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동행분들의 글들을 눈으로만 보면서 저희 시아버님과
비슷하게 아픔을 가지고 계신분들의 글들을 유심히 더 유심히 보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시아버님께서 호전될수있을지.. 지금껏 보기만 했었네요.. 저희 시아버님은 21년 6월에 건강검진 후 위내시경 결과가 안좋게 나왔다는 결과를 듣고 3차병원 진료를 봤습니다..
결과는.. 위암확진이셨고 저희아버님께서 일찍 결혼을 하셔서 아버님 연세는 고작 50대 중반이셨습니다.. 병원에서 다시 위내시경 및 CT 찍어보자고 해서 예약잡고 다시 진행하였는데 복막전이까지 듣게 되었고.. 개복을 해야 어느정도 복막에 전이여부 확인이 가능하다 하여 수술날짜 잡고 들어가셨는데.. 복막에 깊숙히 암이 퍼져있고.. 밭에 씨앗을 심고나서 물을 줄때 골고루 물을 뿌리듯 주듯이 암이 그렇게 퍼져있어 그냥 수술못하시고 나오셨습니다.. 항암치료 먼저 진행하자 하시어 8개월정도 진행후 복막전이 된 부위의 암크기가 줄어 22년도 2월 위전절제를 진행했고 예후도 좋았습니다.. 주변에서는 복막전이 되면 안좋은 예후가 많아서 솔직히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하셨지만 아버님 담당했던 교수님도 긍정적으로 아버님께 힘을 주셨고 간호사선생님들도 많이 신경써주신덕에 아버님께서 더욱더 힘을 내실수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적이라는걸 믿었습니다.. 아버님도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셔서 일도 다시 하시면서 건강을 되찾은듯 했습니다 하지만 그뒤로.. 소화가 잘안되신다고 하시면서..식사를 잘하시고 체중도 변화없이 유지하셨는데.. 23년 11월경 복수가 찬것처럼 배가 나오기 시작하시어 정규검진 날짜보다 빠르게 예약을 해서 진료를 보게됐는데.. 이때도 정규검진 받으신지 한달정도 됐을때였습니다.. 일단 복수가 맞고 입원해서 복수를 빼고 다시 정밀검사 진행 해보자고 하셔서 진행하게 되었는데.. 복막에 재발 되었고 기존에 쓰던 항암을 다시 해보자고 하셔서 3주입원 하시면서 진행했는데..내성이 생겼는지 약이 전혀 들지않아 표적항암으로 진행하자고 하셔서 진행하려했으나.. 아버님께서 항암치료시 너무나 힘들고 워낙 병원을 싫어하시고.. 완강하게 거부하셨습니다.. 위절제후 꾸준히 추적괸찰하였고 한달전까지만해도 아무이상 없다는 소견을 들었는데.. 이모든게 한달만에 일어난일들이라는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복막 재발부위가 너무나 깊숙하게 침투되어 표적항암을 진행하더라도 의미가 없을수 있다는 얘기를 들으셔서 그러신지 거부하셨지만 온가족의 설득끝에 포트를 삽입후 치료를 진행하던중 교수님께서는 6차까지 해보자고하셨습니다 그러던중 3차 치료가 끝날때쯤 교수님께서 어머님을 따로 부르신뒤 절망적인 소식을 전달받게되었습니다.. 치료의 의미가 없다는.. 소식이었죠.. 암크기는 더 커져가고 있다고.. 항암치료를 하는 의미가 없으니 중단하자고 하셨습니다.. 아버님도.. 소식을 들으셨고.. 퇴원하신후.. 온가족이 모여 회의 끝에 현대의학으로 치료불가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자연치유도.. 될수있다! 아버님께서 예전부터 고향에 가고싶다고 시골에서 좋은공기 마시면서 고향에 내려가시면 힘이 날것같고 모든 이겨낼수 있을것같다 하시어 저희는 아버님의 소원을 이루어 들이고자 교수님께 말씀 드렸더니 워낙 외진시골이라서 3차병원 가기도 1시간 걸리고 아버님께서 체력이 안되니 절대 안된다고 하셔서 그럼 가까운 쪽으로 공기좋고 산밑에 일주일만 먼저 펜션을 빌려 지내면 괜찮으실지.. 