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 사랑> 적금을 들게 된 동기는 예전 직장 동료 중 집요하고 깐깐하기로 소문난 분이 있었는데 남편은 유명한 식품회사의 부사장이었어요. 그런데 저처럼 딸만 두 명인 그 분이 앞으로 외손자를 자주 보려면 돈을 줘야 하기 때문에 적금을 들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재산이 많은 분이 유별나기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도 슬슬 마음이 기우는 거예요. 요즘은 외손자를 낳고 기념일이나 어린이날 또는 생일에 돈을 주는 추세라는데 퇴직해서 여유가 없던 저는 미리 돈을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번 정한 목표가 생기자 5년 동안 저도 집요하게 매달 일정액을 이체하고 돈봉투가 생길 때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이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액수를 달성했습니다.
어쩌다 딸들에게 그 통장의 사연을 말했는데 딸들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 돈을 외손자에게 사용하는 일은 없을테니 엄마나 필요한 것에 쓰라고 말하더군요.
내 맘이라고 일축했지만 어찌나 분하던지요!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두 딸을 한 집에 데리고 살면서 차츰 지쳐가고 있던 터라 통장에 돈이라도 모으면서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인데 이제 만기가 되니 어디다 마음을 붙들어야 하나 이것도 고민이라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 주변의 이웃들도 저희 집처럼 과년한 딸과 아들이 독립을 하지 않고 함께 살면서 부모의 근심을 더하는 경우가 많은데 취업을 했든 안 했든 나이 든 자식과 좁은 아파트에서 산다는 건 힘들기 마련이지요.
첫째가 재택 근무를 하고 요리를 배워와서 좁은 주방까지 공유하려 드니 주부는 정신이 없어요. 제가 주로 나가 있긴 하지만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추운 날은 집에 있으니 딸이 집중해서 일하는 데 방해가 되겠죠.
딸은 앞으로 자신이 식탁을 책임질 수 있으니 저더러 자유롭게 어디든지 가도 좋다며 은근히 가출을 강요하네요.
외손자 통장으로 모은 돈은 딸이 원룸을 얻어 나갈 종잣돈으로 쓰일 예정이지만 적당한 곳을 구할 때까지 서로 최대한 거리를 두고 살기로 했어요.
우리 모녀는 너무 닮아 서로의 분노 버튼을 잘 알기에 가급적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잘 안될 때가 있어요.
딸들을 사랑하고 미래의 외손자까지도 사랑하고 싶은데 현실의 간격은 너무 멀기만 하네요.
여동생은 제가 가서 밥해준다니까 무척 기대하며 좋아하고 있어요. 이웃들도 언니가 언제 오냐며 기다린다니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운동도 하고 한달 동안 서울을 잊어야겠어요.
남편은 첫째와 제가 가끔 싸우니 밥 잘 해주던 아내가 집을 나가도 아무 의견을 내지 못하고 저녁밥을 어디서 사먹을까 궁리하겠죠.
딸이 요리를 곧잘 하지만 오랜 세월 길들여진 남편의 입맛에는 도무지 적응하기 힘든 자연식물식이니까요.
결혼과 출산 중 어느 것을 더 원하냐는 딸의 질문에 결혼이라고 대답하던 남편
결혼은 할 수도 있으나 출산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딸
그런 부녀는 저의 외손자 사랑 적금이 만기가 되어 은행가서 찾아온 줄 모른답니다.
다음 달부터 또다시 헛된 기대를 품고 적금을 가입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어미가 제가 될 줄은 진정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