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행

어머니가 소풍을 가셨어요

곤지l위보
2023.11.22 23:36 | 조회 3.1k

그동안 동행 카페를 통해 많은 정보들을 얻고

힘을 얻기도 하고 참 감사했습니다.

21년 3월 경 어머니가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3기였습니다.

참 후회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그때 당시 자연치유하시는 지인분께서 "수술하고 항암 하면 2~3년밖에 못 사신다

우리나라만 수술하고 항암 하라 하지 외국은 절대 그렇게 안 한다.

책 찾아보면 금방 안다.

3기면은 수술하고 3년 이상 살아있는 사람 거의 없다."

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됐네요.

그분 말 듣고 수술할지 자연치유로 할지 참 망설이기도 하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때 그 말을 좀 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네요..

친구 어머니가 유방 암인데 자연치유로 8년 넘게 잘 지내고 있던 터라

더 망설여졌는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마다 상태도 다다르고 습관도 다르니 정답은 없겠지요.

그래도 어머니께선 묵묵히 2년여간을 씩씩하게 항암치료를 해오셨어요.

처음 예방적 항암을 마치고 첫 검사했을 때만 해도 깨끗하다 해서 이제 안심하나 했는데

3개월 만에 재발되고 전이되는 부분까지 생겼었어요.

그래서 항암약을 바꾸고 또 바꾸고 했으나

복막 전이된 암은 조금씩 조금씩 커져갔고

난소 쪽에도 생겨나고 통증도 조금씩 생겨났어요.

중간에 임상시험도 참가해 보고 마지막 세포독성 항암제도 했는데

마지막 세포독성 항암제 7차까지 하시고 이제 그만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약이 세서 한번 하고 나면 일주일을 앓아눕다 보니 효과 없으면 그만하겠다고 하셔서

ct 찍어보니 2.3cm 가 더 커졌더라고요 의사도 서울도 알아보시라고 소견서를 써주더군요.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희망을 놓지 않고 서울이면 될 거야라고 마음을 다잡았었네요.

서울 메이저 병원에 임상시험이나 신약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검사하고

집으로 내려왔는데 그때 병원에서 했던 생검 때문이지 몸이 점차 더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화장실 가는 것 말고는 계속 누워계시고 등 뒤가 결리다고 통증 호소를 하셨어요.

식사도 많이 못 하고...... 이 상태로는 서울에서 올라오라고 해도 가지도 못할 텐데...

아니다 다를까 서울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어머니는 조건이 안 맞아서

임상시험에 참가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집에서는 도저히 케어가 힘들 것 같아 결국 인근 호스피스로 모셨습니다.

먹는 약으로는 통증도 안 잡히고 식사도 못하시고.

가정형 호스피스를 알아봤는데 너무 시골이라 오기도 힘들다더군요.

호스피스에 오시곤 통증도 어느 정도 잡히고 영양수액도 맞고 발열이 날 때 해열제 주사를 놓으니

열도 잡히니 그래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적극적인 항암치료가 불가능할 때

호스피스 오는 이유가 이 3가지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통증, 영양수액, 해열

집에서는 이 3가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 같습니다.

보호자는 제가 항상 있었고 옆에 요양보호사님들이 계속 계셔주셔서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설은 좀 낙후되어 있으나 체위변경이라 할지, 기저귀 교체, 식사 및 대소변까지

많은 부분을 도와주시기 때문에 환자 입장이나 보호자 입장이나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15~20분마다 물을 달라 하셨고

2시간마다 한 번씩 배긴다고 하셔서 자세 변경을 도와드리다 보니

보호자인 저도 하루에 1시간 자는 게 어려웠습니다.

5일을 그렇게 버티다 그나마 주말에 형이 와서 교대를 하고

그렇게 병원에 오고 한 2주 동안은 그럭저럭 잘 생활하셨습니다.

3주째부터는 외면하며 안보려했던 다른 환자분들 증상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마도 호스피스 와서 진통제를 맞기 시작하면 활동량이 급격히 줄기 때문에 자연적 안락사 같은 느낌도 듭니다.

이때부터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진통제(모르핀)을 맞다 보니 인지력이 저하되고 섬망 증상이 있고 대화 자체가 힘들어져갑니다.

처음엔 걸어서 대소변을 보던 게 이제 누워서 소변줄을 해야 했고,

미음이나 식사를 하시다 나중에 수박, 배만 드시고 그리고 나중에 엔커버만 드셨습니다.

그리고 다리 부종이 생겨나고 그 이후엔 상체까지 부종이 커져 몸에 전체적으로 통증이 심해집니다.

그러다 호흡이 힘들어지고 결국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임종 실로 옮겨지게 되고

그렇게 옮겨진지 며칠 만에 임종하셨습니다.

숨만 거칠고 힘들게 쉬는 것만 3일 동안 보는 게 보호자 입장에서 참으로 괴로운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울기도 참 많이 울고 슬프기도 참 슬펐던 시간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병원생활하면서 그래도 어머니께 감사했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24시간 딱 달라붙어있게 해주셨는데.

떨어져 살았더라면 우리 모자가 보게 될 시간을

그 한 달로 다 채워주고 가신 것 같습니다.

13살에 부모님 떠나 떨어져살다가 25년 만에 고향에 내려와서 이제 엄마랑 재미나게 살아야지

했는데. 암이란 게 참 뭔지. 3년 만에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니 그 빈자리가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투병하는 2년 동안 항암하고 집에 오면 심란할까 봐 꼭 어디 바람 쐬러 구경하러 다녔고

어머니가 드실 수 있는 맛집 찾으러 다니며 데이트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막 그렇게 한이 되는 것 없는데

마지막 즈음에 "나 좀 살려줘라" 하시던 말씀이 그게 참 마음이 아프고 쓰립니다. .

이젠 좋은 길 보내드리고 일상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이 글을 보시는 암 환우 보호자분들 힘내시고 건강을 기원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잘 보내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Naver
목록으로

댓글

31
로그인 하고 댓글을 남겨보세요