허락받고 일주일만 다녀오셨는데 펜션가셔서 2일까진 좋으셨다가 그뒤로는 여전히 식사도 못하시고 컨디션 회복이 안되시어 다시 집으로 모신뒤.. 영양수액 놔드리면서 컨디션 회복에 힘을 쏟았습니다.. 워낙 건강하셨던 아버님이시기에 ! 아버님께서 이제껏 사시면서 워낙 건강하셨기에 병원을 다니신적도 없으셨고 술담배도 젊으셨을땐 잠깐 하셨지만 금주및금연을 20년도 넘게 유지해오셨습니다.. 결국은 아버님께서 원하시는곳이 아버님 고향이기에 아버님 친구분들께서 도와주시고 형제분들께서 도와주셔서 아버님 지인분의 도움으로 시골집을 당분간 지낼수 있게 해주셔서 아버님께서 더욱더 기운을 내시고 식사도 거의 거부하셨던 아버님께서 조금씩 드시기 시작하셨고 운동도 조금씩 하시면서 호전되시는 모습을 보이셨고 저희는 기분좋게 시골 내려갈 준비를 도와드리고 있었다가 항암치료가 의미가 없으니 내려가시기전 교수님께서 포트제거술을 진행하고 내려가자고 하셔서 7월8일 외래로 제거후 집에 귀가하셨고 그날은 평상시와 다를바없이 좋은컨디션 유지하고 계셨는데.. 다음날부터 갑자기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셨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하시면서 옷에 실수를 세번하시고.. 식사는 아예 못하시고.. 몸은 전체적으로 차가우시면서 식은땀을 이불 및 수건이 다 젖을정도 흘리시면서 눈에 초점이 사라지셨습니다.. 원래는 15일에 제거한부위 확인을 위해 외래를 잡았는데 급속도로 안좋아지시면서 수술부위에서 갑자기 악취를 동반한 탁한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버님께서 혼미한 정신상태를 보이시자 어머님께서 119를 불러 진료보셨던 병원 응급실로 가셨고 검사진행한 결과 식사를 너무 못하시어 생긴 케톤증 및 신장수치가 너무 안좋아 중환자실에 입원해야된다고 하여 입원하셨습니다..
그날저녁..구토를 하시다가 폐에 흡인되어 위험했다는 중환자실 교수님의 연락과.. 오늘이 고비일거라는.. 또.. 구토를 하게되어 폐에 흡인되면.. 이때는.. 힘들거라고..하시면서.. 또한 신장수치가 안좋아 투석치료를 해야하지만.. 아버님은 치료의 의미가 없다고 연명치료거부동의 하냐는 연락이었습니다.. 마음의준비하셔야될것같다고..요..
7월12일 온가족이 면회시간에 오라는 연락이 와서 병원에 가서 잠깐의 면회후 교수님께서 아버님께서 먼저 연명치료거부 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셨다고.. 가족분들 동의서 받겠다하셨고..
중환자실에서는.. 치료를 하여 호전되시는분들이 계시는곳이지.. 아버님은 호스피스병동으로 모셔야된다고 하시면서.. 일반병동 1인실으로 전실하셨다가 연결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호스피스병동 자리가 없을수도 있어 일반 다인실 병동으로 가시면
다른환자분들이 동요될수 있다하시면서.. 1인실로 가셔야 된다고 하셨고.. 1인실도 자리가 있어야 된다 하시어 대기했다가.. 그날자리가없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하다가 15일에 옮길수 있으면 옮기신다는 말씀듣고 귀가하여 시댁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아버님께서 면회후 가족들을 보고나서 이신지 갑자기 좋아지셔서 임종기단계라는 말도 하셨지만 아닐수도 있다.. 라는 전화가 와서
역시 저희 아버님은 강하신분이다! 이겨내실수있을거다! 라고..
