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가을 오후입니다.
동행에 가입하고 중보기도에 참여하면서 저의 믿음이 더욱 깊어지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합심하여 열심히 기도하면서 가끔씩 기적을 간절히 간구하기도 하였지요.
특히 아트량님 부군을 위해서 더욱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는 기적을 보여주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셨는데도 말입니다.
물로 포도주을 만드시고, 38년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시고 심지어 물고기 두마리와 떡 다섯조각으로 오천명을 먹이셨지 않습니까?
이루다 열거할 수 없는 기적적인 주님의 행적을 우리는 표적(signal)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기적적인 일을 보고 믿는 것을 좋아하실까? 아니면 표적을 보지 않고 믿는 것을 좋아하실까? 우리가 표적을 보여 달라고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심하는 불경한 일일까? 아니면 우리 믿음을 위하여 필요한 것일까?
지난 며칠 동안 하나님의 기적적인 행적에 대하여 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도 찾아보고 제가 다니고 있는 교회 목사님의 말씀을 다시 새겨 보면서 우리가 바라는 기적과 하나님이 보여 주시고자 하는 기적적인 행적 즉 표적에 대한 생각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지방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로 오셨을 때, 한 왕의 신하가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4장 48절)고 하셨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꼭 보여주어야만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 탄식하며 책망하시는 말씀이지요.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보고 믿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다고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요구를 묵살하지 않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의 믿음을 크게 고양시키는 표적을 보여주시는 방법으로 고치셨습니다. 멀리서도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는 말씀 한 마디로 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책망하셨지만, 그 요구를 묵살하신 것이 아니라, 표적을 보여 주셔서 믿음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 표적을 보여 주셔서라도 믿음을 일으키기를 기뻐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하여 표적을 행하시는데 특히 더 많은 표적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믿음을 처음 일으킬 때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고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 할 때 표적을 보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복음이 처음 들어가는 국가와 사회에 복음이 진실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기적이 많이 나타납니다.
한국교회에 복음이 처음 들어올 때도 기적이 많이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김익두목사님이 일으킨 기적이지요. 그는 청각장애인, 중풍 걸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지체장애인, 맹인, 자궁암 환자 등을 안수하여 낫게 하였습니다. 김익두목사의 동료 목사들은 ‘이적명증회’(異蹟明證會)를 조직하여, 그의 신유가 사실이라고 하는 자료들을 수집하여 책으로 발간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예수교회 이적명증”)
둘째,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사명을 맡길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명자를 불러 일을 맡길 때,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징표를 보여주십니다. 적당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에게 징표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일생을 바쳐 좁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게는 징표를 주셔서 포기하지 않도록 하십니다.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라고 하실 때도, 예언자와 사도들을 불러 보내실 때도 많은 표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셋째, 세속적 환경에 둘러싸여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울 때입니다.
이 세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세속적 환경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표적을 보이십니다. 유다가 아람과 북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온 백성이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은 멀리 있는 강대국인 앗시리아라는 나라에 도움을 청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믿음을 격려하기 위하여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사사기 7:11) 징조를 구하면 줄 테니, 강대국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회개하고 정의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강대국들이 지배하는 세계의 한 가운데를 살던 유다의 상황과 비슷합니다. 교회의 문을 열고 나가면 곧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세상입니다. 공적 영역에서는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철칙이 되었고, 정치와 비즈니스와 직장과 학교에서 신(神)에 대하여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기 어려운 때를 만났습니다. 지난 주에는 교모세포종으로 고생하시는 젋은 여성환우님의 간증이야기가 게시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믿지 않는 환우들의 조롱거리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둘러보면 이단이 활개를 치고 있고 세속적인 탐욕에 굴복한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목사님들로 인하여 기독교인 전체가 매도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예수님 믿는다고 떳떳하게 말도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렇게 숨기는 것이 기독교인의 미덕인양 세상은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어려운 때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보입니다. 종묘사직이 무너지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때가 애국심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인 것과 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래도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돈과 권력이 전부인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믿음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어서라도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로 하여금 아름다운 동행을 통해 믿음의 형제자매로 맺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아직 약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세속적인 환경에 들러싸여 믿음조차 잃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주님의 놀라운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하나이다. 그리하여 이 곳에 믿음의 뜨거운 바람이 불게 하옵소서.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사명을 지고 가는 형제자매에게 사랑의 표적을 일으켜 힘을 주시고 어떤 세속의 바람이 불어와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