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세브란스병원이 있어서 기쁜일도 슬픈일도 많았습니다.

핑크핑크핑크뮬리
2024.08.24 00:28 | 조회 3.8k

안녕하세요.

제가 14살 무렵에 어머니께서 유방암2기 진단을 받으시고 처음으로 신촌세브란스병원을 가봤습니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그랬는지 친구랑 놀고는 싶고 우리엄마가 아프다고 어디에 말도 못하고 혼자만 숨기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항암치료 받고 내려오는날이면 몇일간 구토를하고 머리가 빠지는것을 보니 우리엄마가 진짜로 아프구나라는걸 실감을 했었습니다.

성인이 되고 군대를 다녀와보니 내가 그동안 못된자식이라는걸 많이 느끼게 되었네요

광양제철소에서 아버지랑 같이 일을하는걸 뿌듯하게 생각하는 어머니를 보니 참 많이 행복어요

아버지랑 같이 퇴근을하고 어머니는 완치판정을 받으시고 나날이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다 2년쯤 지나고 제가 24살 겨울에 아버지께서 해외여행을 가야되는데 배가 콕콕 쑤신다고 근처병원 응급실을 갔었습니다.

피검사에서 간수치가 높게 나와 간염인거 같으니 CT를 찍어봤어요

간에 큰 덩어리가 같은게 보이는데 응급실에서는 정확한 판독이 어려우니 다음날 외래를 권하셔서 아버지께서는 아침 일찍 1번으로 외래진료를 보시고 췌장암 같다고 화순 전대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예약을 잡아줬습니다.

화순전대보다는 신촌세브란스가 더 전문적이니 세브란스로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잡았습니다.

병원 진료까지 3-4일정도의 대기시간이 있어서 아버지는 연차를 내시고 회사를 나가지 안으셨어요

3-4일동안 아버지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밥도 잘 안드시고 휴대폰으로 췌장암 생존, 췌장암 얼마나 살수있나요, 유튜브에도 췌장암 관련 기록뿐이 없으시더라고요.

그동안 강한모습만 보여주시고 눈물한번 안흘리시던 아버지께서 힘없어 보이는 모습을 보고 저는 많은걸 느꼇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일주일정도 입원을 하시면서 Mri, CT, 뼈 스캔 ,Pet CT, 조직검사, 스탠트시술 등등 많은 검사를 하면서 최종적으로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차라리 속이 후련하다고 이제부터라도 항암치료 잘 해보고 수술 받으면 된다고 걱정마라고 오히려 어머니랑 저를 더 다독여 주셨어요

항암을 받으로 새벽4시에 일어나서 ktx를 타고 세브란스병원을 다니면서 무뚝뚝하던 아버지가 나에게 관심도 많고 속으로는 걱정도 많이 해주셨는데 표현을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다면서 그동안 아버지랑 못했던 이야기도 많이하고 아버지랑 많이 친해질수 있었어요.

그러시다가 혹시 내가 죽을때가 되면 엄마는 어떻게는 붙잡고 있으려고 할건데 나는 그걸 원치 않으니 큰 아들이 직접 나서서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달라고 손을 잡으시면서 말을 해주셨어요.

4번의 항암을 다 받으시고 CT를 촬영을 했는데 오히려 암은 더 커져버리고 하니 아버지께서는 상실감이 크셨던거 같아요.

방교수님께서 다른약도 있으니 약을 바꿔보자 하셔서 아버지는 방교수님만 믿고 간다며 다시 힘을 내시고 항암치료를 받으셨어요

항암을 받으면서 고열이 자주나서 병원에가서 해열제 하나 맞고오고 싶어도 코로나 의심환자라고 진료 한번 받기가 참 힘들었네요

두번째 항암약도 안받아서 세번째 먹는 항암제로 바꿔보고 이것도 안맞아서 네번째 항암제도 해봤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기력이 점점 떨어져서 사설구급차를 타고 세브란스병원으로 후송되시고 암은 더 커져서 배액관까지하고 퇴원을 하셨어요

밤만되면 아버지는 통증에 시달려서 나좀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을하고 어떤날은 타진 10알을 다 먹어버리시고 밤만되면 통증때문에 다른사람이 되어버리고 아무것도 없는데 앞에 머가 보인다면서 저리가 저리가라고 소리도 치셨어요

그러다 주무시고 아침에 되면은 밤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못하시더라고요

다리에 힘도 빠지셔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타진을 다 드셔서 종합병원까지 가서 처방전은 받아왔는데 지방 이다보니 근처에 타진을 가지고 있는 약국도 없더라고요

지방에 살면서 가장 후회스러울때가 이때다 싶었네요

타진 약을 구하려고 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경상대 병원 근처 약국에서 구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기력도 없으시고 식사도 못하고 통증이 너무 심해서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몰핀까지 맞으시고 이제 아버지도 얼마 안남았다는걸 느끼게 되었어요.

동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는 얼마 못사실거 같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어요

응급실 과장님은 세브란스 병원으로 호송되다 구급차에서 돌아가실수도 있다고 호송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저에게 전화를 해주시더라고요.

근데 아버지 소원이 세브란스병원가서 방교수님이라도 만나서 내가 어떤지 꼭 들어야겠다고 하셔서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라도 들어드리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세브란스로 후송을 했어요.

방교수님을 만나고 마지막 소원을 이루셨는지 기력이란걸 찾아 볼수가 없었어요

병원에서는 해줄수 있는게 진정제, 수혈, 영양제, 산소 콧줄만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셨어요.

저는 3주정도 금요일 퇴근을 하고 4시간 정도 차를타고 아버지를 보러 세브란스 병원을 왔다 갔다 했어요

세브란스병원을 자주 다니다 보니 경비분들을 피해서 요리저리 병실로 들어다니곤 했어요

간호사 선생님들도 알면서도 모르는척 넘어가주시곤 했네요

간병중이던 어머니랑 통화를 하는데 진정제를 맞고 주무시던 아버지가 혈변을 보시고, ekg 선을 다 뽑아버리시고 고함을 지르시던걸 듣게 되었어요.

저도 자식으로써 해드릴수 있는게 연명치료를 안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드리려고 콧줄 수혈 영양제를 빼주셨으면 좋겠다고 간호사실에 전화를 드렸어요.

제가 살면서 가장 잘한건가 불효를 한건가 머리속에서 그생각만 들고 퇴근을 하자마자 곧장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직 맥박은 살아 있으신데 손가락 발가락은 차가워지시고 점점 몸이 차가워지시니 오늘밤이 아버지랑 정말로 마지막이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몇시간후 아버지는 마지막 인사를 하셨어요

그로부터 4년이 지나고 저는 아버지가 며느리감을 데려왔다고 기뻐했던 여자친구랑 결혼을 했고, 어머니랑 드라이브 간다 생각하고 어머니의 정기검진을 받기위해 세브란스 병원으로 왔어요.

암예방과 진료를 보며 이제는 세브란스로 안오고 근처 병원에서 매년 검사만 받으시면 될거 같다고 더이상 안오셔도 된다고 좋은 소식도 듣고 왔습니다.

어머니랑 차를타고 내려오면서도 세브란스병원이 있어서 기쁜일도 슬픈일도 많았다면서 병원하고 인연이 많다며 많은 대화를 하면서 내려왔습니다.

오랜만에 카페에 들어와서 감수성이 터져서 생각나는대로 글을 써봤습니다

생각해보니 한참 중2병이 왔을때라 어머니가 아프셨을때는 어떤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aver
목록으로

댓글

16
로그인 하고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