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쉬는 일주일
남편이 퇴근 후 들어오는데
‘자!’하며 예쁜 박스가 담긴 비닐 봉투를 건넸다.
열어보기도 전에 ‘자’라는 한 글자의 억양에
‘나에게 생색내고 싶어 하는 구나’를 알아챘다.
나는 기뻐하며 열어봤다.
떡이었다.
남편이 말을 이었다.
그거 줄서서 사는 유명한 떡집이라고.
맞다! 영의정 떡집!
순간 띵했다~
암환자에게 떡 선물을.. 그것도 남편이..
위를 2/3를 잘라낸 아내에게..
떡은 암환자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는 걸
모른다는 것 자체가 화가 났다.
하지만 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자기가 맛있는 떡을 그것도 사기 힘든 떡을
사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선물했다는
그 우쭐한 기분을~
괜히 매일 아파하는 나로 인해서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맛있네 하고 먹고..
바로 화장실을 가면 그만이었으니까..
항암에 지쳐있을 때였다.
누가봐도 우리집은 예쁜 가정이었다.
아무도 내 속은 몰랐다.
아니 관심따위 없었다.
이건 온전한 내 몫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항암을 쉬는 일주일
하루는 남편이 물어볼 게 있단다.
어려운 얘기인듯..어렵게 꺼내는 듯 해서
무척 궁금했다.
날짜를 지정하며
그 날 계모임에서 여행을 가는데
가도 되는지 알려달라고..
난 너~무 놀랐다.
혹시나 해서..날짜를 확인해보니
항암하는 기간이었다.
“나 항암하는 기간이야”라고만 말했다.
듣고 남편이 말하길
“당신이 된다면 가고, 안된다면 안 갈꺼야”
라며 공을 나에게 넘겼다.
순간 머리가 멍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선배언니하고 통화를 하게 됐다.
터지는 머릿속에 있는 고민거리가
자동으로 나왔다.
“내가 항암하는거 알면서
어떻게 나한테 놀러가도 되냐고 물을 수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고 싶은거네..
항암중에 남편이 필요해?
꼭 있어야 하는거 아니면..
남편 사랑하잖아” 선배언니가 대답했다.
쿨한 언니의 대답 ’남편 사랑하잖아‘가
이내 마음에 꽃혔다.
한시간 정도 혼자 산책을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한테 오빠 출장간다고
그날 와달라고 할테니까 다녀와요~“
남편에 대답은 항상 짧다.
“응 알았어”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차라리 나한테 출장을 간다고 하지..
그런 거짓말을 했음 내마음이 더 나았을까?..
공허했지만..
난 나의 몫을 하고 있노라고 위로했다.
그렇게 또 한번의 항암을 하고
‘난 더이상 이 상태로 살기 힘들다’가 아니라
이 상태로 살기가 싫어졌다.
막연히 대화사의 스님을 찾아갔다.
종교가 있는 건 아니지만
힘들때마다 이 스님이 해주신 말씀이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그냥 막연히..그냥 찾아갔다.
난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제 사주가 명이 짧은 가요?
저 항암 안하면 죽나요?”
나의 뾰족한 말투에서
나의 지쳐있는 생활을 보신듯
스님이 말씀하셨다.
“너 정말 고상하게 생겼어!
생긴대로 살아~”
충격이었다.
무엇이 충격이었는지 말로 형언할 수 없지만
나를 들켜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언가를 억누르고 참으며 아둥바둥데는 나를
보셨으리라..
목숨의 고비를 넘겨본 경험탓일까?
난 곧바로 항암을 내 스스로 중단했다.
남편은 안동의 계모임 친구들과
제주도에 2박3일 놀러갔다 왔다.
남편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좋은 분들이다.
촌놈주제에 성공했다고 하며 열심히들 사시는..
다녀온 후로 남편의 얼굴이 밝아졌다.
얼마후,
남편 친구들이 ‘니가 태어나 가장 잘한일이
제수씨랑 결혼한거라고’ 했다는 자랑을
우리 아빠한테 하는 남편을 볼 수 있었다.
보내주길 잘했다.
그간 힘들고 지쳤을 남편에게
힐링을 선물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리고 남편의 마음이 자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중학생남편!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려나?
이렇게 난 아픔을 통해 남편을 성장시키며
나 또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