생각하고 일반병동 옮기신후 호전될수 있겠다라는 기대를 품고 15일이 빨리왔으면 하며 13일이 되었고 지금 입원한 병원은 면회가 월,수,금 밖에 안되어 집에서.. 하염없이..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생각하면서 있었는데 중환자실에서 전화가 왔고 섬망증세가 심해지시고 소리를 지르시고 몸부림이 심하시어 보호대 착용하신다는 말과 콧줄을 빼버리셨는데.. 교수님께서 다시 끼지말자고 하셨다는 연락이었습니다.. 또한번무너지면서.. 다음날 걱정되어 전화를 해보았더니.. 더심해지셨다는 연락.. 이었습니다..
저희가족은 아버님께서 워낙 병원을 싫어하시는데 저희 보호자도 없이 낯선환경에 보호대까지 착용하시고 하여 게다가 면회까지 안되서 그래서 지금 더 그러신것같아 월요일 면회를 가서 교수님 면담후 빠르게 병동으로 전실해야겠다 생각했고 15일 월요일이 되어 면회시간이 되어 아버님을 뵙지만 밤새 잠을 못주무시어 수면제가 들어갔다고 깨우지말라고 하시어.. 아버님 손만 붙잡고 있다가 나와서.. 교수님 뵙는데.. 아버님께서 정신이 잠깐 있으셨을때 호스피스병동 거부하셔서.. 일반병동에 일단 2인실이든 3인실로 가셨다가 1인실로 가실수도있다.. 통증으로 인해 많이 힘들어 하신다.. 또한.. 경구로.. 들어가는 모든걸.. 중지해야되며.. 호전이 되더라도.. 물이나..음식..전부섭취불가라고.. 라는.. 말씀을 듣게되었습니다..
일단..저희는.. 아버님께서 중환자실에 혼자계신것보다 보호자가 같이 있는게 심적으로 편하실것같아 가정호스피스도 여쭤봤지만 절대 안된다고.. 하셔서.. 먼저 3인실로 전실해주셨습니다..
아들 삼형제를 낳으시고 저는 장남의 며느리입니다..
저는..병원쪽에서 일을 하고 있고 다행히 병원쪽에 배려로 전실하는날 다음날까지 쉬는날이어서 어머님께서 간병하신다고 하셨지만.. 어머님도 많이 힘드시고 하시어 그래도 제가 일도 하고있고 케어적인부분에서 더 해드릴수 있을것같아 간병을 해드렸는데.. 일주일만에.. 이렇게 섬망증세.. 초점잃은눈.. 정신이 잠깐 돌아오셔도.. 저를.. 온전하게 기억못하시고.. 한번.. 잠깐.. 눈을 또렷하게 뜨시면서 저를 쳐다보시기에 제이름을 부르면서 알아보겠냐고.. 하니..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신 아버님을.. 그잠깐..뵙고.. 욕창올까봐.. 자세변경.. 하면서 신체보호대 아프실까봐 풀어드렸는데.. 아프신통증때문에 발을 자꾸 차시면서 발버둥을 치시기에 근육이없고 뼈밖에 없는 다리가 잘못될까봐 다시 보호대를 할수밖에..없던.. 이런상황들이.. 너무나.. 믿기지안았습니다
교수님 회진시 아버님 상태를 보시고는 얼마나 아프시면.. 하시더니.. 모르핀수액을 처방해주시는데.. 용량을.. 높게 처방해주시면서.. 통증감소에 초점을 두신다하셨고.. 아버님께서 호스피스병동을 거부하셨지만.. 가셔야될것같다하시면서 다시 연결해주셨고.. 대가 11번이라고 해주셨습니다.. 면회가 자유롭지않아.. 아버님 가족분들 및 저희.. 그리고 지인분들조차 오시고 싶은데 못오시는 상황이시고.. 어머님께서 다들 이렇게 보고싶어 하시는데.. 제발 잠깐이라도 보게 끔 부탁드린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머리로는 이해합니다.. 아버님께서 병원입원을 거부하셨던 이유중 하나가.. 가족들과 같이 시간보내시면서 계시고 싶어하신게 첫번째 이유셨기에.. 더욱 마음이 찢어졌습니다.. 현재.. 마약성진통수액을 맞으시면서.. 몸부림 .. 초점없는 눈.. 이제.. 그렇게 사랑하고 아껴주셨던 가족들도.. 기억을 잃고 계십니다.. 이렇게 글쓰는 저는 19년도 남편을 만나 20년도 10월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비혼주의자 였던 저를 결혼을 하게 된 계기가 아버님께서 어머님과의 사이도 너무나 좋으셨고..두분이 서로 챙겨주시는모습.. 거리를 걸으실때 다정하게 손잡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애정가득 눈빛 말투.. 이렇게 사이좋은 부모님 그늘아래 이런가정환경에서 자란 남편이라면 제 인생을 맡겨도 될것같았습니다.. 