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메켈세포암 항암 및 수술 일지_3편

루멘즈l메본
2024.03.07 00:40 | 조회 410

2편메 이어 마지막 일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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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절단은 암센터(종양내과, 정형외과, 신장내과)의 다학제의 결론이었습니다. 저도 엄마도 뭐라고 할말이 없었죠. 살아야하니까요ㅠㅠ

수술은 무탈하게? 약 7시간 정도로 진행되었고 수술후 안정적인 회복을 위해 중환자실 2박3일 있었습니다.

수술끝나고 회복실에서 정말 처음 느껴보는 고통을 느꼈어요.

정말 말그대로 다리가 잘라지는 고통이었습니다. 뭐 사실이죠ㅎㅎ

무통주사와 마약성진통제를 투여했으나 첫날은 정말 잠 한숨도 못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샜던 기억이 닙니다.

그래도 중환자실에서 잘 회복해서 일반실로 잘 올라왔어요.

수술부위는 잘 아물고있었으나, 허벅지에 남아있던 농양이 완벽히 해결이 안되었음.

성형외과때 처럼 열어놓고 이틀에 한번씩 수술방 내려가서 이리게이션도 하고 죽은부위 긁어내는걸 거의 한달정도 했네요. 처음할때는 간단하다고 해서 수술방 내려가서 하는데 곪은부위라 국소마취도 소용이 없다고 그냥 긁어내더라구요. 성형외과에서 한것과 비슷하대서 방심했는데 진짜 너무아파서 소리를 막 지르고 끝나고나니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교수님이 안되겠는지 이틀후에는 전신마취로 하자고 하셨어요. 결국 이 패턴으로 일주일에 한번은 마취없이 쌩으로 하고 이틀후는 전신마취하고 이걸 한달(4주 8회)을 하는데...전신마취를 한달새 5번을 했네요

8번째 소독을 앞두고 계속 항암이 이것때문에 미뤄지니 전이되어서 피부에 올라오는 갯수가 많아지고 크기도 커지고 골반위에 까지도 생겼습니다.

또 한번의 다학제 후, 남아있던 허벅지까지 절단하기로 결정.

그냥 절단이 아니고 고관절도 함께 제거해야하는 수술이었습니다. 하지만 크게어렵지않아서 수술후 일반실로 바로 복귀가능하다고 그러셨는데...

이번에도 약 8시간정도의 수술이 끝나고 정신이 드는 와중에 내 침대가 급하게 어디로 움직이고있음을 느꼈는데 보이는 풍경이 흔히 봐오던 일반회복실의 모습이 아니었음. 읭??

옮겨진곳은 외과중환자실. 중환자실 안간댔는데??

그건그거고 첫 절단술보다 더 아팠음ㅠㅠ

간호사선생님들께 죄송했지만 나도 모르게 소리지르며

진통제를 호소했죠

그러던와중에 담당의가 와서 설명하기를.

수술하고 거의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출혈이 많이있었고, 혈압도 너무떨어졌었다. 마취과선생님말로는

나이가 그나마 젊어서 다행이었다고 큰일날뻔했단다.

수술방에서 수혈을 6팩인가를 쥐어짜듯이 넣었고

중환자실 와서도 그만큼 더 수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난 또 한번의 고비를 넘긴 셈이었네요.

그리고는 10일간의 중환자실 생활.

그래도 안면이 있던 간호사쌤 덕분에 독방에서 지낼수있게 해주셨어요.

다행이 잘 회복해서 다시 올라갔고 일반실에서 일주일정도 더 있다가 수술부위 깨끗한거 확인하고 다시 종양내과로 전과했습니다.

23년 7월~9월

그때가 7월말에서 8월초 정도였는데

다른사람들은 밖의 무더위를 얘기할때 전 다른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절단수술을 했다하더라도 이미 전이되어서 보이는게 있던터라 더 조급해졌습니다.

다시 항암을 진행하기로했다. 이번에는 다른 문제없이 잘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정도 후 호중구,백혈구수치가 바닥을 찍었고 의료진도 저도 예상했던터라 1인실 격리하고 회복에 힘썼습니다. 다행이도 2~3일정도 후부터 컨디션이 회복되었고

조금더 일반실에서 추이를 보기로했습니다.

어느덧 8월도 지나가고 9월이 왔고 곧 추석이기도 했고 정말 색시와 딸아이. 그리고 아버지. 가족들이 너무보고싶고 집에 가고싶었어요ㅠ

그런데 난관들이 꽤 많더라구요. 일단 패혈증으로 둥환자실갔을 5월중순부터 9월초까지 계속 누워만있었던 탓에

남아있던 오른다리는 보기에도 근육이 다 빠져있었고 그 다리로 땅을 딛는다는것 자체가 무리였습니다. 힘도 안들어갔구요.

