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참… 뭔가 안되는 중에,
되는 걸로 1등인 사람인가 봅니다.
어려서부터 온갖 재수 없는 일들을 다 겪으면서도,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돕는 것처럼 폐망은 피해 갑니다. 불행 중 다행이란 표현보단 최악 중에 최선 같은 것?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대병원 대장암센터 크로스체크
진료도 제겐 최악 중에 최선의 일 같았습니다.
항암약이 새서 피부 화상까지 입는 일도 있었지만, 나름 불굴의 의지로 온갖 부작용들을 참아내며(정말 항암으로 생길 수 있는 모든 부작용은 다 겪고 있어요) 항암 19차까지… 제 차원에서 정말… 잘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순간에 순조롭던? 그동안의 치료를 뒤엎는 걱정과 고민의 도가니, 멘붕이 찾아 왔지요. 평화롭게 크로스체크 하러 갔던 진료에서 지금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을 들었어요.
박규주 교수님 진료 후, 동행에 글도 올리고 저와 남편은 아흐레 동안 여러가지 경우를 알아보고 생각하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희가 제일 먼저 한일은 당연히 본래 진료받던 병원인 서울아산병원에 이런 사정을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11월 16일 목요일, 서울대 진료에서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을 듣고, 바로 아산에 전화를 해서 다른 병원에서 응급 수술하자고 한다 얘기하니, 종양내과를 거쳐 대장항문외과 박인자 교수님에게 이런 사정이 전달됐고 11월 24일 금요일 외래 진료를 잡아주고 상담 받으라 함…
11월 24일 금요일, 아산병원 대장항문외과 박인자 교수님께 가니, 말씀인즉 누군가 제 담당인 종양내과를 거치지도 않고 바로 외과로 전화 연결해서 담당 외과의(원래 제 담당 외과의는 이승규 석좌교수님)도 아닌 자신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길래 거꾸로 종양내과의(이때 김태원 교수님 안식월 부재로 김정은 교수님)와 상의하고 저를 진료 보게 됐다고 합니다.
진짜 9일 동안 제가 헤메는 동안, 아산병원은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있는 것처럼 저를 원래 담당 외과의도 아닌 박인자 교수님께 연결시킨 것이었어요. 나중에 수술 일정 연락이 왔는데 제가 아산병원 외과 진료를 본 날이 서울대병원 수술 입원 이틀전이었습니다.
박인자 교수님 왈,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환자를 담당하던 종양내과의다. 외과의사는 절대 혼자서 어떤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환자가 진료를 오기 전에 충분히 종양내과의와 상의했고 자료와 정보를 보니, 지금은 암의 감소세가 조금 지지부진하지만 그동안 항암 치료가 매우 잘 돼서 간을 거의 뒤덮었던 암도 한쪽으로 치우쳐 남아있고 대장의 암은 거의 없어진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스텐트를 1년 넘게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고 2년내 항암 내성이 없는 경우도 있다. 종양내과에서는 여러 상태 변화에 대해 잘 캐치할 것이고 지금 담당 종양내과의는 시기 조절을 매우 잘 하는 분이다. 간도 같이 수술할 시기가 올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수술해야한다는 교수님 얘기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수술은 종양내과의 판단, 그리고 검사와 확인을 통해 수술을 해야한다면 계획적으로 수술 하자. 스텐트 부위를 보니 양쪽 끝이 조금 벌어져 있으니 내시경 검사부터 하자. 지금 당장 걱정하실 상황은 아니다.
그리고 박인자 교수님은 제가 처음 아산에 왔을 때 다학제에 참여한 것을 기억하는데, 대장은 막히기 직전이라 수술을 하고 장루를 해야 했는데 간은 거의 기능을 할 수 없을 만큼 간쪽 암이 커서 수술을 했으면 시간상 매우 위험했을 것을 천만다행으로 스텐트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환자를 위해서라면 촉각을 다퉈 어려운 수술을 마다않고 하시는 박규주 교수님, 그리고 수많은 환자에 내 환자도 아닌 당황스런 이슈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상태 설명과 계획을 알려주신 박인자 교수님. 두 분은 제 암이란 최악에 최선이셨습니다.
두 분 덕분에, 저는 두 분 중 어느 한 분이 아닌, 두 가지 선택 중 하나가 아닌, 그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수술 받지 않는 것.
우리들 암환자는
일단 최악입니다…
좀 더 나은 최악도 있고
좀 더 못한 최악도 있고,
최악에 최악도 있는
그런 몹쓸 와중에…
그러나 최악으로 가는 중에도,
항상 최선은 있습니다.
오늘 죽지 않고 내일 죽는 것도
최악 중에 최선인 것처럼.
갑작스런 수술 얘기로 고민하고 있을 때,
아낌없는 조언과 응원의 댓글을 주신
우리 동행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