저희집도 물론 사이가 좋으시긴 하시지만.. 저희부모님께서는 표현에 인색하신분들이셔서 다른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주셨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저희아빠는.. 가정환경이 좋으셨지만.. 할아버지께서 훈육방식이 남다르셨고.. 그걸 보고자란 저희아빤 저희에게도 동일하게 표현하셨습니다.. 어렸을땐.. 다른친구들도 저처럼 저희가족처럼 다 똑같이 사는지 알았고.. 당연하게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저희가족은.. 인사도 어색할정도로 대화가 없었습니다.. 특히 아빠..랑.. 대화를 해본기억이 별로 없었습니다..결혼전에는요
남편과 결혼준비하면서 시부모님을 뵙고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님이라는 말을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신 아버님이십니다.. 매번 시댁에 갈때마다 이쁜며늘아가라고 불러주시고 친가족들과 캠핑 한번 안해봤다는 저의 말에.. 바로 시댁식구분들 부르셔서 캠핑 예약잡고 바로 데려가주시고..
제가 남편과 투닥하면 항상 제편이 되어 주셨던 아버님..
시댁갈때마다.. 반갑게 맞아주시고.. 며느리가 최고라고 주변가족분들 및 지인분들께 자랑하시긴 바쁘셨던.. 그런..아버님..
아버님께서 중환자실 입원하신 날 어머님 모시고.. 식사를 하는데.. 어머님께서.. 아버님께서.. 너만찾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보고싶다고.. 언제 집에오냐고.. 참고로 시댁하고 저희집이 5분거리입니다.. 창문으로 불켜지게 보입니다! 제가 근무가 늦게 끝날때가 많아서 어머님께서 아직 일하고 있겠지 하면.. 너무 보고싶다면서 저희집 거실불이 켜지는지 확인하신다고.. 하시면서..아들들보다..저를 찾고.. 아버님께서 딸을 너무 원하셨는데 안생기셔서.. 제가 자주 찾아뵙고 아버님께 애교도 부리고 대화도 많이 하고.. 했더니.. 어머님도 안찾고 저만 찾는다고..
그래서 질투좀 하셨다고.. 퇴원하시면 힘들고 바쁘더라도.. 매일 집에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이말을.. 듣는순간.. 모든가족들이 힘들어하기에 저라도 정신차라자 울면 안된다.. 아버님께 웃는모습만 보여야된다.. 가족들한테도.. 의지할수있는 사람 한명은 필요하기에 독하다는 말까지 들으면서 버티고 버텨왔는데..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모든사실을 좀더 빨리 알았더라면.. 제가 일이 늦게 끝나도..
힘들어도.. 찾아가서 뵙고올껄.. 뭐가 그리 힘들다고.. 안갔을까..
저에게 아빠의 사랑을 알게 해주시고.. 저도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건지.. 이게 맞는건지.. 했을때도 따뜻하게 받아주셨던.. 아버님이신데.. 지금 너무나 후회가 됩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게..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너무나 보고싶고.. 예전처럼 다시 기운 차리실것같은데..
저에게.. 이쁜며늘아가..라고.. 다시한번.. 그.. 한마디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제발.. 다시 일어나셨음 좋겠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합니다.. 시간을.. 저희에게 시간을
좀더 허락하게 해달라구요..
저희아버님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정말 가족을 위해 한평생 일만하시다가.. 고생하신분이십니다..
동행분들도 힘내시고! 후회없는 선택과
긍정적으로 힘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