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해피앤딩을 위하여

숲속의왕자
2024.11.21 18:30 | 조회 417

대장과 직장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봉기한 암덩어리를 잘라낸 것은

2021년 3월이었습니다.

이 커뮤니티를 찾아와서 생명수를 얻어마시는 행운이 있어서

항암치료 과정을 무사히 지나 지금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전이가 없고 아직 재발이 되지 않아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분들에게

누가 될까 걱정스럽지만 다양한 분들이 공유하는 곳이라서

제 경험담이 누군가에게 이로움이 될까 해서 글을 씁니다.

암이라는 불청객과 멱살을 잡고 몸싸움을 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결국 가족이라는 두 글자를 생각하게 됩니다.

암과의 전쟁을 시작한 것은 오십 끄트머리였고 지금은 육십대

초반입니다. 아내는 오십 중후반입니다.

자영업을 하는 남편을 도왔던 것이 사회 경력의 전부였던 아내는

지금 요양보호사 일을 하면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의 삼시세끼를 차려주면서 주변에 있는 할머니 아파트에 가서

청소하고 반찬 만들어주는 일을 이 년째 하고 있습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와 반비례하는 것은 아내의 전투력인 듯합니다.

아내의 전투력은 어젯밤 당진에 있는 수확을 마친 무밭에 가서

버려진 못생긴 무와 무청을 챙겨오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밤8시30분에 출발하더니 자정이 다 돼서 돌아왔습니다.

오늘 밤 아내의 야간 전투는 오랜 시간 이어질 것 같습니다.

갱년기가 한창일 때 남편이라는 놈이 귀찮게 해서 참 면목이 없습니다.

군산에 살고 있는 작은 누이는 며칠 전에 밤과 대봉감을 보내주었습니다.

말린 생선, 오징어, 갈치, 항암마늘, 조기, 청국장가루... 등

귀한 먹거리를 삼 년이 넘도록 보내주고 있습니다.

작업실 준비하는 데 쓰라고 거금을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올봄에 작은 작업실을 준비해서 새출발을 했습니다.

칠순을 앞두고 있는 누이가 보내주는 정성이 남달라서

아내는 보급품 걱정을 덜 하게 됩니다.

시집 간 두 딸이 아빠를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쓰지 않겠습니다.

가족 뿐 아니라 친구들, 선배들 그리고 이런저런 지인들의

손길이 지난 3년 8개월의 공백을 아름다운 여백처럼 채워주었습니다.

암수술을 하기 전, 두 딸과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미안하고 부끄럽다. 하지만 슬퍼하거나 낙담하지는 말자.

수술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수긍하고 받아들이자.

그리고 나는 변해야 한다.

이 재난과도 같은 일을 겪으면서 내가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나 때문에 너희들이 힘들어하면 난 죽어버릴 것이다. 참을 수 없다.

그냥 암환자가 있는 채로 살아줘라. 별일 아닌 것처럼...

변했습니다.

금주, 금연을 했고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늘렸습니다.

분을 내는 말을 줄이고 배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늘리고 있습니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쉬는 시간을 자주 갖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보다 아내의 말을 들어주고 목소리를 낮추고 있습니다.

내가 참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지난 날, 거칠고 이기적인 나를 용납해준 아내와 두 딸에게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절제되지 않은 삶을 살다가 병을 얻어서 가장 구실을 못하게 됐고

가족의 보살핌으로 회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수술부작용으로 인해 힘든 일이 있고 체질이 달라져서

극복해야 할 일이 있지만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 이전보다 평화롭고 따뜻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가족이라는 버팀목이 있다면,

최소한의 자기몫을 해내려고 하는 책임감이 있다면

우리는 어떤 험한 일을 겪더라도

해피앤딩의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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