다음날 사려고 하는데 이게 웬일. 동네에는 없는겁니다. ㅠㅠ
혹시 있더라도, 제가 약용량을 단계적으로 증량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300mg과 150mg이 각각 처방되어 있는데, 용량에 따라서 약 코드가 다른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간혹 약이 있더라도 300mg만 있어서, 약국에서는 전체 처방전대로 약을 줄 수가 없는 거죠. 제가 무식하게 300mg을 반으로 쪼개서 주면 되지 않냐고 물었더니, 약코드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 하더라고요. 그럼 처방전에 있는 일부인 300mg만 줄 수 없느냐 했더니 그렇게는 또 할 수 없다 하네요. ㅠㅠ
결국 대학병원 앞에 가서 약을 구매하는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분서대까지 갈 것 없이 저희 집에서 가까운 아주대쪽에 가서 약을 구매하려고 해요.
아무튼 그 바람에 목요일 저녁에는 약을 먹지않고 잠들었는데, 그게 좀 달라져서였는지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ㅎㅎㅎ 고양이가 와서 새벽에 밥달라고 제 방문을 긁기도 했고요.
------- 여기부터는 일상생활과 영화글 입니다.
길고 긴 글인데, 여기에 또 영화 이야기까지 살짝 얹어봅니다. 지난번에 썼던 곡성에서 유명한 대사 하나를 빠뜨릴 수가 없는데요. "머시 중헌디"라는 대사죠. 휴가 기간에 사실 푹 쉬고, 집 청소도 하고, 그동안 못했던 잡일 처리도 해야 되는데, 회사 생활에 길들여진 저는 메신저와 메일을 기웃기웃 했어요.
마침 또 목요일은 휴가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회사 바깥에 나가서 마켓 동향과 사용자를 둘러보며 인사이트를 얻는 날이거든요. 그래서 파트 사람들과 바깥에서 만나서 즐겁게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구경도 하고 했습니다. 끝나고 바로 집으로 갔으면 좋았으련만, 회사에 들려서 그동안 밀린 메일도 보고, 그러고 있자니 누군가 또 쫓아와서 이런저런 거 처리해 달라고 하고, 메신저 방이 열려서 '아 저거는 이렇게 처리해야겠다' 라는 상황이 벌어지고. 일찍 사무실에서 나오긴 했습니다만, 역시 반성이 되는 부분이었죠.
제가 이제 좀 있으면 50에 접어들다 보니 회사 생활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팀을 이동하면서 원했던 주제도 선택했지만, 방식의 차이도 분명히 있어야겠더라고요. 지금까지는 하나의 프로젝트에 꽂혀서 실무를 너무 디테일하게 했다면, 이제는 그런 방식을 버리고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방식을 하려고 해요. 그런데 자꾸 예전 버릇이 나와서, 남들 하는 수위가 성에 안 찬다는 핑계로 참견하려는 제 모습을 봅니다. 이걸 정말 꾹 누르려고 합니다. 사실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잘 하려면 제 할 일도 엄청나게 많거든요.
그래서 곡성에 두 번째 명대사를 마음에 새기며 제 자신을 다스려봅니다. 머시 중한디.
모든 사춘기 부모들의 심정이겠죠. 자식 타령은 그만하고, 제 인생에 몰두해야되는데, 저 역시 제 나이와 경력, 인생 단계에 있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변화된 시선과 태도로 하지 않으면 안될 시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신 차리고 내 건강을 빼곡히 챙기지 않으면 안 될 시점입니다.
동행 카페에 일에 관련해서 이렇게 쓰는 이유는, 제가 일 빼고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직장인이기도 하지만, 암환자여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몸을 챙기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내 몸을 잘 챙기지 않는 날은 동행카페 절대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꼬박꼬박 운동하고 식단 잘 챙기고 잠 잘 잔 날만 글쓰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각이 새벽이라 벌써 어긋난 약속이긴 한데요, 이 글 이후로 선언합니다. ㅎㅎㅎ 머시 중헌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