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난달 22일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습니다.
뒤늦게 이 카페를 알게되어 여러가지 정보도 얻고 마음의 위안도 되었습니다.
저의 경험담이 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몰라 글을 씁니다.
아버지는 23년 8월 말 갑상선 여포암 수술을 하셨고
열어보니 암세포가 여기저기 퍼져있어 수술시간 굉장히 오래걸렸습니다.
수년전부터 목에 혹이 생겼었고 작은병원 큰병원 다 검사받았지만 암으로 진단되지는 않았고
나중에 알보고니 여포암은 개복하지 않는 이상 발견이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몇년전 외상없이 골절된 다리도 한참 후에야 뼈전이로 인해 그렇게 된것으로 추측이됩니다.
당연히 방사능치료를 해야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치매를 앓으신지 15년정도가 되신 상태고
아빠가 온전히 돌봤기에 치료에 들어가게되면 엄마를 돌볼 수 없으니 아빠는 거부하셨습니다.
이미 한쪽다리는 골절되었었고 수술 후에 컨디션도 굉장히 안좋아지셨지만
엄마를 돌보며 계속 생활하셨습니다. 그 생활은 1년 정도 더 허락되었습니다.
24년 7월 초
아버지께 갑자기 거동이 안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골절 수술은 하셨지만 암이 전이된 다리가
더이상 버티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이때만 해도 아빠는 삶에 대한 의지가 있으셨고 수술로 다리를 좀 편하게 만들고 싶은 희망이 있으셨어요.
여기저기 병원을 전동차로, 희망카로 다니셨는데 암이 전이된 뼈가 무슨수로 좋아질까요...
희망은 와르르 무너지고 이제 누워서만 지내야 한다는 현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버지를 휩쓸었습니다.
가끔씩 말씀하시던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생각도 내비치시고
그때마다 저는 제발 하나님 그것만은 막아달라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 다리로도 엄마 돌봄을 놓지 못했던 아버지...
휠체어를 타고 운동을 시키고 밥을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10월엔 고통을 견디다 못해 호스피스에 입원을 하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력은 있으셨어요. 엄마를 이제 돌보지 않으니 좀 나으셨던 모양입니다.
정신은 멀쩡하고 휠체어, 다리보조기구, 목발을 사용하면 잠깐의 거동은 되셨기에
많이 답답하셨겠죠... 그러다가 진통제 부작용으로 일시적인 기억력장애를 겪으시더니
더이상 이곳에 있으면 안되겠다고 생각이 드셨나봐요.
일단은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집에 한동안 머무르셨어요.
그 와중에 엄마와의 시간이 이제 마지막인것 같다며 요양원에 모신 엄마를 다시 모시고와서
2주정도의 시간을 보내시고...
당연히 상태는 더욱 안좋아져서 119에 실려가서 다시 호스피스로 입원하게되었습니다.
그게 12월 초입니다.
저는 이 시기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빠의 남을 날을 몇일 당겼을지언정 아빠는 행복해하셨고
집에는 영영 못 돌아 오실거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오셨으니까요.
이번 입원은 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주무시는 시간이 정말 많이 늘어났으며 2주 정도 경과되었을땐 네이버에 치면 나오는
임종증상들이 다 나오더라구요.
그래도 주변분들을 보면 그런증상이 다 있어도 그냥 누워서 잠만주무시며 임종을 준비하시는게 3~4일은 되시길래
저는 그날도 그냥 같은 날이 연속인 줄 알았습니다.
돌아가시기 2주전부터 가래가 굉장히 많이 꼈고 힘들어하셨고 1~2일전에는 아빠 등 아무데나 손을대도
가래끓는 진동을 느낄수가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에도 아빠는 의식이 있으셨거든요.
그런데 산소포화도를 측정하시는 간호사분이 오셔서는 저를 따로 부르더라구요.
임마누엘실로 옮겨서 지켜보는게 좋을것같다고.. 임마누엘실은 누가봐도 임종직전에 가족들을 위한 방이였습니다.
너무 빨리 진행되는 속도에 눈물이났고 오늘이 가시는 날인줄알았으면 몇일전부터 병원에서 자며
아빠옆을 지켰어야 했는데... 주무시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옆 지키는 것을 게을리 한것같아 죄책감이 드는건
어쩔수 없더라구요.
그렇게 점심시간 지나고 즈음.. 임마누엘실로 가셨고 바로 가족들을 다 불렀습니다.
다들 예상치 못했고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오후늦게 다 모였고
아빠의 산소포화도는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 목소리 다 듣고 손잡고 어루만져드리고...
제가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것처럼 주무시다가 늦은밤이 되기전..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숨이 넘어가는 그 순간에도 아빠는 크게 힘들어하는 모습이 아니였으며 잠깐 눈을 떠서 마주치시고는
이내 깊은 잠을 주무시는 것처럼 평온하게 잠드셨습니다.
장례를 치루고 저는 해외에 살아 집에오고... 정신을 차리는중에 여기에 정리하는 글을 남겨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평소에 눈물로 기도를 많이 했어서 그런지 편안히 가신 아빠모습, 그리고 더이상 그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아빠가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것만큼은 마음은 평안하나 지금도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듯한 느낌이 듭니다.
주변 어른들 말로는 2년정도 지나면 조금 나아진다고 합니다.
저는 안양 메트로병원에서 정말 따뜻하게 아빠 보내드렸습니다.
정말 지금도 너무 감사하고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친절해도 되는건가? 싶을정도로 애써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리고
어떤 보답이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 카페 분들께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모두 같은 마음일 거에요.
저는 말씀드릴게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는 것.
그것말고는 제가 알려드릴게 없네요.
기도한데로 되었고 기도로 마음 붙잡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기독교를 비난해도
세상사람과는 정말 구별되는 크리스찬분들과 함께해서 너무 위안이 되었습니다.
크리스찬도 매일 넘어집니다.
세상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을때도 많고 아니 더할때도 있겠죠.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면
그에맞는 동역자를 붙여주실겁니다.
그 교제안해서 놀라운 일들을 저처럼 경험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