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꿈속에서 받은 하얀봉투.

빛나는 전진 I 대본
2024.11.26 17:32 | 조회 5.8k

오래 지난… 4월, 폴피리와 얼비툭스 23회 항암(대장 간 절제 수술 후항암 4회)을 마치고 씨티 검사를 하니 양쪽 폐에 결절들이 보였습니다. 담당 교수님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고민이 된다며 일단 항암을 쉬어보자고 하셨습니다. 폐에 있는 결절들이 가만히 있고 1차 약만 쓰길 바라는 희망의 휴약기였지요.

그리고 두 달이 지난 6월, 다시 씨티 촬영을 해보니 희망과 달리 폐에 있던 결절들은 조금씩 커져 있었습니다. 담당 교수님은 이번엔 숨을 씁~ 내쉬더니 폐에 있는 암의 진행이 빠르진 않으니 다음 씨티 촬영 때까지 두 달 더 쉬고 2차 약을 써보자고 하셨어요.

이로써 좋은 날들은 갔구나 싶었지만, 다시 얻은 두 달의 휴약기도 나쁘지는 않았지요. 항암 부작용도 더이상 없었고 어차피 두달 후에 항암 받을 걸 생각하니, 여기저기 못 먹을 것 없이 다 먹고 다녔습니다. 진짜 일반인처럼 봄과 여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파란 8월… 규리아빠님이 떠난 후, 저는 동행에 잘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동행이란 우물가에서 또 다시 애통을 기를까봐 겁이 났어요. 가끔 들어와 일상글에 좋아요도 눌러 봤지만, 옛 구독글 깊숙이 침몰해 있는 그의 글과 사진을 볼 때면 역시 마음 심란해졌습니다.

가족도 지인도 아니고 가상 공간을 스쳐 지나간 사람의 일인데, 뭐가 그리 슬프냐고 묻는 남편에게 동병상련을 아느냐 되물었습니다. 그 찐-한 동병상련을.

그렇게 8월이 되면서 몸도 점점 아파오고 맘도 편치 않았습니다. 점점 가래가 심해지고 등도 아픈 것이 역시 폐가 안좋아졌구나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불면증 때문에 생활 자체가 힘들어졌습니다. 남편이 이것저것 정보를 찾아보려고 동행에 들어왔다가 제 안부를 묻는 분들이 계시다고 알려줬지만 일일이 인사 드리기도 힘든 처지가 됐습니다.

휴약기 후 세 번째 씨티 촬영을 하고 어쩌면 뻔한 결과를 들을 것 같은 9월초 진료 하루 전날 밤, 돌아가신 시어머니 꿈을 꿨습니다. 하늘나라 높은 자리에 계시다는 어머님이 저희 부부를 식사에 초대하셨고, 저희는 아름다운 정원과 꽃길을 올라가 동산에 차려진 큰 식탁에서 어머님과 밥을 먹었답니다. 식사 후 인사를 드리고 차에 탔는데요, 어머님이 남편이 있는 운전석 창문을 두들겨서 열어드리자 반으로 접힌 하얀봉투를 남편에게 건네주셨어요. 한 달 넘게 불면증도 심해서 잠도 못잤는데 비교적 잠도 잘자고 이런 꿈을 꾼 것이 신기했습니다. 남편에게 꿈 얘기를 하니 남편 왈, 오늘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좀 더 커졌네요. 항암 받고 갈래요? 아님, 좀 더 쉴래요?

김교수님 담담히 말씀하십니다. 사실 저도 진료 두 시간 전에 영상 결과지를 봤기에 (요즘엔 진료 몇 시간 전에야 영상 결과지를 볼 수 있음) 당황하지 않고😶 저도 담담히 말했습니다. 항암 받을께요~.

진료실을 나가서 안내를 기다리는데, 진료실 간호사님이 부릅니다. 교수님이 잠깐 다시 들어오시래요.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니 교수님이 제게 묻습니다. 혹시 임상… 하시겠어요? 임상 해보겠냐는 물음에 저대신 남편이 네!라고 먼저 대답합니다. 아묻따 임상? 진짜 뭐 이런 보호자가 다있나 싶었지만 결국 4기에겐 임상 기회가 있으면 해보는 게 맞는 거죠…

그렇게 9월초 진료에서 임상을 하기로 하고, 바로 임상 담당 간호사님이 정해졌고, 임상약 설명을 충분히 들은 후, 뇌MRI와 기타 검사 등, 일주일 만에 시험군(무작위 선정)에 선정됐습니다. 임상간호사 말로는 임상 선정까지 보통 최대 한 달이 걸리는데 1주만에 빨리 그것도 시험군으로 선정됐다고 하네요. 그리고 임상 간호사에게 동의서를 받았습니다. 하얀봉투에 담긴.


저는 현재 임상 6회, 기존 폴피리 얼비툭스 1차 항암을 포함해 모두 스물아홉번의 항암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받는 임상은 폴폭스와 아바스틴에 추가 면역제 주사를 맞는 임상입니다. 임상 참여 후 지난 씨티 결과는 좋았습니다. 폐에 있던 암들이 전반적으로 줄어들었어요. 씨티 결과를 듣는 지난 진료에서 김영감과 임상간호사가 피알이야~ 피알~ 하면서 서로 암호 같이 주고 받던 PR(Partial Response, 부분반응)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부분적”이지만 기쁜 일이라 용기를 내어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동안 제 안부를 물어봐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슬픔은 나누고 기쁨은 보탠다는 말도 있는데, 전 왜이리 인색했을까요…. 사실은 폴폭스로 약이 바뀌면서 그 모든! 부작용에 엄청나게 시달리니 몇번이나 항암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마다 동행분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분적이나마 찾은 기쁨을 동행에 더하고 싶었습니다.

PS.

항암 부작용으로 손가락에 감각이 없지만 며칠이 걸리더라도 감사한 마음, 답글로 꼭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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