침대에서 휠체어로 가는것도 아버지없으면 안되고

아직 상체도 힘이 없어서 집에서도 병원용 침상이 있어야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의료진의 퇴원얘기가 있어야했는데

9월초 컨디션이 좀 회복되면서 다음치료계획들이 수립되었습니다. 우선 집에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좀 보내고 추석 지나고 다시 입원해서 항암과 방사선을 같이 하기로...

드디어 퇴원날짜가 잡혔고 아버지와 색시, 딸아이가 병원으로 같이 마중을 왔습니다. 약 4개월만의 상봉.

막 부둥켜안고 펑펑 울것같았는데 오히려 그반대였습니다.

담담하게 웃으면서 서로를 맞이했어요.

그렇게 집으로 가서도 침상생활하고 가끔 아버지의 도움으로 휠체어타고 거실로도 나와보고 그동안의 아픔을 잊을수있던 시간이었습니다.

23년 10월~11월

입원 일주일전에 했던 방사선설계를 토대로 10월중순부터 입원해서 방사선치료를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에 항암도 했고 역시 항암 후 일주일뒤에 수치가 바닥나서 또 1인실격리하고 그동안 방사선은 잠깐 쉬고, 다시 회복후 남은 방사선치료 끝냈구요.

중간에 수치떨어져서 조금 더 쉰 기간이 있어서 방사선을 끝내고나니 11월 중반이 되어버렸어요.

23년 12월

끝나고 퇴원해서 또 한 열흘정도 집에서 있다가 다음 항암을 위해 12월초에 재입원.

비슷한 패턴으로 항암ㅡ1인실격리ㅡ회복ㅡ퇴원 진행.

그렇게 23년 12월21일에 항암 4차를 마치고 퇴원했습니다.

24년 1월

가족들과 행복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보내던 와중에 컨디션이 평소보다 떨어짐을 느꼈는데

잦은 미열이 동반되었고 결정적인건???

대상포진이 발생. 급하게 응급실로 가서 원래 입원예정날보다 3일정도 먼저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열흘정도 대상포진을 치료하고 다시 5차 항암 실시.

그전과 비슷한 싸이클을 보이며 1월말에 퇴원.

다음번 6차하기 전에 펫시티와 시티검사 하기로...

24년 2월

행복한 설연휴를 보내고 2월 12일에 입원

헌데 신장수치가 약간 높아서 조영제쓰는 CT는 패쓰.

그냥 PET-CT만 홀바디로 찍었어요.

13일에 교수님회진때 일단 본인이 판독하기엔 깨끗해보인다고 함. 그래서 항암은 일단 중단해도 괜찮을것같다. 다만 핵의학과 교수님의 정확한 판독을 들어봐야하니 우선그렇게 알고있으라..

너무 기분이 좋으면서도 22년 12월에도 똑같은 얘기를 듣고 재발했던 기억이 있기에 마냥 기뻐할수는 없었습니다.

다음날 회진에서도 깨끗하다. 퇴원해서 2개월후에 다시 또 찍어보자고 하심. 바로 색시와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다음날 퇴원. 이제 다음 병원가는건 24년 4월 예정되어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항암이야기입니다.

다리힘은 아직 돌아오지않았고 대신 팔힘이 좀 붙어서

혼자서 침대에서 휠체어 트랜스퍼가 가능해졌습니다.

아직은 불안함에 자기전에 몸을 더듬어보면서 혹시나 만져지는게 있는지 확인하고, 제일 힘든건 환상통입니다.

왼쪽다리가 분명 없는데 왼발등이 쑤시고 발목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분명 없는데 미친듯이 아픕니다.

아이알코돈과 앱스트랄설하정은 자기전에 필수가 되었구요. 가끔 새벽에도 깨면 한번더 앱스트랄 먹고 잠이 듭니다ㅜㅜ 그래도 아직까지는 특별히 생기는것도 없고 가족들과 시간보내는게 너무 행복하고 특히 이제 7살 우리딸의 애교를 보느라 하루하루가 행복해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밥먹으면서도 작년여름의 시간을 얘기하면서 울고웃고 그러고있네요. 사실 이렇게 있는게 아직 믿기지않습니다만, 다리하나와 목숨과 바꾼거라 생각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보려구요.

세상의 모든 암횐우 및 가족분들 힘내시길 바라겠습니다. 24년에도 다같이 화이팅 했으면 좋겠고 저한테 일어났던 기적같은일들이 모두에게 일어나길 바라겠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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