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7) 사랑을 뛰어넘는 감정

딸기맘l위본
2024.02.23 17:20 | 조회 1.2k

항암을 쉬는 일주일

남편이 퇴근 후 들어오는데

‘자!’하며 예쁜 박스가 담긴 비닐 봉투를 건넸다.

열어보기도 전에 ‘자’라는 한 글자의 억양에

‘나에게 생색내고 싶어 하는 구나’를 알아챘다.

나는 기뻐하며 열어봤다.

떡이었다.

남편이 말을 이었다.

그거 줄서서 사는 유명한 떡집이라고.

맞다! 영의정 떡집!

순간 띵했다~

암환자에게 떡 선물을.. 그것도 남편이..

위를 2/3를 잘라낸 아내에게..

떡은 암환자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걸

모른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났다.

하지만 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자기가 맛있는 떡을 그것도 사기 힘든 떡을

사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선물했다는

그 우쭐한 기분을~

괜히 매일 아파하는 나로 인해서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맛있네 하고 먹고..

바로 화장실을 가면 그만이었으니까..

항암에 지쳐있을 때였다.

누가봐도 우리집은 예쁜 가정이었다.

아무도 내 속은 몰랐다.

아니 관심따위 없었다.

이건 온전한 내 몫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항암을 쉬는 일주일

하루는 남편이 물어볼 게 있단다.

어려운 얘기인듯..어렵게 꺼내는 듯 해서

무척 궁금했다.

날짜를 지정하며

그 날 계모임에서 여행을 가는데

가도 되는지 알려달라고..

난 너~무 놀랐다.

혹시나 해서..날짜를 확인해보니

항암하는 기간이었다.

“나 항암하는 기간이야”라고만 말했다.

듣고 남편이 말하길

“당신이 된다면 가고, 안된다면 안 갈꺼야”

라며 공을 나에게 넘겼다.

순간 머리가 멍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선배언니하고 통화를 하게 됐다.

터지는 머릿속에 있는 고민거리가

자동으로 나왔다.

“내가 항암하는거 알면서

어떻게 나한테 놀러가도 되냐고 물을 수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거네..

항암중에 남편이 필요해?

꼭 있어야 하는거 아니면..

남편 사랑하잖아” 선배언니가 대답했다.

쿨한 언니의 대답 ’남편 사랑하잖아‘가

이내 마음에 꽃혔다.

한시간 정도 혼자 산책을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한테 오빠 출장간다고

그날 와달라고 할테니까 다녀와요~“

남편에 대답은 항상 짧다.

“응 알았어”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차라리 나한테 출장을 간다고 하지..

그런 거짓말을 했음 내마음이 더 나았을까?..

공허했지만..

난 나의 몫을 하고 있노라고 위로했다.

그렇게 또 한번의 항암을 하고

‘난 더이상 이 상태로 살기 힘들다’가 아니라

이 상태로 살기가 싫어졌다.

막연히 대화사의 스님을 찾아갔다.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힘들때마다 이 스님이 해주신 말씀이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냥 막연히..그냥 찾아갔다.

난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제 사주가 명이 짧은 가요?

저 항암 안하면 죽나요?”

나의 뾰족한 말투에서

나의 지쳐있는 생활을 보신듯

스님이 말씀하셨다.

“너 정말 고상하게 생겼어!

생긴대로 살아~”

충격이었다.

무엇이 충격이었는지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나를 들켜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억누르고 참으며 아둥바둥데는 나를

보셨으리라..

목숨의 고비를 넘겨본 경험탓일까?

난 곧바로 항암을 내 스스로 중단했다.

남편은 안동의 계모임 친구들과

제주도에 2박3일 놀러갔다 왔다.

남편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좋은 분들이다.

촌놈주제에 성공했다고 하며 열심히들 사시는..

다녀온 후로 남편의 얼굴이 밝아졌다.

얼마후,

남편 친구들이 ‘니가 태어나 가장 잘한일이

제수씨랑 결혼한거라고’ 했다는 자랑을

우리 아빠한테 하는 남편을 볼 수 있었다.

보내주길 잘했다.

그간 힘들고 지쳤을 남편에게

힐링을 선물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남편의 마음이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중학생남편!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려나?

이렇게 난 아픔을 통해 남편을 성장시키며

나 또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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